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소청탁 건은 2005년 12월의 첫 번째 고발사건에서 비롯됐다. 2004년 서울서 열린 일본 자위대 창설 50주년 행사에 나 의원의 참석 여부가 설왕설래되던 때 어느 네티즌이 판사시절 나 의원이 이완용 땅 찾아주는 판결을 한 친일파라는 내용의 글을 인터넷에 올렸다.
나 의원은 즉각 그 네티즌을 허위사실 유포 등의 혐의로 고발했고, 2006년 12월 대법원에서 벌금 700만 원이 확정됐다. 명백하게 이긴 이 사건이 시장선거 과정에서 기소청탁사건으로 다시 살아나 나 씨의 정치행로를 가로막고 있는 형국이다.
기소청탁은 경찰수사가 지지부진하자 나 의원의 남편이자 사건 관할지법 판사인 김재호 판사가 관할 검찰지청 검사에게 전화를 걸어 빨리 수사해서 재판에 넘기라고 했다는 것이 요지다. 김 판사는 판사이기 전에 남편이다. 아내가 네티즌의 명백한 거짓말로 곤경을 겪고 있는 상황을 외면할 남편은 없다. 더구나 남편이 판사임에랴.
나 씨 아버지의 학교에 대한 감사제외 청탁 건도 청탁내용의 사소함에 비춰 인지상정으로 이해될 수도 있다. 나의원이 청탁을 한 당시 여당의원이 나꼼수의 진행자 겸 폭로자로 변신해 있었다는 공교로움만 빼면.
나 씨의 억울함은 충분히 인정할 수 있지만 고소고발이 능사였느냐는 아쉬움이 있다. “남편 앞에서 내가 억울한 표정을 너무 지었던 모양이다” “부모의 곤경을 모른 척하는 것이 자식 된 도리냐?”라고 넘어 갈 수는 없었냐는 것이다.
나 씨는 “청탁한 사실이 없다”고 단호하게 부인했지만 ‘남편이 검사에게 전화하고’ ‘자신이 여당의원을 찾아간’ 사실이 드러나면서 인지상정은 의혹이 돼버렸다. 법률가들이 흔히 빠져들기 쉬운 ‘법대로’의 덫에 판사와 판사 출신 정치인 부부가 빠진 꼴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2년 대선에서 장인의 공산당 부역문제가 나왔을 때 “그러면 아내와 이혼하라는 말이냐”는 한마디로 여론을 잠재운 것에 더하여 많은 여성들의 마음까지 잡았다. 상식은 때론 법을 능가하는 힘을 발휘한다.
그런 어법이 싫다면 꾹 참아버리는 것이 나았지 않았을까 싶다. 게다가 이 문제를 남녀차별, 성추행이라고까지 주장하는 것은 논리의 비약일 뿐 아니라 어리광처럼 들린다. 나 씨는 지금 이긴 싸움으로 지고 있다. 큰 정치인이 되려는 사람들은 지고도 이기는 법을 배워야 한다.
한남대 교수 임종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