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최초 5위팀의 챔프전 우승…“다음 시즌 진짜 마지막인 내 농구 인생 멋지게 마무리하고 싶어”
KCC는 시즌 개막전부터 강력한 우승 후보 팀으로 꼽혔다. 정규리그 최우수선수(MVP) 출신의 포워드 최준용을 자유계약선수(FA)로 영입했고, 허웅 이승현 라건아로 이어지는 막강 라인업을 완성했으며 시즌 중 또 다른 MVP 출신인 송교창이 전역 후 합류하면서 ‘슈퍼팀’이 완성됐다.
스타플레이어들로 구성된 KCC는 시즌 초반 주축 선수들의 부상과 호흡이 맞지 않는 팀플레이로 좀처럼 살아나지 못했다. 세 차례의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이룬 ‘우승 청부사’ 전창진 감독도 “슈퍼팀이라 불리는 팀이 이런 성적을 내 창피하다”고 말할 정도였다.
KCC는 6강 플레이오프부터 정규리그 때와 다른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선수들이 개인이 아닌 팀플레이에 나섰고, 라건아가 중심을 잡은 상황에서 최준용, 송교창이 속공 플레이로 상대의 골밑을 파고들었으며 허웅이 가드로서 볼배급을 잘 이끌어 나갔다. 덕분에 KCC는 6강 플레이오프에서 서울 SK에 3연승을 거뒀고, 4강전에서는 정규리그 우승팀인 원주 DB를 3승 1패로 제압한 다음 챔피언결정전에 올라 KT에 4승 1패로 우승을 거머쥐었다.
부산 KCC의 드라마틱한 챔피언결정전 우승 후 5월 9일 KCC 구단은 전창진 감독과 1년 더 동행하면서 기존 계약대로 2024-2025시즌까지 전 감독이 팀을 이끈다고 밝혔다. 보통 우승팀 감독이라고 하면 앞당겨서 재계약을 하거나 다음 시즌 팀을 맡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그러나 전 감독은 시즌 중 자신이 한 말이 있기 때문에 우승 직후 곧장 사퇴하려고 했다.
전 감독은 정규리그 우승팀 원주 DB를 4강 플레이오프에서 3승 1패로 꺾은 직후 “(팬들한테) 욕을 많이 먹었다. 트럭 시위도 여러 번 있었고, 물러나라는 소리를 많이 들었는데 깨끗이 잘하고 물러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챔피언결정전을 준비하면서 선수들한테도 “내가 잘 물러날 수 있도록 도와달라”며 독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5월 10일 전화 연결이 된 전창진 감독은 이와 관련해 솔직한 심경을 전했다.
“사실 우승 직후에는 이미 내가 말한 내용도 있고 해서 (감독직에서) 물러나려 했다. 그런데 13년 만에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달성한 잔칫날에 내 거취 문제로 찬물을 끼얹는 것 같아 우승 직후 입장을 전하기 어려웠다. 그러다 구단에서 내년 계약 기간까지 계속 가자고 먼저 이야기를 꺼냈고, 여러 상황들을 고려해 구단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전창진 감독이 시즌 치르며 가장 힘들었던 건 선수들 부상과 일부 팬들의 트럭 시위였다고 한다.
“그때는 진짜 그만두고 싶었다. 감독으로서 내가 능력이 안 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우승할 수 있는 멤버들을 데리고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하는 건 전적으로 감독 탓이다. 부상도 핑계일 수 있다. 더욱이 팬들도 등을 돌린다고 생각하니까 정말 괴롭더라. 플레이오프 앞두고 선수들한테 당당하게, 멋지게 해보자고 당부했다. 그다음 우승 여부와 관계없이 정규리그 성적에 책임을 지고 그만두려 했던 것이다.”
KCC의 전력만 보면 우승하지 못하는 게 이상할 정도다. 전 감독도 시즌 전 “우승하지 못하면 그만두는 게 우승 공약”이라며 자신감을 나타냈다.
그러나 시즌이 시작하기도 전에 최준용이 KBL 컵대회에서 부상으로 첫 5경기를 결장했다. ‘슈퍼팀’이라 불린 KCC는 시즌 초반 4연패에 빠지며 좀처럼 치고 나가지 못했다. 상무에서 전역한 송교창도 늦은 복귀 후 시즌 막판 종아리와 발가락 부상 등으로 이탈했다. 부상자가 속출하면서 손발을 맞출 시간이 부족해 경기 중 턴오버가 나오는 등 흐름을 내주는 일이 잦았다.
“유난히 이번 시즌 부상 선수들이 많았다. 대체 선수들로 팀을 꾸려가야 하는데 그마저 여의치 않았다. 다행히 경기가 거듭될수록 알리제 존슨이 팀에 녹아들었고, (아시아쿼터 선수인) 켈빈 에피스톨라의 합류로 가드 라인을 보강했던 게 전력에 큰 도움이 됐다.”
