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합적 위기 장기화하면 슬럼프플레이션 갈 수도…레고랜드 사태, 김진태 지사 경제 메커니즘 이해 부족”
경제학자 출신 유경준 국민의힘 의원은 “경제 위기가 장기화되면 스태그플레이션(경제 침체 속 물가상승)의 정도가 심한 ‘슬럼프플레이션’으로까지 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일요신문은 10월 28일 유 의원을 만나 대한민국 경제를 진단하고 그 해결 방안을 물었다. 유 의원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코넬대에서 노동경제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한국개발연구원(KDI) 수석 이코노미스트를 거쳐 박근혜 정부 때 통계청장을 역임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2023년도 예산안 국회 시정연설에서 경제를 13차례나 말했다.
“경제 위기를 인식하고 있어서 긍정적이다. 그간 대통령이 연설마다 빠뜨리지 않고 강조한 ‘자유’는 추상적이지만, 이번에는 현실적인 문제를 짚었다. 특히 사회적 약자 중심의 복지, 미래 성장 동력 확보를 위한 투자를 강조했다. 전 세계적으로 공감대를 얻고 있는 포용적 성장을 하겠다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처럼 퍼주기 정책 안 하겠다고 해서 좋았다. 모든 사람한테 복지를 확대하면서 재정적자를 심각하게 만들었다. 경제 전문가들은 시장에 과도하게 유동성을 풀던 전 정부 때부터 지금의 경제 위기가 올 것이라고 예상했다.”
―퍼펙트스톰(초대형 복합 위기) 경고음이 커지고 있다.
“이미 퍼펙트스톰이 시작됐다. 전문가도 위력을 발휘하기 힘든 복합적인 위기다. 혁신과 미래 성장 동력 확보하지 않은 전 정부를 언급 안 할 수가 없다. 전 정부에서 재정적자가 급속도로 증가했다. 경제 체질이 안 좋아졌다는 것이다. 무역적자도 7개월 연속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예전에는 무역수지 적자를 경상수지로 만회하곤 했는데, 지금 경상수지도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특히 수출 물량의 40~50%를 차지하는 반도체 수출이 줄어들고 있다. 대규모 투자는 회수 기간이 길어서 미리 준비했어야 했지만, 전 정부는 대기업을 왜 도와주냐면서 외면했다. 반면 대만 정부는 TSMC를 전폭적으로 지원하면서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경쟁력을 강화시켰다. 미국과 중국도 국가 안보 차원에서 자국의 반도체 업체를 지원해주고 있다.”
―1997년 IMF,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와 비교하면 어떤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해 글로벌 공급망이 붕괴되면서 고물가 고금리 고환율 등 경제 리스크 요인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했다. 이전 위기들보다 더 심하고 해법 찾기 어렵다. IFM 때는 미국 금리 인상으로 인해 빠져나간 유동성 위기만 극복하면 됐다. 금융 위기 때는 시중에 돈을 푸는 양적완화를 통해 해결됐다. 지금 위기는 돈을 빌려오거나 풀어서 해결할 수 없는 복합적인 문제다. 단기간에 끝내면 스태그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상승)인데, 장기화되면 슬럼프플레이션이 될 수 있다.”
―환율 안정을 위해 미국과 통화스와프를 체결해야 된다는 주장이 나온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통화스와프가 심리적 안정에 큰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만병통치약은 아니다’라고 말한 것에 동의한다. 단기적으로 심리 안정을 줄 수 있지만, 환율 쇼크를 통화스와프로 막을 수 없다. 미국이 물가를 잡고자 금리를 인상하는 상황이다. 달러 강세가 지속될 것이고, 원·달러 환율은 1500원까지도 올라갈 수 있다. 돈이 빠져나가더라도 버틸 수 있는 경제 체질이 중요한데, 전 정부에서 우리 경제의 펀더멘털이 너무 약해졌다. 체력 약해진 상황에서 위기 지속된다면 외환위기로도 이어질 수 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는 “미국 금리 인상을 쫓아가자니 국내 경기와 가계부채 문제가 심각하다”고 했다.
