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타기 작전’ 통할까 역풍 불까
▲ 최금락 청와대 홍보수석은 지난 3월 31일 기자간담회를 열어 “민간인 사찰 문건 중 80% 이상 한명숙 대표가 총리로 재직하던 노무현 정부에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밝혔다. 청와대사진기자단 |
청와대가 총선을 며칠 앞둔 민감한 시기임에도 자신들을 향해 옥죄어 오는 민간인 불법사찰에 대해 드디어 입을 열었다. 그 주장도 충격적이다. 청와대는 최금락 홍보수석이 직접 브리핑에 나서 “검찰이 법원에 제출한 CD에는 문서 파일이 2619건이 들어있으며, 이 가운데 80%가 넘는 2200여 건은 이 정부가 아니라 한명숙 민주통합당 대표가 총리로 재직하던 노무현 정부에서 이뤄진 사찰 문건”이라고 주장했다. 더 나아가 사찰 문건에 대한 검찰 수사가 끝나면 노무현 정부 때 총리나 비서실장, 민정수석 등을 지낸 사람도 책임질 일이 생길 수 있다며 공세를 이어가고 있다.
청와대가 이렇게 자신 있게 반박하는 근거는 무엇일까. 문건들 중 80% 이상이 노무현 정부 때 작성된 것인 데다 현 정부 때의 사안인 나머지 20%도 검찰수사 결과 종결처리 됐다는 점에서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하지만 이런 낙관론이 언제까지 갈 수 있을지 의문을 제기하는 측도 있다.
일단 공개된 문건의 실체부터 살펴보자. 이번에 KBS 새노조 측이 공개해 논란이 되고 있는 사찰 의혹 자료는 김 아무개 전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조사관(점검1팀 소속)이 검찰에 제출한 USB(저장장치)에 담겨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지난 2010년 7월 민간인 불법사찰 문제가 발생했을 때 검찰이 입수해 확인 조사한 후 법원에 증거로 제출한 자료를 KBS 새노조측이 자체 정보망을 통해 입수한 것이다.
여기에는 이명박 정부와 노무현 정부의 자료가 혼재돼 있다고 한다. 노무현 정부 시절에 작성된 문건들은 대부분 감찰업무를 맡고 있는 경찰청 감찰담당관실 등에서 작성한 것으로 알려진다. 정당한 감찰 활동을 통해 작성된 자료가 많다는 것이다. 지난 2005년부터 2007년 사이에 작성된 노무현 정부 자료에는 ‘경찰간부들 동향’이나 ‘무궁화클럽 결성과 대응 방안’ 등이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상당수 노무현 정부 자료에는 제목 옆에 ‘감찰담당관실’이라고 명시돼 있다. 경찰청 감찰담당관실에서 작성했다는 증거다. 반면 이명박 정부 자료에는 ‘1팀’으로 표기된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알려진다. 이것은 자료의 작성 주체가 민간인 사찰의 온상으로 지목된 지원관실이었음을 보여준다.
청와대가 비록 참여정부 연루설까지 주장하고 있지만, 이번 사건의 본질은 어디까지나 ‘민간인 불법사찰 의혹’에 관한 진실을 밝히는 것이다. 여권 소장파의 한 핵심 관계자는 이에 대해 “이번 사건은 노무현 정권 때 이뤄진 경찰 등의 공식 감찰자료가 문제되는 게 아니라 이명박 정권 때 청와대 민정-국정원 등 공식 정보라인을 넘어서는 총리실의 괴물 정보조직이 일부 권력실세의 사적 정보라인으로 이용된 의혹을 규명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여당 일각에서는 “과연 노무현 정권 때는 민간인 사찰이 없었을까”라며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청와대도 이 부분을 주목하고 있다. 참여정부 때 민간인 사찰과 관련한 정황이 포착되거나 이번 사건을 수사하는 검찰이 ‘균형 맞추기’ 차원에서 그때 당시의 불법 사찰 의혹에까지 수사를 확대할 경우 그 파편이 민주통합당의 한명숙 대표나 문재인 후보에까지 튈 수 있다.
이에 대해 청와대 민정수석과 비서실장 등을 지낸 문재인 민주통합당 부산사상 후보는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불법 사찰 문건에 대한 청와대 주장, 어이없다. 참여정부에선 불법 사찰 민간인 사찰, 상상도 못했다. (중략) 잘 됐다. 불법 사찰 전체 문건 한 장도 남김없이 다 공개하라. 어떻게 뒷감당을 할지 보겠다”라고 반박했다. 또한 문 후보는 부산지역 유세과정에서 “국무총리실의 민간인 불법 사찰은 국가의 근간을 무너뜨린 범죄행위다. 참여정부 때 같았으면 탄핵이야기가 열 번도 더 나왔을 것”이라며 날선 공방을 이어갔다.
민주통합당의 한 재선의원은 이에 대해 “이명박 정권 초기 참여정부의 꼬투리를 잡는 데 얼마나 혈안이 돼 있었나. 만약 민간인 사찰과 같은 불법이 참여정부 때 이번 정권과 같이 조직적으로 자행됐다면 과연 이명박 정권이 그 자료를 그대로 묵혔겠느냐. 청와대가 이렇게 궁지에 몰려있다면 분명히 그 불법사찰 자료를 어떤 식으로든 공개했을 것이다. 앞으로 청와대가 어떤 자료를 내놓을지 지켜보겠다”라고 말했다.
선거를 치르고 있는 새누리당 일각에서는 이번 청와대의 대응을 두고 갑론을박이 오가고 있다. 먼저 청와대가 그동안의 침묵을 깨고 정면대응을 나선 것에 대해 새누리당의 한 선거전략 관계자는 “청와대가 적극 대응을 해줌으로써 박근혜 전 대표와 이번 사건을 분리시켜주는 효과가 있고, 민간인 사찰사건을 여야의 진흙탕 싸움으로 몰고 가 여권 혼자 매 맞는 것을 피할 수 있게 됐다”고 주장했다. 박근혜 선대위원장이 자신도 불법사찰의 피해자라는 쪽으로 대응을 하며 이번 사건과 선긋기를 하고 나섰는데 청와대의 백업이 시의적절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반론도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박 위원장을 돕는답시고 노무현 정권 책임론을 꺼냈다가 오히려 역풍이 불 조짐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박근혜 위원장에게로 향할 수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이에 대해 “청와대가 사태를 봐 가며 수습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으면 오히려 조용히 넘어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청와대는 무슨 사건만 터지면 노무현 대통령 탓을 하는 것이 일종의 패턴이었기 때문에 이번에도 그런 관성에서 잘못 대응한 것 같다. 청와대의 정면대응이 물타기 꼼수 국면으로 빠지면 여당에게 최대 악재가 된다”라고 진단했다.
그동안 잠잠해있던 청와대가 다 된 밥에 코 빠뜨리는 실수를 한 것은 아닌지, 여당 전략가들이 노심초사 하고 있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