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 ‘꼴’ 나기 전에…좋을 때 나누자?
지난해 3분기까지만 해도 SKC의 지분 0.38%를 갖고 있던 최신원 회장이 11월, 12월 부지런히 지분을 사들이면서 자신의 지분을 0.81%까지 끌어올렸다. 여기다 SKC 사장이자 최신원 회장의 여동생 혜원씨의 남편인 박장석 사장의 지분도 0.15%에서 0.3%로 두배 늘어났다.
물론 SKC의 최대주주는 여전히 SK(주)(46.79%)이다. 하지만 개인 대주주 지분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 그리고 지분 매입을 할 돈이 없다는 이유로 움직이지 않고 있던 최신원 회장의 개인지분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은 향후 예상되는 SKC와 최신원 회장의 행보를 고려할 때 SK그룹의 분할구도와 관련한 거대한 변화의 시작으로 볼 수 있다.
최창원 부사장은 최근 보유중인 워커힐호텔의 지분 2.23% 전량을 주당 4만1천여원에 매각했다. 최 부사장이 판 주식의 반은 그의 사촌인 최재원 SKE&S(옛 SK엔론) 부회장이 사갔다.
최신원-창원 형제(최종건 SK그룹 창업주 2세)와 최태원-재원 형제(최종현 2대 회장 2세)간 공동 경영 형태를 취하고 있는 SK그룹의 계열 분리 구도가 가시화되고 있는 것이다.
현재 에너지와 정보통신 사업은 최태원 회장과 그 동생인 최재원 부회장이 경영을 책임지고 있으며 화학과 생명과학·소재 사업은 사촌인 최신원 회장과 동생인 최창원 부사장이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 최신원 회장이 경영을 맡고 있는 SKC와 최신원 회장의 동생 최창원 부사장이 경영에 참여하고 있는 SK케미칼이 구조조정작업을 단행하면서 소그룹화된 면모를 갖춰가고 있다.
지분 확보면에서도 SKC와 SK케미칼은 이미 최신원-최창원 형제가 최태원 회장을 앞서는 측면도 있다. 최태원 회장도 그가 SK그룹의 회장을 지내는 근거이기도 한 SK(주)의 지분은 0.87%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사실상 지주회사인 SKC&C가 11.02%를 갖고 있어서 최 회장의 지배력을 보장해주는 구도다.
때문에 이런 구도를 최신원 회장이나 최창원 부사장도 차용할 가능성이 크다. 무엇보다도 이들이 갖고 있는 개인지분이 얼마 되지 않는 데다 당장 현금화시킬 수 있는 자산도 별로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최근 최신원 회장이 경영을 맡고 있는 SKC와 최창원 부사장이 최대주주인 SK케미칼의 움직임을 보면 이들이 각각 분사와 사업집중을 통해 소지주회사-소그룹화 형태로 분화되고 있는 듯 보인다.
우선 최신원-최창원 형제의 자사 지분 확보 속도가 눈에 띄게 빨라지고 있다. 자신들이 경영을 책임지고 있는 SKC와 SK케미칼의 보유 지분에서 이들 형제의 지분이 최태원 회장을 앞지르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 2004년 12월30일 기준으로 최신원 회장은 SKC 지분 0.28%를 보유해 최태원 회장 동생인 최재원 부회장의 0.30%에 뒤졌다. 그러나 2005년에 접어들면서 최재원 부회장 지분이 변동 없이 유지된 반면 최신원 회장은 지속적으로 늘려 현재 0.81%까지 늘린 것이다. 동서인 박장석 사장의 지분까지 더하면 1%대에 진입한 것이다.
SK케미칼 최창원 부사장의 지분 확보는 더욱 두드러지게 이뤄졌다. 지난 2004년 12월30일 기준으로 최창원 부사장의 SK케미칼 지분은 5.69%였다. 당시 최태원 회장 지분은 6.37%로 개인 자격 최대주주였다. 그러나 1년여가 흐른 지금 상황이 180도 변했다. 지속적으로 지분을 매입한 최창원 부사장은 현재 9.02%를 확보해 6.37%의 최태원 회장을 크게 앞질렀다. 최창원 부사장 형인 최신원 회장이 0.05%를, 이들 형제와 친남매인 정원·지원·예정씨가 각각 0.46% 0.44% 0.65%를 확보한 상태다. SK케미칼은 지분구조상 고 최종건 회장 자녀들이 ‘주인 행세’를 하고 있는 셈이다.
