꼬리 자른 몸통? 의혹의 꼬리 남겼다
▲ 국회는 지난 9일 본회의를 열고 그동안 논란이 됐던 ‘디도스 특검법’을 통과시켰다.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특검팀의 수사 대상은 정치인이나 단체 등 제3자 개입 의혹, 자금 출처 및 사용처 의혹, 수사 과정에서의 청와대 및 관련 기관의 의도적 은폐·조작·개입 의혹 등으로 규정됐다. 특히 특검팀이 디도스 사건의 배후 내지는 몸통으로 지목된 여권 실세 A 씨의 연루 의혹 및 여권 핵심부의 조직적인 개입 정황을 밝혀낼 수 있을지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로 부상하고 있다. 여기에 특검의 법적인 활동 기한(두 달)이 여야 정치권이 사활을 걸고 있는 총선 기간과 맞물려 있다는 점에서 특검 수사 추이에 따라 총선정국이 요동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과연 특검팀은 디도스 사건의 몸통 및 실체적 진실을 규명할 수 있을까.
디도스 사건은 지난해 10·26 재보선 당일 선관위 홈페이지와 박원순 당시 서울시장 후보 홈페이지에 대한 디도스 공격을 감행한 사건이다. 사건이 터진 이후 숱한 구설과 갖가지 의혹이 불거졌고, 정치권은 사건의 본질보다는 정쟁의 도구로 삼아 사건을 확대·재생산시키는 역할을 했다. 이미 경찰과 검찰이 수사에 나섰지만 국민적 의혹을 해소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는 특검으로 비화된 요인이기도 하다.
검찰은 지난 1월 6일 디도스 공격은 박희태 국회의장실 전 비서 김 아무개 씨와 최구식 전 새누리당(구 한나라당) 의원 비서였던 공 아무개 씨가 사전에 모의해 공동으로 저지른 범행이라고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검찰은 특히 초미의 관심사였던 ‘윗선’ 개입 여부와 관련해 “배후는 없다”고 결론을 내려 ‘꼬리 자르기식 수사’가 아니냐는 의혹을 부추겼다. 김 씨와 공 씨가 새누리당 서울시장 후보에게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디도스 공격을 독단적으로 기획했다는 것이 검찰의 논리였다.
하지만 일개 비서 신분에 불과했던 두 사람이 단지 공을 세우려는 이유로 자발적으로 거액을 마련해 범행을 저질렀다는 검찰 발표에 야권과 시민단체 등은 강한 의혹을 제기했다. 검찰은 김 씨가 공격 실행을 지시한 IT업체 대표 강 아무개 씨에게 건넨 총 1억 원 가운데 1000만 원이 공격 감행에 대한 대가라고 판단했으나, 두 비서가 과연 그런 거액을 전셋돈까지 빼서 주고받을 만큼의 사이였는지에 대한 의문도 증폭됐다.
▲ 서울 서초구 중앙지검에서 지난 1월 6일 ‘디도스 공격’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하지만 검찰은 컴퓨터 로그기록과 휴대전화기 복원, 대대적인 압수수색 및 계좌추적, 통화내역 분석, 참고인 조사는 물론 외부전문기관인 한국인터넷진흥원 등과의 공동검증을 벌였지만 윗선 개입 내지는 배후설을 뒷받침할 만한 증거는 발견하지 못했다고 결론지었다.
