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안드는 승계? ‘스와프’ 잘하면 돼요
▲ 그래픽=송유진 기자 eujin0117@ilyo.co.kr |
최근 넥센그룹의 지주사인 넥센(주)의 1대주주가 강병중 회장에서 강호찬 사장으로 바뀌었다. 강 사장이 돈 주고 지분을 산 게 아니다. 넥센의 유상증자에 강 사장이 넥센타이어 보유주식을 현물출자하는 방법이다. 외형으로 보면 시가총액 1600억 원의 넥센보다 시총 1조 5000억 원의 넥센타이어가 훨씬 크다.
따라서 넥센타이어 지분 8.22%를 넥센 지분 37.89%와 바꾸면서 강 사장의 넥센타이어 지분율은 10.78%에서 2.56%로 줄었지만, 대신 넥센 지분이 12.62%에서 50.51%로 늘어났다. 이로써 넥센타이어에 대한 지배력이 약해진 듯 보이지만, 넥센타이어 지분 40.48%를 가진 넥센의 확실한 최대주주가 됨으로써 넥센과 넥센타이어 모두를 지배하게 된 것이다.
익명의 애널리스트는 “지주회사인 넥센이 굳이 돈이 필요한 것도 아닌데 유상증자를 한 것은 결국 최대주주의 지배력 강화의 한 과정일 뿐이다. 그리고 이는 일반 주주들은 넥센 유상증자에 응하는 것보다 그냥 넥센타이어 주주로 남는 게 더 유리하다는 셈법을 절묘하게 이용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이 같은 부자승계의 준비과정은 꽤 오랜 시간이 걸렸고, 돈도 들었다. 시작은 지난 2000년으로 거슬러간다. 강 사장은 2000년 4월부터 12월과 2001년 4월, 약 14억 원을 들여 넥센타이어 주식을 장내매수한다. 자금 출처는 근로소득 및 수증(증여받음). 돈 주고 산 주식은 223만 2900주(주식분할 후 기준)에 불과하다. 강 사장의 넥센타이어 지분율을 높여준 결정적 계기는 강 회장이 증여한 약 800만 주다. 증여 당시 주가를 감안하면 약 400억여 원 규모. 최근 강 사장이 넥센에 현물출자한 780만 주의 가치는 1491억 원에 달한다.
강 사장이 이번 주식 스와프(Swap, 맞교환) 전 넥센의 주주가 된 과정도 넥센타이어와 비슷하다. 약 15억 원을 들여 장내매입한 지분 7만여 주가 있지만 10% 넘는 지분율을 갖게 된 결정적 계기는 가족에게 증여받은 13만여 주와 2007년 6월 부친으로부터 받은 13만 주다. 두 차례 증여분을 당시 시가로 따지면 70억 원 정도로 추정된다.
결국 강 사장의 경영권 승계에 투입된 자금흐름은 주식증여 470억여 원, 현금증여 및 급여 30억여 원 등 500억 원이다. 일찌감치 증여를 통해 준비를 한 점이 핵심이지만, 시가총액 1조 6000억 원이 넘는 그룹의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세금 부담은 그리 크지 않았던 셈이다.
SK그룹의 경우도 지난 2007년 4월 당시 SK(주)가 SK홀딩스와 SK에너지로 분리하면서 비슷한 작업이 시작됐다. 당시 최태원 회장의 SK에 대한 지배력은 12.13%(직접 보유 0.97%, SK C&C 통한 보유 11.16%)에 불과했다. 단, 최 회장의 SK C&C 지분율은 44.5%에 달했다. 회사 분할 후 최 회장과 SK C&C가 가진 SK에너지 지분으로 SK홀딩스 유상증자에 현물출자하면서 SK홀딩스에 대한 최 회장의 지배력은 27.33%로 늘어난다. 이후 SK C&C가 장내매수를 통해 SK홀딩스 주식을 매수해 현재 지분율은 31.84%다.