전창진 감독은 10개 팀 감독 중 유일한 60대 베테랑 지도자다. 2002년 원주 TG(원주 DB)의 사령탑을 맡은 뒤 ‘치악산 호랑이’로 기세를 떨치며 세 차례 우승을 이끌었다. 그런 그가 이번 시즌을 치르며 ‘용장’이 아닌 ‘덕장’으로 변모했다.
“시대가 많이 바뀌었는데 그 흐름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이전 스타일을 추구한다면 선수들과 거리가 생길 수밖에 없다. 내가 아날로그라면 선수들은 디지털 세대다.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만나면 삐걱거리기 마련이다. 그럴 때마다 선수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려고 노력했다. 이전의 나라면 무조건 밀어붙이는 편이었는데 지금은 선수들의 장단점을 접목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아가려고 했다. 내가 그렇게 변화할 수 있었던 건 이번 시즌이 내 농구 인생의 마지막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전창진 감독은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인연을 맺은 농구와 어느새 50여 년을 동고동락하고 있다. 그는 이번 시즌에 모든 걸 쏟아붓고 멋지게 마무리하고 싶은 바람이 있었다. 그 생각 하나로 버텼고, 그 결기로 선수들을 이끌며 플레이오프부터 챔피언결정전까지 화려한 피날레를 이룰 수 있었다.
“시즌 초 ‘슈퍼팀’으로 큰 관심을 받았던 선수들이 성적을 내지 못하자 선수들 스스로 자존심이 상했던 것 같다. 선수들도 우승에 대한 목마름이 있었고, 그 과정에서 허웅이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라건아도 몸 관리를 잘했고, 올 시즌 마치고 FA라 마지막이란 생각으로 코트를 뛰어다녔다. 이토록 우승을 이룬 요인들이 한둘이 아니다. 나도 감독 생활하면서 이런 경험을 하며 우승한 건 처음이라 가슴이 더 벅차올랐다.”
정규리그를 5위로 마친 KCC는 플레이오프에서 국가대표 라인업이 집중력을 발휘하며 최고의 경기력을 보였다. 정규리그 4위 서울 SK를 3연승으로 꺾고 4강에 오른 KCC는 정규리그 우승 팀인 원주 DB까지 잡으며 돌풍을 예고했다. 경기 때마다 허웅, 라건아, 최준용이 맹활약을 펼치며 ‘슈퍼팀’의 위용을 자랑했고, 마침내 챔피언결정전까지 올랐다.
“챔피언결정전에서 만난 KT는 정규리그 때 상당히 벅찼던 팀이었다(3승 3패). 정규리그 득점왕 패리스 배스와 물오른 기량을 선보인 허훈의 활약에 고전했지만 우리 선수들의 정신력과 몸 상태가 정규리그 때와 큰 차이가 있었다. 거기다 코치들이 전력 분석을 아주 잘해줬다. 선수들이 고루 체력 안배를 하며 챔피언결정전에 임했던 게 좋은 결과로 나타났다.”
정규리그 3위를 차지했던 KT는 6강에서 울산 현대모비스를, 4강에선 창원 LG를 따돌리고 무려 17년 만에 챔피언결정전에 올랐고, 정규리그 5위의 KCC는 2010-2011시즌 이후 13년 만의 우승 도전이었다. 이번 챔피언결정전의 또 하나의 관전 포인트는 허웅과 허훈의 ‘형제대결’이었다. 챔피언결정전 사상 찾아보기 어려운 형제 간 맞대결이라 미디어에서는 ‘형제의 난’이라고 표현했을 정도다.
허훈은 감기 몸살에도 불구하고 링거 투혼을 펼치며 2차전부터 5차전까지 40분 풀타임을 소화했다. 형 허웅은 챔피언결정전 평균 18.8득점, 5.4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우승컵을 들어 올렸고, MVP를 수상했다. 전창진 감독은 허웅이 선후배들 사이에서 중심을 잘 잡고 리더십을 발휘하며 챔피언결정전 우승에 큰 역할을 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KCC 감독을 맡고 우승을 이루기까지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나는 항상 구단에 미안하고 죄송한 마음뿐이었다. 개인적으로 어려운 시간도 있었는데 KCC 구단의 배려에 농구 인생의 마지막을 잘 마무리해가는 것 같다. 이번 우승으로 구단에 빚진 걸 조금은 갚지 않았나 싶다. 우승은 하기도 힘들지만 그걸 지키기도 어렵다. 다음 시즌 잘 준비해서 진짜 마지막인 내 농구 인생을 멋지게 마무리하고 싶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