검찰은 또 최 의원과 그의 처남 강 아무개 씨, 재보선 전날 김 씨 등과 저녁식사를 했던 청와대 행정관 박 아무개 씨 등도 범행과 무관하며 중앙선관위 내부 공모 의혹도 사실무근으로 밝혀졌다고 발표했다. 경찰에 이어 검찰도 국민들이 납득할 만할 수사 결과물을 내놓지 못하자 비판여론이 들끓었고, 결국 특검제 도입의 빌미로 작용했다. 따라서 디도스 특검팀은 디도스 공격에 새누리당 의원이나 청와대 등 이른바 윗선의 지시나 개입이 있었는지, 관련자나 관련기관의 의도적인 은폐나 조작이 있었는지 등을 규명하는 데 수사력을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민주통합당 등 야권은 디도스 공격을 지시하고 이러한 제반 사정들을 종합적으로 알고 있는 큰 배후 세력이 있을 것이란 의구심을 감추지 않고 있다. 이석현 민주통합당 의원은 지난해 12월 22일 국회에서 선관위 디도스 공격의 배후로 이영수 KMDC 회장을 지목하기도 했다. 이 의원은 이날 “디도스 공격 전날 밤 함께 식사한 박희태 국회의장 전 비서 김 모 씨, 최구식 의원 전 비서 공 모 씨, 청와대 박 모 행정관 등 ‘선후회’ 멤버가 이영수 회장과 가까운 사이다. 선후회 좌장이 홍준표 전 한나라당 대표 비서로 근무했던 청와대 박 행정관인데 이 회장이 (홍 대표에게 비서로) 소개해 준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이 회장과 선후회의 관계를 언급했다. 이어 이 의원은 “배후 세력 사주로 청와대 박 행정관이 중요 실무를 지시하지 않았나 하는 개연성이 있다. 디도스 공격에 필요한 1억여 원의 뒷돈은 이 회장이 댄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이 있다”며 배후 의혹을 제기했다.
백원우 의원도 “이 회장은 박 행정관의 멘토로 알려져 있다”며 “선후회는 주로 태권도, 씨름 등 운동선수 출신 비서관들의 모임인데 이 회장도 태권도 선수 출신”이라고 가세했다.
일부 야당 의원들이 배후로 지목한 이영수 회장은 이명박 대통령 대선 캠프 유세지원단장을 지냈고,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제2차관이 이끌던 선진국민연대와 함께 이명박 대통령의 양대 외곽 조직인 국민성공실천연합 대표를 지내는 등 현 여권 실세들과 두루 친분을 쌓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권 주변에서 이 회장이 설립한 KMDC의 미얀마 유전 개발권 획득 과정에서 특혜가 있었다는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는 것도 이 회장의 마당발 인맥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야권 일각에서는 디도스 사건에 배후가 있다면 청와대 등 윗선이 개입됐을 것이란 의구심을 감추지 않고 있다. 최근 기자와 만난 민주통합당의 한 중진 의원은 “배후로 지목된 이영수 회장은 중간 매개 역할을 했을 뿐이고 몸통은 따로 있을 것”이라며 “이 회장과 친분이 두터운 K 의원과 여권 실세인 A 씨가 디도스 사건에 깊숙이 개입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그는 이어 “이 회장과 K 의원은 선후배 관계로 오랫동안 두터운 친분을 유지해 왔고, A 씨가 모 단체 회장 시절 이 회장이 특보로 활동하는가 하면 A 씨의 해외 방문 때 이 회장이 가끔 동행하는 등 각별한 사이다”며 “디도스 공격을 감행한 인사들이 이 회장과 가까운 선후회 멤버라는 사실에 미뤄 K 의원과 A 씨 또한 디도스 공격을 사전에 인지했거나 조율했을 개연성이 높다”고 강조했다.
야권은 여권 실세를 넘어 청와대의 조직적인 개입·은폐 의혹도 특검팀이 철저히 파헤쳐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검찰수사 과정에서 청와대 등 윗선의 개입 정황이 드러났는데도 검찰이 이를 밝히지 못하고 수사를 종결한 만큼 특검이 국민적 의혹을 말끔히 해소해야 한다는 논리다. 특히 야권은 총선정국과 맞물린 디도스 특검을 집중적으로 부각시켜 실체적 진실 규명은 물론 여권을 압박하는 다목적 카드로 활용한다는 복안이다.
검경 수사에 이어 디도스 사건 재수사 임무를 부여받은 특검팀이 여권 실세를 넘어 청와대를 비롯한 윗선 개입 여부 등 산적한 의혹들을 말끔히 해소할 수 있을지 국민적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