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느리가 아들 자살 숨기라고 했다”
▲ 고 손문권 PD의 여동생(오른쪽)과 어머니가 아들의 자살과 관련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전영기 기자 yk000@ilyo.co.kr |
“결혼 6년째 되던 어느 날 찾아와 이혼하겠다고 했어요. 이유를 물어보니 할 일이 있어서라더군요. 절대 며느리 눈에 눈물 나게 하면 안 된다고 그랬어요. 그러자 생활비나 양육비 등은 신경 안 쓰게 할 거라고 하더군요.”
고인의 모친은 임 작가에 대한 원망을 토로하면서도 고인의 전처에 대해서는 애달픈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심지어 고인이 세상을 떠난 뒤 임 작가가 두 사람 사이를 이간질하려 했다는 얘기까지 들려줬다. 결혼기념일에 자살을 한 터라 고인과 임 작가는 정확히 5년간의 결혼 생활을 했다. 5년의 결혼 생활도 평범치는 않았다. 5년 동안 고인은 1년에 두세 번 정도만 모친을 만났으며 여동생은 단 한 번 만났을 뿐이다.
“일 년에 두세 번 정도 봤어요. 휴대폰 번호가 자주 바뀌어 급한 일이 생겨 전화를 해도 연락이 안 됐어요. 호텔 뷔페 같은 데서 만나자고 연락이 오곤 했는데 그때마다 피하곤 했어요. 아들이 늘 피곤한 표정으로 며느리(임 작가) 눈치를 보는 게 싫었어요. 한 번은 며느리가 화장실 갔을 때 그렇게 힘들면 그냥 집으로 돌아오라고 말했더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하고 싶은 일이 있다고, 곧 잘될 것이니 기다려 달라고 대답하더라고요.”
도대체 고인의 부모까지 사인을 심장마비라고 속였던 까닭은 무엇일까. 이 질문에 고인의 모친은 당시엔 잠시 정신이 나갔던 것 같다고, 자신이 어리석었다고 말한다. 며느리인 임 작가의 설득에 넘어가 정말 자살임을 알리는 게 아들에게 누가 될 것이라 여겼다고 한다. 임 작가의 설득이 때론 협박이었다며 분통을 터트리기도 했다. 그렇게 사인을 심장마비로 하는 임 작가와 고인 부모의 묵계가 깨진 것은 고인의 49재를 지내고 있는 절 때문이었다.
“하루는 (임 작가가) 전화를 걸어와서 49재 지내는 절의 스님이 고인을 잘 보내려면 가족과의 인연을 끊어야 한다고 말했다는 얘길 했어요. 그 얘길 듣고 내가 격분했고 그 통화 내용을 딸이 듣고 말았어요. 그래서 딸에게 사실을 얘기하게 됐죠. 나중에 절을 찾아가 사무를 보는 스님을 만났는데 그런 얘길 하지 않았다고 하시네요. 더 기가 막힌 일은 절에서 49재를 올리면서도 사인을 심장마비라고 밝혔다는 거예요. 아무리 그걸 비밀로 하려 해도 49재 올려주시는 스님한테까지 거짓말을 한다는 게 말이 되나요.”
오빠가 심장마비가 아닌 자살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여동생은 임 작가와 몇 차례 고성이 오가는 전화통화를 했다고 한다. 그런 뒤 임 작가의 요청으로 숨겨온 오빠의 사망 사실을 외부에 알려야겠다고 결심한 것이다.
“제일 먼저 방송국에 전화를 걸어서 오빠의 자살 소식을 알렸어요. 그랬더니 금세 연락을 준다고 해놓고선 감감무소식이더라고요. 한참 있다가 전화가 와서 담당 부서가 바뀌었다고 하더니 더 이상 연락이 없었어요. 또 다른 방송국 역시 마찬가지였죠. 우리 오빠도 방송국에서 일을 했던 사람인데 너무하더군요. 임성한이라는 작가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무서울 정도였어요.”
유가족이 더욱 이상하게 여기는 부분은 고인이 남긴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임 작가가 고인 명의의 부동산이나 통장은 물론 보험조차 없다고 얘기했다는 것. 그나마 유품은 생전에 입었던 옷인데 그 옷들은 현재 여동생이 갖고 있다.
“오빠가 워낙 돈에 관심이 없었던 편이긴 했어요. 그건 우리 가족이 모두 비슷해서 우리도 오빠가 남긴 돈에 관심이 있는 건 아니에요. 그래도 이상하잖아요. 나름 인기 드라마 여러 편을 연출했는데 단 한 푼도 없었다는 게. 오빠 옷도 언니(임 작가)가 비싼 명품 옷이라 버리기 아깝다며 우리 남편이라도 입히라고 준 거예요. 세상을 떠난 남편의 유품인데 말이 됩니까. 하도 어이가 없어 제가 받아와서 가지고 있어요.”
▲ 인터뷰 중 얼굴을 감싸쥐는 어머니. 전영기 기자 yk000@ilyo.co.kr |
상황이 이렇다 보니 양측의 입장은 거듭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임 작가는 장례 과정에서 고인의 묘지를 구입하며 바로 옆에 시부모의 묘지도 함께 구입했다. 당시 임 작가는 지관이 좋은 자리라며 묏자리를 사 놓으면 더 오래 건강히 사신다고 했다고 한다. 그렇지만 유가족은 고인의 부모도 빨리 죽으라는 의미로 묘지를 구입한 것이라며 격분했다. 또한 고인이 생전에 아들의 양육비로 매달 280만 원씩 전처에게 보내줬는데 임 작가는 앞으로도 양육비를 전처에게 보내겠다고 약속했다. 또한 시부모에게도 일 년치 용돈이라며 600만 원을 입금했다는 사실이 전해졌다. 그렇지만 유가족은 “사망 사실과 자살이라는 사인을 감추기 위해 돈으로 우리를 입막음하려 했다”고 항변하고 있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