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윤 색채 옅은 후보들 결선 투표 진출 선전…앞서 원내대표 선거와 맞물리며 ‘윤심’ 회의론
국회부의장이 통상 합의 추대로 이뤄졌던 과거를 떠올려보면 이런 뜨거운 경쟁은 이례적이다. 국회부의장은 전반기와 후반기로 나눠 2년씩 맡는다. 서병수 의원은 21대 국회 전반기 부의장 자리를 정진석 의원에게 양보했다. 그 사이 부의장직을 맡을 수 있는 5선 중진 경쟁자가 늘어났다. 정우택 김영선 의원이 각각 3월, 6월 재보궐 선거에서 당선돼 뒤늦게 국회에 입성했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정진석 의원은 당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으며 부의장직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사의를 밝혔다. 결국 당내 물밑에서 교통정리가 안 된 채 4파전 경선으로 치러졌다.
국민의힘 한 의원은 “표면적으론 거대 야당을 상대하는 ‘국회부의장’ 역할론을 기대할 수는 있지만, 양극단 정치 대결이 심한 상황에서 제대로 된 역할이나 영향력을 발휘하기 어렵다. 이번 선거가 흥미진진하고 민주적으로 보이긴 하지만, 불편한 내부 현실을 드러낸 것”이라며 “다선 의원들끼리도 서로 타협해서 1명을 추대하지 못했고, 이를 조율해줄 수 있는 세력도 부재했다. 모양새가 보기 안 좋았다. 옛날에는 위에서 조정해줄 만한 어른이나 세력, 구심점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나마 긍정적인 효과는 주류 세력이 낙점하고 몰고 가는 분위기는 아니었다”고 덧붙였다.
10월 24일 서병수 의원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 이후 기자들과 만나 “김영선 정우택 홍문표 의원과 개별적으로 만나 사전 조율 여부를 의논했지만 입장이 다 다르다”며 “지역 안배 등을 감안해서 지도부와 함께 조율해 추대하는 관행이지만 언제부터인가 그런 관행이 더 이상 지속되지 않는 것 같다. 경선에 나설 수밖에 없어서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번 국회부의장 선거 결과를 두고서 정가에선 다양한 해석이 쏟아졌다. 우선 ‘윤심’을 앞세웠던 김영선 의원이 1차 투표에서 23표로 3위에 그친 것을 두고 묘한 뒷말이 나온다. 김 의원을 제치고 ‘비윤’으로 분류되는 정우택 서병수 의원이 결선 투표에 올라갔을 뿐만 아니라, 충청권인 정 의원이 부산·울산·경남(PK)인 서 의원을 이겼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지역구 의석 93석 중 PK가 33석으로 가장 많다. 그 뒤로 대구·경북(25석) 서울·인천·경기(19석) 충청(9석) 강원(6석) 전북(1석) 순이다. 김영선 의원이 1차에서 떨어지자 친윤이 정 의원한테로 결집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민의힘 한 관계자는 “이번 국회부의장 선거는 ‘친윤 vs 반윤’ 구도로 치러지면서 경쟁이 치열했다. 1차 투표에서 PK 표가 김영선 서병수 의원 둘로 분산됐었다면, 결선 투표에서 서 의원이 승리했어야 하지만 졌다”며 “즉, PK보단 ‘친윤’이 1차 투표에서 김 의원한테 투표했을 것이다. 실제 김 의원은 이번에 처음으로 PK에서 당선돼서 PK 기반을 지녔다고 보기 어렵다. 친윤은 최근 대립했던 서 의원보단 정진석 비대위원장, 윤석열 대통령과 같은 충청권인 정우택 의원한테 표를 던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정 의원이 공식 출마 선언 전부터 의원들한테 전화를 돌리며 선거 운동을 한 것도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고 했다.
지난 8월 31일 서병수 의원은 당의 비대위 전환을 반대하며 전국위원회 의장직을 사퇴했다. 친윤계를 중심으로 추진되던 정진석 비대위 출범에 반대 의사를 표명한 것이다. 8월 29일 서 의원은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당시 권성동 원내대표 사퇴를 요구하며, 친윤계와 갈등을 겪던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를 끌어안아야 한다고 말했다.
국회부의장 선거에 가장 늦게 뛰어들었던 홍문표 의원은 1차 투표에서 6표(4위)로 체면을 구겼다. 선거 기탁금이 1000만 원인 점을 고려하면 1표당 약 166만 원인 셈이다. 1947년생으로 국회 최연장자인 홍 의원은 후보자 등록 마감일인 10월 23일 일요일에 갑작스럽게 출마를 결정한 것으로 전해진다. 다음날인 24일 홍 의원은 보좌진들과 함께 국회 의원회관 3층부터 10층까지 3시간 동안 돌아다니면서 선거 운동을 했다고 한다.
국회부의장 선거는 지난 9월 치러진 국민의힘 원내대표 선거 때와도 대조된다. 당시 선거는 ‘윤심(윤석열 대통령의 의중)’을 앞세워 후보군을 사전에 조율하며 추려냈다고 전해진다. 윤핵관(윤석열 핵심 관계자) 의원실 한 보좌진은 “당시 권성동 원내대표가 출마를 고심 중인 의원들에게 직접 연락을 돌리면서 ‘주호영 의원 추대’를 설득했다”며 “김학용 국민의힘 의원은 선거 홍보 팸플릿까지 만들었지만, 당시 권 원내대표의 설득으로 출마 의사를 접었다”고 말했다. 이 같은 노력 덕분에 원내대표 선거는 주호영 이용호 의원 간 2파전으로 확정됐었다.
원내대표 선거에서도 ‘윤심’은 크게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9월 19일 ‘윤심’을 앞세운 주호영 의원은 총 106표 중 61표를 받아 과반을 간신히 넘기며 원내대표로 당선됐다. 반면 민주당 출신으로 당적 보유 기간이 가장 짧은 이용호 의원은 42표를 얻으면서 선전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국민의힘 원내 대통령 지지율이 80%대에서 60%대로 하락한 것 아니냐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지난 4월 권성동 의원은 원내대표 선거에서 102표 중 81표를 받았지만, 주 의원은 20표 적은 61표를 얻었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한 초선의원은 원내대표 선거 전 당내 분위기 관련해서 “다들 자기 공천만 걱정하고, 나라 걱정하는 사람이 없다”며 “민주당은 계획을 세워서 일을 처리하지만, 국민의힘은 계획이 없다. 가만히 보다가 대세가 생기면 그쪽으로 확 쏠려간다. ‘너 윤석열 반대해?’라고 딱 둘로 나누잖아”라고 사석에서 비판한 바 있다.
9월 19일 이용호 의원도 투표 전 정견발표에서 “윤심 때문에 상당히 헷갈리셨을 텐데 저는 ‘윤심’인지 ‘권심’인지 잘 모르겠다. 그런 게 있어도 안 되고 있을 수도 없다고 생각한다”며 “요즘 초등학교 반장 선거도 선생님 의중 따라서 가지 않는다. 더군다나 집권여당이 대통령실만 보고 간다고 하면 이게 뭐가 되겠느냐”고 말했다.
42표를 받으며 파란을 일으킨 이용호 의원은 선거 활동을 전혀 하지 않았다고 알려졌다. 당선을 노린 것이 아니라 ‘윤심’을 비판하기 위해서 출마했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이 의원이 원내대표 선거 기탁금 2000만 원으로 2억 원의 홍보 효과를 얻었다고 평가했다.
허일권 기자 oneboo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