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는 서럽지 않으나 팀복이 없어서…
▲ 올 시즌만 더 뛰고 은퇴를 생각했던 최은성은 밀려나듯 팀에서 나오고 말았다. 구단이 ‘레전드’를 헌신짝 취급한 것이다. 사진제공=대전시티즌 |
▲ 이운재. 연합뉴스 |
K리그의 대표적인 베테랑으로 2002한일월드컵 4강 신화 창조의 주역인 이운재(39)를 빼놓기 어렵다. 전남 드래곤즈의 주전 골키퍼인 그는 이제 400경기 출전을 눈앞에 두고 있다. 1996년 수원 삼성에 입단하며 프로 무대에 안착한 이운재는 차곡히 경력을 쌓으며 앞으로 25경기 이상만 출전하면 충분히 400경기 고지를 넘어설 수 있다. 스플릿 시스템으로 인해 팀당 44라운드를 치르기 때문에 절반 이상 출전하면 충분히 기록 달성이 가능한 상황이다.
2011년은 그에게 부활의 시즌이었다. 이전 시즌(2010년) 이운재는 14경기에서 29점을 내줬다. 자존심도 상했고, 기량이 떨어졌다는 악평에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하지만 그런 이운재를 보듬어 준 건 전남이었다. 2010남아공월드컵 때 허정무 감독(현 인천 유나이티드)을 수석코치로 보좌했던 정해성 감독은 전남 지휘봉을 잡으면서 이운재의 영입을 결심했다.
승부조작 파동에 휘말려 주전 상당수가 증발해 버리는 사태를 겪었지만 전남은 이운재의 활약 속에 무난한(?) 시즌을 보냈다. 비록 6강 플레이오프(PO)에 진출하진 못했지만 그의 부활은 충분히 인정받을 만했다. 34경기에 나서 29실점에 그쳐 0점대 방어율을 선보였다.
구단도 사령탑도 이운재에 대해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다. 전남 프런트는 “이운재 없는 전남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라고 했고, 정 감독은 “이운재가 물만 마셔도 살이 찌는 체질이지만 최고 베테랑답게 생활 태도나 훈련 자세가 남다르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축구선수치고는 상당한 몸무게를 주장이란 책임감, 무게감 등으로 표현하는 센스를 정 감독은 잊지 않는다.
한때 한국 축구를 대표했던 김병지(42)도 국내 최고 베테랑 반열에 올라 있는 스타플레이어. 한 경기, 한 경기에 출전할 때마다 기록이 되고 있다. 그의 시선은 600경기 출전을 향해 있다. 570경기에 나섰으니 30경기가량 치르고 나면 프로축구판 또 하나의 전설을 쓸 수 있다. 울산 현대와 포항 스틸러스, FC서울을 거쳐 경남FC까지. 1992년부터 지금까지 산전수전 다 겪은 노장이다.
팀 내 막내와는 무려 20세 가까이 차이가 나고 있으니, 삼촌이란 호칭이 전혀 어색하지 않을 정도다. 놀랍게도 김병지는 프로연맹에 선수로 등록이 돼 있다. 30대 후반이 프로축구 지도자에 오르는 추세니까, 나이로 보면 플레잉코치도 가능할 법한데, 조광래 전 국가대표팀 감독이 갓 경남 지휘봉을 잡았을 때 한 시즌을 빼면 플레잉코치로 계약하지 않았다. 팀 역시 김병지의 존재감을 충분히 인정하고 있고, 계속 중용하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는다.
김병지는 “지금 이 나이가 돼 제대로 안 뛴다면 후배들이 어떻게 생각하겠느냐. 보는 눈이 아무래도 훨씬 많기 때문에 어정쩡한 플레이를 해서는 안 된다. 정말 부족하다 싶을 때 먼저 은퇴를 선언할 것이다. 구단의 짐이 된다거나 애물단지로 전락하는 일은 나 스스로 용납할 수 없다”고 했다.
