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로 기름’ 먹고 재폭발 청와대 초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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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년 7월 총리실 압수수색 물품을 들고 차량에 오르고 있는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 연합뉴스 | ||
2010년 부실·축소수사 논란 등 무수한 뒷말을 남긴 채 수사를 마무리한 검찰도 비판 여론에 밀려 재수사 방침을 정한 상태다. 따라서 검찰 수사의 초점은 청와대가 실제로 개입해 불법사찰 사건을 축소·은폐하려 했는지 여부 및 지휘 라인인 이른바 ‘몸통’의 실체를 밝히는 데 맞춰질 것으로 보인다.
민간인 불법사찰 의혹 사건이 새 국면을 맞고 있다. 검찰이 지난 2010년 7월 이 사건 수사를 마무리했지만 최근 핵심 관계자의 폭로와 증거인멸 및 청와대 개입 의혹을 뒷받침하는 새로운 증거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꺼져가던 ‘불법사찰 의혹’ 불씨에 다시 불을 지핀 장본인은 장진수 전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주무관이다. 그는 얼마 전 민간인 불법사찰의 증거인멸 지시를 최종석 청와대 전 행정관으로부터 받았다고 폭로해 청와대 개입 의혹을 부추기며 사건을 수면 위로 다시 끌어올렸다.
장 전 주무관은 3월 14일에도 청와대 인사가 2000만 원을 전달하며 입막음을 시도했다고 주장해 파문을 확산시켰다. 그는 “최종석 전 행정관한테서 연락이 와 진경락 과장을 만나라고 해서 종로구청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만났다. 진 과장이 비닐 봉투 하나를 주는데 안에 돈이 있었고 2000만 원이니 받으라고 했다. 이영호 비서관이 어렵게 마련한 거니까 꼭 좀 받으면 좋겠다고 했다. 돈을 못 받겠다고 하니 조금 화를 냈다”고 폭로했다. 당시는 장 전 주무관이 증거인멸 혐의로 기소돼 2심에서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직후인 지난해 5월 중순쯤이었다.
장 전 주무관은 이후 석 달이 지난 지난해 8월 최 전 행정관과 같이 자리를 하는 등 평소 안면이 있는 이 아무개 씨를 신길역 근처 포장마차에서 만났는데 다시 돈을 들고 왔다고 주장했다. 그는 “쇼핑백 안에 검정 비닐봉투가 들어 있고 그 안에 돈이 있었는데 5만 원짜리 네 묶음이었다. 이영호 비서관이 마련해준 건데 다른 뜻 없고 아무 걱정 없이 받아서 쓰라고 해서 계속 사양하다가 결국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영호 비서관의 혐의를 입증하고 싶어 돈을 받았고 최근 이 씨에게 돌려줬다”고 주장했다. 청와대 인사가 증거인멸을 지시한 사실뿐 아니라 나중에 입막음을 위해 돈까지 줬다는 것이 폭로의 핵심이다.
민간인 불법사찰로 파문을 일으킨 지원관실이 매달 청와대에 280만 원을 상납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민주통합당 ‘MB정권비리 및 불법비자금 진상조사특별위원회’는 3월 14일 국회 원내대표실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장 전 주무관의 녹취록을 공개하며 이같이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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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시 실형을 선고받은 이인규 전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 임준선 기자 | ||
이에 따라 민주당은 “최대의 공권력을 가진 청와대 비서관이 거액의 금품을 교부하며 관련자를 매수하고 진실을 은폐한 것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며 “검찰은 이영호 비서관과 최종석 조재정 행정관, 권재진 당시 민정수석 등 청와대 관계자들을 수사해 진상을 밝혀야 한다”며 철저한 수사를 촉구하고 나섰다.
민간인 불법사찰 의혹 건과 관련해 새로운 폭로와 증거들이 속속 드러나자 한명숙 민주통합당 대표는 “이것은 가히 한국판 워터게이트 사건”이라고 비판하며 공세 수위를 높였다. 한 대표는 14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몸통을 숨기기 위해 청와대가 나서서 증거인멸을 지시한 것은 이명박 정권의 존립을 흔드는 중차대한 사건”이라며 “역대 어느 정권도 이러한 대범한 조작을 한 정권은 없었다. 이명박 정권은 겁도 없다”고 강조했다. 민주당은 검찰 수사가 미흡할 경우 19대 국회에서 특검과 국정조사를 통해 민간인 사찰 및 정권 차원의 은폐·조작 사건을 철저히 규명한다는 방침이다.
새로운 폭로와 증거자료가 속속 등장하고 민주당 등 야권의 전 방위 공세가 강화되자 검찰은 고민 끝에 재수사 방침을 정했다. 검찰은 서울중앙지검 박윤혜 형사3부장을 팀장으로 3명의 검사를 배치한 별도의 특별수사팀을 꾸려 수사를 하기로 하고, 최근 증거인멸 의혹을 폭로한 장 전 주무관을 20일 오전 소환조사키로 했다. 검찰은 장 전 주무관이 언론 등에 증거인멸 지시를 폭로했지만 그의 진술을 직접 들어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검찰은 증거인멸 부분부터 수사를 개시하지만 당시 불법사찰과 관련해 청와대의 개입 여부 등에 대한 추가 수사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수사진행 상황에 따라 이인규 전 공직윤리지원관을 포함해 2010년 수사 대상이었던 관련자 모두를 재조사한다는 방침이다.
사정당국 주변에서는 검찰이 어렵게 재수사 방침을 정한 만큼 청와대가 불법사찰 의혹 사건과 관련해 증거인멸 및 은폐에 직접 개입했는지 여부와 윗선의 실체를 밝혀내는 것이 이번 수사의 초점이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2010년 김종익 전 KB한마음 대표의 폭로로 수사에 나선 검찰은 이인규 전 지원관과 진경락 전 과장 등 7명을 기소했지만 불법사찰의 배후는 밝혀내지 못해 부실·봐주기 수사라는 비판에 직면한 바 있다. 새로운 증거와 여론의 압박으로 다시 칼날을 세운 검찰이 살아있는 권력 심장부를 상대로 불법사찰 사건의 실체적 진실과 ‘몸통’을 밝혀내고 구겨진 자존심을 회복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