이번 워커힐 매각건으로 최창원 부사장은 실탄도 마련하는 등 독립행보가 한결 가벼워졌다.
최신원 회장 형제가 경영책임을 지는 SKC와 SK케미칼이 2005년 한해 동안 벌인 구조조정 작업 역시 그룹 분할을 염두에 둔 SKC와 SK케미칼의 소그룹화 작업으로 받아들여진다. 지난 연말 SK케미칼은 보유중인 (주)SK 지분 1.54%를 처분했다. ‘재무구조 개선’이 대외적 명분이었지만 SK그룹과 SK케미칼의 연결고리가 자꾸 약해지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점은 틀림없다. SK케미칼이 (주)SK지분 매각을 통해 확보한 금액은 9백92억원 정도로 추산된다. 이 역시 SK케미칼 소그룹 차원에서의 사업확장을 위한 실탄 비축용으로 받아들여진다.
SK케미칼은 지난 2004년 말 SK제약 합병에 이어 지난 연말엔 제약업체 인투젠 주식 45.04%를 확보해 계열사로 편입시켰다. 지난해 중국 베이징에 생명과학 판매법인을 세웠으며 2008년에는 중국 현지 생산시스템도 갖출 예정도 갖고 있는 독자적인 중국 진출에 나설 채비에 한창이다.
이에 질세라 SKC도 사업확장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특히 화학사업에 대한 투자가 두드러진다. 2005년 한해동안 대부분 수입에 의존해온 첨단소재 폴리이미디 필름 생산 1호기에 4백30억원, 2호기 증설에 3백6억원을 투자했으며 2010년까지 5~7개 라인을 추가할 예정이다.
지분 확보에 이은 공격적 투자와 더불어 SKC와 SK케미칼은 자회사 숫자를 늘리면서 소그룹의 규모를 갖춰가고 있다. 최신원 회장 체제의 SKC는 지난 연말 2차전지 사업부를 SK모바일에너지로 분할 등기시켰으며 미디어사업부를 SKC미디어로 분사시킨 데 이어 최근에는 신규사업 품목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최창원 부사장이 최대주주로 있는 SK케미칼도 지난 연말 유화사업을 분리해 SK석유화학을 설립했다. 정윤용 유화사업본부장이 대표로 선임돼 역시 SK케미칼의 자회사 성격을 띠게 됐다. 이를 비롯해 SK케미칼은 석유화학 분야 등 관련 업종에서 8개 자회사를 거느리게 됐다.
지분 확보 상황과 소그룹화 현상을 근거로 SK그룹 분할 초읽기를 논하는 시각에 대해 SK그룹측은 물론 SKC와 SK케미칼의 관계자들도 ‘너무 앞서가지 말라’는 반응을 보인다. ‘시기상조’라는 것이다.
특히 그룹분할을 위해선 대주주간 지분 정리작업이 필수적인데 SK그룹은 개인 대주주 지분보다는 계열사간 상호 소유 주식이 많아 지분 정리가 간단치 않다. 대주주들이 지분정리를 위해 들일 돈이 없다는 점도 문제다.
그러나 재계 인사들은 재벌가의 생리상 SK그룹의 분할작업에 가속이 붙을 것이란 전망을 내놓는다. 재벌가에서도 돈계산이 명확치 않을 경우 언제든지 ‘집안망신’이 일어날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두산이 그랬고, 최근에는 한진그룹이 그런 예이다.
때문에 재계에선 SK의 분할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최종건 창업주의 아들들인 최신원 회장 형제와 최종현 2대 회장의 아들들인 최태원 회장 형제가 언제까지나 한배를 타고 있기는 어려워 보인다는 게 대체적인 관전평이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