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구결번 욕심 없어…야구 인생 이미 9회를 넘어 연장전 치르는 중”
한국시리즈 1차전 9회말 극적인 동점 홈런과 5차전 9회말 끝내기 3점 역전 홈런을 치며 대타로 나와 베테랑의 존재감을 드러낸 김강민은 한국시리즈 MVP를 차지했다. 지난해 KT 위즈 박경수가 세운 한국시리즈 최고령 MVP 기록을 1년 만에 갈아치웠다. 그는 MVP 수상 소감으로 “랜더스로 구단이 바뀌고 내 야구 인생 하이라이트 필름을 만들고 싶었는데 그 소원이 이뤄졌다”고 말했다.
주전 중견수 자리를 후배 최지훈에게 넘겨주고 그라운드보다는 더그아웃에서 머무는 시간이 많아진 김강민. 그 시간들을 감사로 채우고 있는 김강민 스토리를 풀어본다.
김강민은 2001년 2차 전체 18번으로 SK 유니폼을 입었다. 지명될 때만 해도 외야수가 아니라 투수였다. 2001년에 데뷔한 선수가 2001년생 신인 선수와 함께 뛰고 있는 그에게 팬들은 ‘01년생 김강민’으로 부른다. 1982년생인 김강민의 동기들은 대부분 그라운드를 떠났다. 이대호마저 은퇴한 터라 추신수, 오승환만이 현역 선수로 남은 상태다.
올 시즌을 앞두고 진행된 인터뷰에서 김강민은 친구 추신수와 함께 SSG에서 우승을 일군 후 은퇴하는 게 소원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그 소원이 KBO 최초의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과 통합 우승으로 이어졌다. 팬들은 우승 직후 김강민의 선수 생활 연장에 대해 많은 관심을 나타냈다. 그는 “일단 내년에도 유니폼을 입고 그라운드를 누빌 것 같다”고 말했다. 그리고 “추신수도 함께 뛰자고 이야기하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2021년 2월 제주 서귀포 스프링캠프. 김강민은 추신수가 메이저리그 생활을 접고 SSG에 입단하게 됐다는 소식을 당시 주장 이재원으로부터 전해 들었다고 회상한다.
“처음엔 믿지 못했다. 그러다 다음 날 구단 공식 발표를 보고 ‘와, 나 이제 메이저리거랑 야구하는 거야?’란 생각이 들더라. SK에서 SSG로 팀명이 바뀌고 어수선한 상황에서 전해 들은 추신수의 입단 소식은 선수들 모두에게 엄청난 뉴스로 다가왔다. 그러다 진짜 추신수가 서귀포 스프링캠프에 등장했고, 같이 외야에서 수비를 하는데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때 신수랑 외야에서 그런 말을 나눴다. ‘너랑 나랑 합쳐서 (나이가) 80이다’라고. 이 나이에도 야구할 수 있는 우린 정말 복 받은 거라고 말이다.”
야구계에서 1982년생들은 유독 야구를 잘해 프로야구 최고의 ‘황금세대’로 꼽힐 정도다. 추신수 김태균 정근우 등은 2000년 캐나다 애드먼턴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는 등 프로 입단 전부터 실력을 인정받았다. 대구 출신인 김강민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이대호, 추신수의 존재를 알았다고 말한다.
“경남권 지역에서 신수랑 대호 모르는 선수들이 없었다. 그만큼 야구를 잘했다. 중학교 올라가선 대전 지역의 김태균도 유명했다. 정근우는 2005년 SK에서 처음 만났을 때 발이 빨라서 대성할 거라고 예상했는데 경기장 나가기 전 매일 스윙 연습을 하더니 이듬해 골든글러브 수상을 하더라. 당시 동갑내기 박재상(키움 코치)이랑 근우랑 정말 재미있게 야구했다. 겁도 없고, 두려움도 없었다. 한 마디로 ‘인싸’였다. 놀 땐 놀고, 운동할 땐 운동하고. 근우가 당구를 늦게 배웠는데 당구장에서 자장면 시켜 먹으며 내기했던 일도 기억에 남는다.”
김강민은 자신이 마흔 살 넘어서도 선수 생활을 하리라곤 예상 못했다고 말한다. 2018년에는 심각하게 은퇴를 생각한 적도 있었다.