“한국은행과 기획재정부의 딜레마가 시작됐다. 미국 금리를 어느 정도 쫓아가야 하지만, 가계부채가 심각한 위기를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올 6월 말 기준 한국 가계와 기업의 부채 총액은 4700조 원에 달한다. 미국이 물가를 못 잡아서 자이언트스텝을 한 번 더 한다고 하면 진퇴양난이다. 금리 인상을 하더라도 가계부채에 대해 적극적인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 2030 영끌(영혼까지 끌어 모으다)로 집을 산 청년층, 다중채무가 많은 자영업자 등 취약계층이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 레고랜드발 채권시장 자금 경색 사태도 금리 인상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금리 인상으로 인한 부동산 시장에 대한 우려도 많다.
“현재 부동산 거래 절벽이다. 전 정부에서 너무 많이 올랐기 때문에 급락이 예상될 수밖에 없다. 주택 공급이 이뤄지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에 지방부터 시작돼 비수도권·비강남권 등으로 확대될 것이다.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 10월 27일 윤석열 대통령이 주재한 제11차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부동산 규제 완화 대책을 발표했다. 부동산 관련 대출 규제는 개인별 소득에 따라 정해지는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과 주택담보인정비율(LTV) 50%만 남게 된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을 만나서 미래를 보고 선제적 대응해달라며 DSR도 좀 풀어달라고 했지만 반영되지 않았다.”
―레고랜드발 채권시장 자금 경색 사태가 일어났다.
“강원도와 정부가 잘못한 부분이 있다. 김진태 강원도지사는 강원도만 생각했을 것이다. 경제학자가 아니라서 회생신청이 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잘 몰랐을 것이다. 본인은 억울하겠지만, 경제 메커니즘 이해도가 부족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2010년 성남시장 때 지불유예를 선언한 적이 있지만, 그때와 현재 경제 상황이 전혀 다르다. 한국 경제를 전반적으로 보고 판단했어야 한다.”
―한쪽에서는 금리를 올려 시중 자금을 조이고, 다른 쪽에서는 돈을 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런 복합 위기는 해법을 찾을 수 없다. 그래서 상반되는 정책을 내놓을 수밖에 없다. 해법이 없기 때문이다. 50조 원 규모의 긴급 유동성 공급대책을 내놓지 않았다면, 소형 증권사들이 줄도산 했을 것이다. 그러면 진짜 심각한 위기가 왔을 것이다.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로 상당한 이익을 챙겨온 금융사를 돕는 것에 대해 도덕적 해이 논란도 있다. 하지만 정부가 시장 금리 이상으로 돈을 빌려줬다. 차환이 필요한 정도와 시기, 증권사 대출 여력 등을 모두 고려해서 차등 지급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 경제팀은 이런 위기 상황에서 “괜찮다”고 거듭 강조한다.
“경제팀을 믿을 수밖에 없다. 복합 위기라 해법 찾기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한국은 물가 빠르게 안정화되고 있다. 다만 경제 위기에 있어서 ‘괜찮다’라고 심리적 안정을 위해서 필요하긴 하지만, 위기를 인정하고 국민들 협조가 필요하다고 솔직하게 말할 시점을 고민해야 한다. 컨티전시플랜(비상계획)도 갖고 있어야 한다. 잠재성장률 저하되고 경제 동력 회복 어려워져서 장기 침체로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해법을 찾는 경우라서 막막할 것이다.”
―여야가 ‘강대강’으로 대치하면서 경제 현안이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둘러싼 ‘사법리스크가’ 정치리스크로 이어졌다. 국민들 불안감 커지고 있다. 다만 국민들이 윤석열 대통령을 뽑은 이유 중 하나가 살아 있는 권력을 수사하라는 거 아닐까 싶다. 당분간 계속될 수밖에 없고, 중간에 그만두기도 어렵다. 이런 상황은 6개월 안에 끝내고, 경제에 올인해야 한다. 그래야 2024년 총선에서 승리할 수 있다. 경제 위기 상황이 지속된다면 총선에 승리할 수 없다.”
허일권 기자 oneboo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