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슐린 공복 섭취 시 ‘저혈당 쇼크’…아토피 약은 낮, 비염 약은 저녁, 관절염 약은 취침 전이 ‘황금시간’
#잘못된 약 복용 시간 ‘목숨도 위협’
“약을 잘못된 시간에 복용할 경우 자칫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심하면 생명에 지장을 주기도 한다.” 와세다대학 교수이자, 약학 박사인 시바타 시게노부 씨는 이렇게 경종을 울렸다.
대표적인 예가 골다공증 치료제인 ‘라록시펜염산염’이다. 기존 골다공증 치료제들보다 상대적으로 부작용이 적다고 평가되지만, 혈액을 응고시키는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 혈액은 아침에 점도가 높아 응고되기 쉽다. 만약 아침에 라록시펜염산염을 복용하면 체내 혈전증 위험률이 높아지게 된다.
마찬가지로 골다공증 치료제로 쓰이는 ‘활성형 비타민 D3 제제’도 아침에 복용하는 것을 권장하지 않는다. 혈중 칼슘 농도를 과도하게 높여 고칼슘혈증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권태감과 피로, 근력저하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특히 주의가 필요한 것이 당뇨병 치료제로 널리 알려진 ‘인슐린’이다. 혈당을 낮추는 작용을 하는 인슐린 제제는 많은 당뇨병 환자들에게 처방되고 있다. 그러나 식간(식사와 식사 사이의 공복)에 복용하면 혈당 수치가 급격히 떨어지는 저혈당 상태를 초래하기 쉽다. 만일 저혈당인 채로 혈당을 올리지 않고 방치할 시 의식을 잃거나 혼수상태에 빠지는 ‘저혈당 쇼크’로 이어진다. 복용 권고 시간을 반드시 지켜야 하는 약제다.
시바타 교수에 의하면 “우리 몸에는 생리학적 과정을 조절하는 생체시계가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 신장은 낮에 활발히 움직이는 한편, 밤에는 활동량이 떨어진다. 하루 종일 효율적으로 장기를 움직이기 위해서 일정한 리듬이 정해져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 시바타 교수는 “생체시계 리듬을 고려하지 않고 약을 복용할 경우 뜻밖의 오류가 생기게 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생체시계에 따라 하루 중 가장 큰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시간을 골라서 약을 복용한다든지, 부작용을 억제하는 연구가 진행 중이다. 이를 ‘시간약리학’이라고 부른다.
#종류별 약 복용 ‘황금시간대’
그렇다면 우리가 흔히 먹는 약들의 최적 복용 시간은 언제일까. 먼저 아토피 등 피부질환 증상을 억제하는 데 쓰이는 스테로이드 제제는 부작용으로 불면증을 야기시킨다. 조금이라도 수면의 질을 떨어뜨리지 않으려면 낮에 복용하는 것이 좋다. 반대로 알레르기성 비염 증상 완화에 사용하는 항히스타민제는 졸음을 유발하므로, 저녁에 복용하는 편이 바람직하다.
최신 연구에 의하면 “질병마다 증상이 발현되기 쉬운 시간대가 있다”고 한다. 시간에 따라 호르몬 분비나 면역반응이 달라지기 때문인데, 일례로 염증을 억제하는 호르몬 수치는 한밤중에 최저치가 된다. 감기 증상이 밤에 더 심해지는 걸 떠올리면 이해가 빠르다.
류머티즘 관절염의 경우 염증성 물질 ‘사이토카인’이 통증을 유발한다. 사이토카인의 분비는 심야부터 새벽 사이 활발해진다. 따라서 약의 효과를 최대한 누리려면 취침 전 복용하는 것이 최선이다. 연구에서도 통증이 심한 아침이 아니라, 취침 전 복용했을 때 사이토카인을 억제하는 효과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소화기계 질환도 밤에 원인 물질이 분비된다. 위산은 소화성 궤양의 대표적인 유발인자로 “위산이 없으면 궤양도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위산 분비량은 저녁 7시부터 자정 사이 크게 늘어난다. 위산 분비 과다를 억제하는 ‘H2 억제제’나 ‘제산제’의 경우 저녁 복용을 권장하는 이유다.
나쁜 콜레스테롤을 증가시키는 이상지질혈증 역시 적절한 시간 내 복용함으로써 원인 물질의 분비를 억제할 수 있다. 간에서 합성되는 콜레스테롤은 야간에 정점을 찍는다. 예컨대 오전 8시부터 정오까지보다 오후 8시부터 자정이 4배 빠르게 합성한다. 따라서 스타틴 같은 약제는 저녁 식후에 복용하는 게 훨씬 효과적이다.
현재 고혈압 치료 지침에는 혈압약을 어느 특정한 때에 복용하도록 권장하는 사항은 없다. 다만 의사들은 대개 아침에 복용하도록 권장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혈압은 아침에 가장 높다. 잠에서 깬 몸을 각성시키기 위해서다. 특히 고혈압 환자는 낮과 밤의 평균혈압이 10% 이상 차이가 나곤 한다.
하지만 고혈압 환자 중 일부는 밤에도 혈압이 떨어지지 않는 ‘논디퍼(non-dipper)’ 증세를 보인다. 이런 경우 기존대로 아침에 약을 먹으면 효과가 떨어진다. 논디퍼형은 아침이 아니라 취침 전에 복용해야 한다. 해외 연구에서도 ‘논디퍼형은 취침 전 복용하는 것이 아침에 복용하는 것보다 혈압이 많이 떨어진다’는 결과가 다수 있다. 참고로 자신이 논디퍼형인가를 확인하는 방법은 기상 후와 취침 전 혈압을 정기적으로 측정하면 된다.
자몽주스 주의하세요! 약과 음료 상극 조합
Q. 식후 차를 마시는 김에 약을 먹어도 될까?
정답은 X. 녹차 등에는 카페인이 포함돼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예를 들어 기관지염이나 천식에 사용하는 약 ‘테오필린’은 카페인이 함유된 음료와 함께 섭취하면 신경을 흥분시키는 작용이 강해지거나 약효가 떨어진다. 그 결과 두통, 가슴 두근거림, 짜증 등의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카페인은 녹차, 커피, 홍차 등의 음료 외에도 에너지 드링크와 콜라에도 포함돼 있으므로 주의가 필요하다.
Q. 몸에 좋은 과일주스는 약이랑 먹어도 괜찮다?
정답은 X. 특정 약과 자몽주스를 먹으면 부작용을 초래한다는 사실은 익히 잘 알려져 있다. 고혈압제, 칼슘길항제, 면역저해제, 최면진정제, 스테로이드 호르몬제 등이 이에 해당한다. 주의가 필요한 과일주스는 자몽뿐만이 아니다. 애플주스나 오렌지주스도 약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예를 들어, 알레르기 치료제인 ‘펙소페나딘’은 과일주스와 함께 섭취하면 흡수율이 크게 떨어진다. 우유 또한 위산을 중화시켜 약의 보호막을 손상시킴으로써 약물이 대장으로 가기 전 위장에서 녹아버리게 만든다. 기본적으로 약은 꼭 물과 함께 먹어야 한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