그럼 최 회장은 SK C&C에 대한 지배력을 어떻게 갖게 됐을까? 오늘날 SK텔레콤을 인수하기 위해 1991년 선경그룹은 오늘날의 SK C&C인 선경텔레콤이란 회사를 설립한다. 이후 대한텔레콤으로 이름을 바꾸는데, SK텔레콤 인수 이후 SK그룹은 최태원 회장에게 이 회사 지분의 70%, 70만 주를 판다. 문제는 주당 400원에 불과한 가격. 30년 전이지만 재벌에게는 ‘껌값’인 2억 8000만 원이다. 이 문제는 후에 대한텔레콤과 SK텔레콤이 합병을 추진하면서 불거졌는데, 시민단체의 반대로 합병은 무산됐다. 대신 최 회장은 자신의 지분 일부를 SK텔레콤에 무상증여한다.
선친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막대한 상속세 부담을 안고 경영권을 물려받은 최 회장에게 SK C&C는 천군만마의 위력을 발휘한다. 이후 SK글로벌(현 SK네트웍스), 소버린 사태를 겪으며 당시 그룹 지배의 핵 SK의 최대주주가 SK글로벌에서 SK C&C로 넘어갔기 때문이다. 특히 소버린 사태는 최 회장의 낮은 지분율도 원인이었던 만큼 이후 SK는 LG그룹의 사례를 집중 연구해 인적분할 후 주식맞교환이란 방법을 통해 SK C&C를 통한 강력한 지배구조를 만들어낸 것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재벌이라고 해서 현금이 많은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자산이 주식, 그 다음은 부동산인데 현금화가 어렵다. 그런데 SK의 경우 막대한 상속세를 내는 것은 물론이고 예상되는 형제들과의 지분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유하기 위해 상당한 현금이 필요했을 것”이라며 “이 때문에라도 세금부담 없는 상속이 지상과제가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한편 이러한 승계 방식이 각광받으면서 지주사들의 투자 매력도가 떨어진다는 분석도 있다. 한 헤지펀드 매니저는 “이중과세 문제 때문에 배당매력도 없고, 끊임없이 인적분할을 통해 지주회사를 만들 수가 있다 보니 현재 존재하는 지주회사에 대한 투자매력이 있을 리 없다”고 지적했다.
최열희 언론인
용어정리
인적분할: 존속 회사 주주들이 지분율대로 신설 법인의 주식을 나눠 갖는 기업분할 방식을 말한다. 신설 회사와 존속 회사의 주주가 분할 초기에는 동일하지만 주식거래 등을 통해 지분구조가 달라지므로 독립된 형태를 띤다. 이와 비교해 물적분할은 분리, 신설된 회사의 주식을 모회사가 전부 소유하는 기업분할 방식을 말한다. 기존 회사가 분할될 사업부를 자회사 형태로 보유하므로 자회사에 대한 지배권을 계속 유지한다.
지주사 이중과세 문제: 지주사는 자회사 배당이 주요 수익원이다. 따라서 지주회사가 자회사에서 배당을 받은 후에는 배당소득세를 내야 한다. 그런데 배당소득세를 낸 배당소득을 다시 지주사 주주들에게 배당하게 되면 지주사 주주들은 또 배당소득세를 내야 한다. 결국 자회사에 직접 투자해서 배당을 받으면 배당소득세를 한 번만 내면 되지만, 지주사를 통해 배당을 받으면 이중으로 배당소득세를 내는 불리함이 발생한다.
인적분할: 존속 회사 주주들이 지분율대로 신설 법인의 주식을 나눠 갖는 기업분할 방식을 말한다. 신설 회사와 존속 회사의 주주가 분할 초기에는 동일하지만 주식거래 등을 통해 지분구조가 달라지므로 독립된 형태를 띤다. 이와 비교해 물적분할은 분리, 신설된 회사의 주식을 모회사가 전부 소유하는 기업분할 방식을 말한다. 기존 회사가 분할될 사업부를 자회사 형태로 보유하므로 자회사에 대한 지배권을 계속 유지한다.
지주사 이중과세 문제: 지주사는 자회사 배당이 주요 수익원이다. 따라서 지주회사가 자회사에서 배당을 받은 후에는 배당소득세를 내야 한다. 그런데 배당소득세를 낸 배당소득을 다시 지주사 주주들에게 배당하게 되면 지주사 주주들은 또 배당소득세를 내야 한다. 결국 자회사에 직접 투자해서 배당을 받으면 배당소득세를 한 번만 내면 되지만, 지주사를 통해 배당을 받으면 이중으로 배당소득세를 내는 불리함이 발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