“당시 긴 슬럼프로 힘든 시간을 보냈다. 햄스트링 부상 후 성적이 안 좋았는데 나이가 있다 보니 여기서 끝날 수 있겠다는 생각이 앞섰다. 은퇴를 고민하고 있을 때 코치 박재상이 아직은 더 뛸 수 있다며 격려를 보내줬다. 선수 생활을 위해 추하게 매달리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박재상 코치에게 솔직하게 말해달라고 했더니 정말 괜찮다고,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고 위로를 해주더라. 그 말에 자신감을 갖게 됐다. 이후 정말 열심히 웨이트 트레이닝하면서 몸을 만들었다. 더 이상 다리도 안 아팠고, 몸에 힘도 생겼다. 이후 후반기에 좋은 성적을 냈고, 2018년 SK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함께 이룰 수 있었다. 그때 재상 코치가 한 말을 잊지 못한다. '강민아, 앞으로 야구 그만두는 건 내가 정해줄게'라고 말이다.”
김강민은 SSG에서 주전 중견수로 활약 중인 최지훈 이야기를 할 때마다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올 시즌 최지훈은 공격 수비 주루에서 완벽한 모습을 보인 선수이고, 시간이 갈수록 그 완벽함에 세밀함을 더한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야구선수가 공수주에서 뛰어난 모습을 보이기란 쉽지 않다. 그런데 최지훈은 그걸 해내고 있다. 사실 내가 지훈이에게 해준 건 거의 없다. 아무리 선후배 사이라고 해도 나는 어느 정도 선을 긋고 그 안으로 들어가지 않는 편이다. 이미 기술적으로 성장해 있는 선수다. 야구를 하다 어느 벽에 부딪혔다면 그때는 내가 도움을 줄 수 있겠지만 그 벽에 부딪히기 전까진 자신의 야구를 하는 게 맞다. 나는 지훈이 나이 때 주전으로 뛰지 못했다. 그런 점에서 최지훈은 내게 자극을 주는 후배다.”
김강민은 자신처럼 나이가 많은 선수가 주전으로 뛰는 건 팀에 있어서는 손해라고 말한다. 자신은 백업 선수로 팀이 필요로 할 때 대타나 대수비로 나가 맡은 역할을 수행하는 게 바람직한 그림이라고 설명했다. 그래서 ‘백업’이란 단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김강민의 별명은 ‘짐승’이다. SSG 중견수 최지훈은 ‘아기 짐승’으로 불린다. ‘짐승’이란 별명의 유래는 2009년 1월 오른 새끼손가락 중수골 종양 수술을 한 다음 원래 5월 복귀였는데 3월 시범경기 때부터 수비 훈련을 하면서다. 처음에는 그 별명이 싫었다고 한다. 하지만 어느 순간 김강민의 ‘대명사’로 불리면서 별명을 좋아하게 됐다는 후문이다.
“프로 입단 후 지금까지 단 한 차례도 풀타임으로 뛴 적이 없다. 해마다 잦은 부상을 당했고, 수술도 경험했다. 자고 일어나면 종아리가 찢어져 있고, 뛰다가 부상당한 적도 수차례다. 그랬던 내가 지금까지 야구하고 있다는 게 신기할 정도다. 아마 부상 이후의 관리와 회복 과정의 노하우가 선수 생활 연장에 도움을 주는 것 같다.”
이번 한국시리즈 5차전에서 김강민이 9회 끝내기 3점 홈런을 날렸을 때 경기 후 김광현은 “내가 구단주라면 영구결번을 주고 싶다”고 했고, 최정도 김강민의 영구결번에 전적으로 동의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강민은 영구결번에 대해 욕심이 없다.
“지금까지 영구결번이 된 선배들을 보면 누구나 수긍하는, 당연히 받아야 하는 선배들이었다. 괜히 영구결번 받고 논란의 중심에 서고 싶지 않다. 물론 내 번호가 영구 결번이 된다면 가문의 영광이 되겠지만 영구 결번의 무게감이 크기 때문에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며 욕심내고 싶은 마음이 없다.”
김강민의 야구 인생은 지금 어디쯤 와 있는 걸까. 1회부터 9회까지 치르는 야구 경기에 빗대서 물었더니 그는 “이미 9회를 넘어 연장전을 치르는 중”이라고 대답한다. 2018년 은퇴를 고민했던 터라 2018년 이후부턴 연장전인 셈이고, 지금은 연장 12회를 훌쩍 넘어섰지만 주어진 시간 동안 어떤 역할도 열심히 해내는 선수가 되고 싶다는 말도 덧붙였다.
“어느 날 (추)신수에게 이런 말을 했었다. 나는 해마다 마지막이란 생각으로 뛴다고. 그랬더니 신수가 올해가 마지막이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뛰자고 말하더라. 그래서 약속했다. 둘이 같이 야구 한번 질리게 해보자고.”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