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묘한 천 모양부터 중력을 거스르는 점프까지…찰나에 포착된 모습 통해 감동·자유 느껴
앞으로 이야기 할 세 개의 에피소드는 사진작가가 바라보는 무용에 대한 이야기다.
#Episode1. 움직이는 천은 정지해 있다
그리스 철학자 제논은 ‘제논의 역설’에서 “날아가는 화살은 정지해 있다”고 말했다. 날아가는 화살은 공간을 이동하는 지속적인 움직임이 있지만 각각 개별의 시간에는 하나의 위치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이 영원한 순간들의 합이 움직임이라는 것이다.
셔터를 누르는 촬영의 순간, 나는 종종 이 제논의 역설을 떠올리곤 한다. 사진 속의 시공간은 어떤 형태를 가진 존재가 된다. 고대 그리스 시대에 카메라가 있었다면 제논의 역설을 증명해주는 존재가 되지 않았을까?
무대 위 두 무용수의 움직임이 만들어낸 절묘한 천의 모양을 보면서 ‘저 모양을 다시 만들 수 있을까? 다시 만들 수 없다면 저 모양은 오직 이 사진에서만 존재하겠구나’라고 생각했다. 30년 이상 된 염색 천, 두 무용수의 호흡과 움직임을 통해 오랜 세월 묵히고 삭은 질감으로 만들어낸 화려한 순간. 제논의 역설이 만들어낸 가장 아름답고 찬란한 모습.
이 사진 속에서 움직이는 천은 정지해 있다.
#Episode2. 호흡의 잔상
순수무용이라 일컫는 한국무용, 현대무용, 발레는 춤마다 움직임의 원리가 다르며, 이는 호흡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그래서 추구하는 아름다움의 표현도 다르다.
그중 전통춤은 호흡이 내면에서 요동친다. 가만히 있는 듯 움직이고, 움직이고 있으나 무언가를 머금고 있는 느낌. 명확한 감정의 표현이 아니기에 그 순간을 포착하기가 쉽지 않다.
춤을 출 때 무용수가 사용하는 도구를 무구(舞具)라고 하는데 천을 무구로 사용하는 춤들은 호흡이 더욱 정밀할 수밖에 없다. 장단에 따른 동작이나 발 디딤이 틀어지면 그것이 천에 전달되어 모양이 이상하게 나오거나 다음 동작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촬영 중에 춤추는 무용수 몸의 중심이 뒤로 이동하면서 천과 몸이 동시에 뒤쪽으로 들어가는 동작을 하는데 순간 천이 동그란 모양을 만들면서 그 안에 춤꾼의 얼굴이 들어왔다.
호흡으로 공간의 밀도 차를 만들어내는 인간의 움직임을 통해 순간적으로 만들어진 형이상학적인 세계.
자신이 만든 호흡 안에 자신이 직접 들어오는, 춤을 통해 춤꾼을 들어다 보는 극도의 정밀한 호흡으로 만들어지는 기묘한 순간. 천의 모양은 호흡의 잔상이다.
#Episode3. 순간을 포착한다는 건
발레는 인간의 몸이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모습을 외형적으로 드러내는 춤이다. 이상적인 모습을 보여야 하기 때문에 때로는 비현실적이다.
중력을 거스르는 점프를 하는 동안 바닥에서 하기도 힘든 동작인 다리를 일자로 찢고 그 상태로 발끝을 포인 한다. 어찌 보면 모든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행동이다. 그러한 찰나의 순간에 허락된 모습을 통해 우리는 감동을 받고 아름다움을 인식하고 약간의 자유를 만끽한다.
이러한 동작을 표현하는 무용수도 힘들지만 무용수가 만들어내는 찰나의 순간을 인식하여 사진으로 담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다. 연사로 찍으면 될 것도 같겠지만, 결과물을 보면 다르다. 무용공연에서 정점의 순간을 잘 포착한 사진은 전후 상황이 있기에 동작에서 나오는 모습 이상의 감동을 준다.
순간을 포착한다는 건 호흡을 함께하는 것이다.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일탈의 아름다움을 위해 오늘도 노력하는 이 세상 모든 무용수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옥상훈 공연예술사진작가 겸 스튜디오 야긴 대표. 국악반주에 맞춰 추는 승무에 반해 춤 사진을 찍게 된 지 올해로 17년이 되었다. 서울세계무용축제(SIDance),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 창작산실, 대한민국장애인국제무용제(KIADA) 등 다수의 공연예술페스티벌에서 사진으로 공연을 담고 있다.
옥상훈 스튜디오 야긴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