K리그 노장들이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 또 구단들은 어떻게 대접하고 가치를 부각시켜야 하는지 알려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전남과 경남의 경우라고 할 수 있겠다.
▲ 김병지는 팀 막내와 스무 살 가까이 차이 나는 삼촌뻘 선수지만 경기력만큼은 이들에게 뒤지지 않는 베테랑 수문장이다. 사진제공=경남FC |
작년까지 대전 시티즌 수문장으로 활약한 최은성(41)은 올 시즌만 더 뛰고 현역에서 명예롭게 은퇴하고 싶었다. 그게 그의 소박한 꿈이었다. 거액의 몸값을 받고 새 팀을 찾을 수도 있을 때 오직 의리와 애정 하나로 대전을 지켰던 그였다. 1997년부터 달콤한 영광보다는 어두움과 시련이 많았지만 그래도 끝까지 대전에 남았다.
승부조작 파동의 중심에 섰을 때에도 “후배들을 원망하고 싶지 않다. 살다, 살다 이렇게 황당한 일은 처음 겪어보지만 제대로 대접을 해줬다면 이렇게 엉성한 행동으로 수사를 받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오히려 더욱 독려하고, 격려해주지 못한 내가 선배로서 미안할 지경”이라고 했던 터였다.
그랬던 레전드를 대전은 헌신짝 내치듯 떠나보냈다. 단돈 몇 천만 원이 아까워 대전 구단은 재계약을 포기했다. 그 와중에 흘러나왔던 얘기는 황당하기 짝이 없었다. 김광희 대전 사장은 2월29일 프로연맹 선수등록 마감일에 최은성이 구단 사무실을 방문하자 사장실 문을 꼭 걸어 잠근 채 “내가 저 X 때문에 잠도 못 잤다” “대충 사인해주고, 뛰지 못하게 하면 되잖아” 등 상식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막말을 내뱉은 것으로 알려진다.
최은성은 “축구 선배가 아닌, 행정가에게 그런 욕설을 들었다는 사례를 본 적이 없다. 아마 내가 처음일 것이다. 내가 그런 말을 들은 마지막 인물이 됐으면 한다. 지금까지 오직 정 하나로 대전을 위해 뛰었던 게 서글프게 느껴진다”고 고개를 떨군다.
조금이라도 팀에 애정이 있었다면 명예만큼은 지켜줬어야 했다는 비난 및 질책이 쇄도했다. 대전 구단주이자 대전시의 수장인 염홍철 대전시장이 구단 홈페이지에 “구단이 너무 사무적으로 일을 처리한 것 같다. 최은성 선수와 팬들이 받은 상처를 치유받을 수 있도록 관련자들과 진지하게 일을 처리하겠다”고 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진짜 요지는 ‘사무적’인 일처리가 아닌 ‘인간적이지 못한’ 일처리에 있었다.
어처구니없는 행정 처리는 또 있다. 최은성의 등번호 21번을 영구결번으로 만들겠다는 선언을 했던 것. 참으로 기가 막힌 일이었다. 명예를 땅에 떨어뜨려놓고, 다시 복권시키는 게 말처럼 쉬운 일도 아니다. 책임자가 진지하게 사과하는 게 선행되지 않는 한 최은성이 받은 심적 상처는 아물지 않을 것 같다.
올 시즌을 앞두고 K리그에 스플릿 시스템을 통해 4개 팀을 2013시즌 2부 리그로 보내겠다는 안건이 나왔을 때, 반대의 목소리를 가장 높이 냈던 게 대전이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그들의 행정은 ‘혹시나’가 아닌 또 다른 ‘역시나’에 불과했던 셈이다.
예나 지금이나 대전은 바뀌겠다는, 선진 축구를 하겠다는 의지가 없다. 축구 문화에 역행하는 것도 물론이다.
남장현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