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가의 손은 늑대손” vs “2년 전 일을 왜 지금”
▲ 지난해 8월 세계조리사연맹(WACS) 대전 세계조리사대회 성공개최 전진대회에 참석한 남춘화 한국조리사회중앙회 회장. 연합뉴스 |
지난 3월 12일, 서울 중구 외환은행 본점 앞에서는 ‘2012대전세계조리사대회(2012 WACs Congress Daejeon)’ D-50을 알리는 기념행사가 열렸다. 이날 이곳에서는 대회의 성공적인 개최를 기원하기 위한 조리기구 퍼포먼스 공연이 열려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대회의 개막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실감케 하는 행사였다.
▲ 세계조리사대회 D-50 기념행사. 연합뉴스 |
세계조리사대회는 전 세계 셰프들의 올림픽이자 축제의 장이다. 이 대회는 ‘WACS’(World Association of Chefs Society)가 직접 주관하는 대회다. WACS는 전 세계 97개국을 회원국으로 두고 있으며 84년 역사를 자랑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조리사 직능단체다. WACS는 전 세계를 순회하며 2년마다 한 번씩 총회를 겸한 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 WACS의 공식 회원사는 한국조리사회중앙회다. 지난 2010년 중앙회는 대전시와 함께 2012년 세계조리사대회 유치에 성공했으며 그해 10월 27일 조직위를 창립했다. 대회의 조직위원장은 염홍철 대전시장이 직접 맡기로 하고 대회장은 문제의 남 회장이 맡았다.
일간지 보도에 따르면 남 회장은 자신이 중앙회 회장직에 취임한 직후인 2010년 5월부터 12월까지 사무실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여성 A 씨와 해외출장지에서 통역업무를 하던 B 씨를 상대로 모두 10여 차례 성추행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남 회장은 지방 출장지에서 A 씨에게 “나랑 같이 방을 쓰자”라고 말하는가 하면 협회 회장실에서는 “너는 왜 나에게 마음의 문을 열어주지 않느냐. 따로 술자리를 갖고 진실된 이야기를 하자”며 손을 잡고 노골적인 요구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팔과 가슴, 속옷 부위를 만지는 등 신체적 접촉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남 회장은 또 해외 출장지에서 통역업무를 봐주던 B 씨의 무릎과 다리를 더듬는가 하면 행사장에서 엉덩이를 쓰다듬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남 회장은 이 같은 혐의로 지난 2010년 12월 피소됐다. 최근 공판은 3월 9일 열렸으며 다음 공판은 3월 23일로 잡혀있다.
문제는 이러한 남 회장의 ‘섹스 스캔들’이 사적인 영역을 넘어 자신이 대회장으로 있는 2012대전세계조리사대회에 찬물을 끼얹게 됐다는 것이다. ‘초밥왕’이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그의 개인적인 명예에 치욕스런 오점을 남겼다는 것을 넘어 국제적인 망신으로 비쳐질 수 있기 때문이다.
대전세계조리사대회에 투자되는 예산만 총 99억 원에 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꽤나 큰 국제행사인 셈이다. 대회는 WACS 총회는 물론 전 세계 요리사들이 참가하는 요리경연대회와 식품산업전까지 기획되어 있다. 평소 ‘한식의 세계화’를 위해 각종 프로그램을 직접 기획하거나 동참하고 있는 영부인 김윤옥 여사가 직접 대회의 명예조직위원장직을 맡았을 정도로 정부의 지원과 기대감도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 셰프들의 축제 속에서 ‘한식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고 더불어 한국의 식품산업을 홍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대회장의 ‘섹스스캔들’로 인해 오점이 남게 된 것이다.
조직위 측은 뒤늦게 알려진 남 회장의 성추행 의혹에 대해 난감해 하면서도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기자와 통화한 조직위 관계자는 “대회를 코앞에 둔 상황에서 대회장을 맡고 있는 남 회장의 성추행 의혹이 제기돼 무척 난감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그 문제와 별개로 대회는 정상적으로 치를 것이다. 중앙회와 대전시가 공동 유치하는 형태지만 조직위 자체가 대전시 공무원들이 파견해 조직된 것인 만큼 대회 준비와 운영은 대전시가 한 것이다. 남 회장의 대회장 직함은 명예직으로 봐야 한다. 남 회장의 사적인 문제 때문에 대회에 영향을 준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조직위 측에서 남 회장에 대해 공식적으로 밝힐 입장도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조직위의 주장과 달리 대회의 메인행사인 WACS 총회의 공식회원사는 한국조리사회중앙회다. 따라서 대회장이라는 직함이 명예직이라는 조직위 관계자의 설명은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 대회장의 ‘섹스 스캔들’에 대해 사적인 영역으로 치부하며 소극적으로 대처하고 있는 조직위의 태도에는 분명 문제의 소지가 있어 보였다.
기자는 중앙회 측에 직접 전화해 남 회장과의 연결을 시도했지만 중앙회 측은 이에 응하지 않았다. 기자와 통화한 중앙회 측 관계자는 “혐의 내용을 떠나 남 회장이 피소당한 것은 벌써 2년 전의 일이다. 당시 두 여성이 피해사실을 노동위원회에 알려 피소된 것으로 알고 있다. 아직 1심도 끝나지 않았고 공판이 진행되고 있는 중이다. 결론도 나지 않은 사적인 일이다. 대회를 코앞에 둔 시점에서 언론이 왜 이미 오래 된 일을 보도했는지 그 의도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남 회장의 회장직 사퇴 여부와 관련해서도 이 관계자는 “판결이 나지 않은 상황에서 거론할 문제가 아니다”라며 일정한 선을 그었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