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훈 구속되자 문 전 대통령이 직접 ‘최종 승인’ 언급했지만 참고인 조사도 부담…‘계획’대로 다음은 박지원
수사팀은 신중한 태도다. 수사 필요성에 대해서는 “가능성이 낮다”면서도 “(수사가) 필요한지 검토 중”이라는 입장이다. 전직 대통령을 직접 소환 조사하는 것은 부담이 클 수밖에 없기 때문인데, 검찰 안팎에서는 ‘대통령실과 검찰 수뇌부들의 판단’이 중요한 상황이라고 입을 모아 얘기한다.
#서훈 전 실장 측, 법원에 구속적부심 청구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재판부는 12월 3일 새벽 서훈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의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법조계에서도 영장 발부 여부를 놓고 의견이 분분했던 사안이었는데, 법원은 “범죄의 중대성 및 피의자 지위 및 관련자들과의 관계에 비춰 증거인멸 염려가 있다”고 설명했다.
검찰은 고 이대준 씨가 북한군의 피격을 당한 사실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자, 서훈 전 실장이 “이 씨가 자진 월북했다”고 몰아간 일명 ‘월북몰이’를 주도·가담했다고 보고 있다. 당시 청와대를 중심으로 국방부·국가정보원·해양경찰 등에게 이와 같은 취지로 보도자료를 쓰게 했다는 판단이다. 특히 2020년 9월 23일 오전 1시 즈음 열린 관계장관회의에서는 관계부처에 첩보 삭제를 지시했다는 혐의도 영장에 포함됐다. 이 씨가 피격됐다는 첩보가 접수된 다음 열린 회의였는데 검찰은 일련의 과정 속에 서 전 실장이 ‘핵심’이었다고 법원을 설득했다.
서 전 실장 측은 “피격 사실을 은폐한 것이 아니라 최초 첩보의 확인 및 분석 작업을 위해 정책적으로 공개를 늦추는 결정을 했다”고 반박했지만, 법원은 검찰의 손을 들어줬다. 익명의 검찰 관계자는 “법원의 영장 발부 설명을 보면 ‘범죄의 중대성’과 ‘증거인멸 염려’를 언급했다”며 “검찰이 수사로 입증한 지점들이 충분히 범죄로 볼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는 점과 동시에 수사를 방해할 수 있다는 점까지 고려해 영장을 발부한 것”이라고 풀이했다.
실제로 검찰은 당시 청와대의 ‘월북몰이’ 관련 증거를 제시하는 동시에 관계장관회의에서 서 전 실장이 ‘첩보를 삭제하라’고 지시한 정황을 구체적으로 강조했다고 한다. 영장전담재판부 출신의 한 변호사는 “장관급 이상의 인물에 대한 영장의 경우, 도주의 우려가 없기 때문에 영장 발부를 조금 더 신중하게 하는 부분이 있다”며 “증거인멸을 시도했던 지점들, 이를 모두 부인한 지점들이 되레 불리하게 작용한 것 아니겠느냐”고 설명했다.
서훈 전 실장 측은 법원에 구속적부심을 청구해, 구속 정당성에 대해 법원의 판단을 다시 구한다는 계획이다. 앞서 서욱 전 국방부 장관과 김홍희 전 해양경찰청장은 구속영장이 발부됐다가 구속적부심이 인용되며 석방된 바 있다.
#정황만으로 문 전 대통령 수사하긴 어려워
당초 검찰은 서훈 전 실장을 ‘최종 책임자’로 보고 수사를 진행했다. 서훈 전 실장의 영장 속에는 ‘최종 승인자’라는 표현이 등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직까지는 ‘잘하고 있다’는 게 검찰 내 중론이다. 이원석 검찰총장은 12월 2일 수사 흐름에 대해 “신중에 신중을 거듭하고 있고 수사팀도 충분히 절제하고 있다고 그렇게 알고 있다”며 수사팀의 판단이 지금까지는 적절했다는 뉘앙스로 답했다.
하지만 문재인 전 대통령이 스스로 나서면서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그동안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 수사가 진행되는 상황에서도 별다른 입장을 내지 않았다. 하지만 서 전 실장의 구속영장이 청구된 후와 발부된 직후, SNS(소셜미디어)를 통해 검찰 수사를 공개 비판했다. 특히 영장이 발부된 직후인 4일에는 “서훈처럼 오랜 연륜과 경험을 갖춘 신뢰의 자산은 다시 찾기 어렵다. 그런 자산을 꺾어버리다니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라며 검찰 수사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했다.
문제는 일련의 표현 속에서 문 전 대통령이 최종 승인권자로 본인을 스스로 지목한 것. 수사 필요성이 제기된 대목이다. 수사팀 관계자는 “아직 수사할 계획은 없다. 가능성은 낮다”면서도 수사하게 될 가능성마저는 부인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검찰 수뇌부와 대통령실의 판단에 달렸다는 반응이 나오는 이유다. 실제로 이원석 검찰총장은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수사 관련 직접적인 발언은 없었지만 “수사하면서 나온 증거를 바탕으로 죄가 되는 게 있다면 수사해야 한다”는 원칙론적인 지시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회의적인 반응이 여전히 우세하다. 지금까지 드러난 정황만으로는 문 전 대통령을 수사대상으로 삼기는 어렵다는 분석이다. 최종 승인권자라고 스스로 언급했지만, 단순 보고와 승인 절차였다면 ‘위법성을 인지했는지, 고의성이 있었는지’를 입증해야 한다. 실제로 10월에 발표된 감사원 자료를 보면 첫 대면보고 당시 문 전 대통령의 지시는 “정확한 사실 확인이 우선이다”였다. 원칙적인 수준으로 본다면 문 전 대통령을 피의자로 보기 어렵다.
추가 수사를 통해 문 전 대통령의 입증 여부를 확인했다고 해도, 피의자로 소환하는 것은 부담스럽다. 과거 고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강제 수사 이후, 검찰은 ‘정치검찰’이라는 비판을 직면해야 했다. 피의자 신분은 물론, 참고인 신분으로도 소환 조사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설사 수사를 하더라도, 소환 대신 서면 조사 정도로만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정도의 선에서 그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자연스레 ‘윗선의 판단’이 중요해진 시점인 셈이다. 앞선 검찰 관계자는 “정치적인 판단 영역이 포함됐기 때문에 이런 상황에서는 대통령실과 검찰총장 등 윗선들이 수사를 어디까지 할 것인지 정해줘야 한다”면서도 “문 전 대통령 입장문을 놓고 아직 별다른 수사 확대 기류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귀띔했다.
신중한 태도를 유지 중인 검찰은 원래의 수사 계획대로 가고 있다. 검찰의 다음 수사 대상은 박지원 전 국정원장이 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서훈 전 실장을 불러 추가적인 조사를 진행 중인 검찰은 조만간 박지원 전 원장도 소환할 방침이다. 박 전 원장은 표류 가능성을 언급한 감청 정보와 국정원 초기 보고서를 삭제하도록 지시한 혐의다. 박 전 원장은 라디오 등에 출연해 “서훈 전 실장으로부터 어떤 지시도 받지 않고 삭제 지시도 없었다. 저 자신도 없었다”고 해명했지만 검찰은 박 전 원장에 대해서도 구속영장 청구 가능성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