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위안쥔·쉬하오훙 포진 국대급 전력…첫 참가 개막전서 셀트리온 꺾고 다크호스로
바둑리그 역사상 처음으로 등장한 해외팀의 인상적인 데뷔전이었다. 선수 전원이 자국 강자들로 구성된 대만은 왕위안쥔 9단이 셀트리온 주장 김명훈 9단을 꺾은 것을 시작으로 린쥔옌 9단이 최철한 9단에게, 쉬하오훙 9단이 윤찬희 9단에게 불계승을 거둬 국가대표급 전력을 뽐냈다.
2004년 출범한 국내 최대기전인 바둑리그는 이번 시즌 일대 변혁을 단행했다. 사상 최다인 12팀이 참가한 가운데 대만과 일본에서도 한국바둑리그에 단일팀을 파견했다. 한국바둑리그에 외국팀이 참가한 것은 2004년 리그 출범 이후 19년 만이다.
올 시즌엔 디펜딩 챔피언 수려한합천을 비롯해 Kixx, 포스코케미칼, 정관장 천녹, 한국물가정보, 셀트리온, 바둑메카의정부, 컴투스타이젬 외에도 신규팀 고려아연, 원익과 외국팀 대만, 일본이 참가했다.
대만은 왕위안쥔 9단(26)을 비롯해 쉬하오훙 9단(21), 린쥔옌 9단(25), 라이쥔푸 7단(20), 천치루이 7단(22), 젠징팅 6단(22), 쉬징언 4단(16)으로 팀을 구성했다.
28일 저녁 셀트리온과 개막전을 치른 대만은 ‘보물섬정예’라는 이름으로 자신들을 칭했다. ‘아름다운 섬이여!’라는 뜻을 지닌 포모사(Formosa), 미려도(美麗島)와 함께 보물섬은 대만의 또 다른 이름이다. 여기에 정예라는 단어를 얹어 사실상 대만 국가대표팀으로 이번 바둑리그에 나선 것이다.
셀트리온 선수들은 서울 바둑TV 스튜디오에서, 대만 선수들은 타이베이 해봉기원에서 온라인으로 개막전 대국을 벌였다. 베일 속에 가려 있던 대만의 전력은 의외로 강했다. 대만은 라이쥔푸 7단만이 심재익 6단에 패했을 뿐 김명훈 9단, 최철한 9단이 버티고 있는 셀트리온을 완파, 단숨에 경쟁력 있는 다크호스로 떠올랐다.
대만 선수들 중 그나마 국내에 알려진 선수는 왕위안쥔 9단과 쉬하오훙 9단으로 이들이 대만팀의 투톱이다. 맏형이라 할 수 있는 왕위안쥔은 1996년생으로 2015년 국립칭화대학에 입학해 경제학을 전공한 인텔리 기사다.
왕위안쥔은 2018년 열린 국수산맥 국제바둑대회에서 박영훈 9단, 중국 판인 6단, 김지석 9단을 잇달아 꺾고 결승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대만 기사가 국제대회에서 결승에 오른 것은 2007년 제11회 LG배 우승의 저우쥔쉰 9단 이후 처음이다. 왕위안쥔은 비록 결승에서 박정환 9단에게 패해 준우승에 그쳤으나 이 대회에서 거둔 인상적인 활약 덕분에 그해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즈 와일드카드로 선정되기도 했다. 2022년에도 LG배 본선 24강전에서 국내랭킹 10위 원성진 9단을 꺾은 실력파 기사다.
2013년에 입단한 쉬하오훙 9단은 지난 12월 대만 기왕전 도전7번기 5국에서 타이틀 보유자 린쥔옌에게 승리하며 종합전적 4승 1패로 타이틀을 쟁취해 대만바둑 역사상 최초로 8관왕에 올랐다. 명실공히 현재 대만의 일인자다. 국제기전 경쟁력도 상당해서 2020년 춘란배에선 천야오예 9단, 스웨 9단에게 승리를 거뒀고, 2021년 국수산맥배에선 변상일과 박정환에게 승리하는 등 만만찮은 전력을 과시했다.
대만팀 감독을 맡고 있는 저우쥔쉰 9단은 “한국기원의 출전 제의에 감사드린다. 대만은 아시안게임 훈련 선수 중에서 상위 선수들로 구성했다. 특정 순위를 목표로 정해놓기보다 선수들이 최선을 다해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고 출전 소감을 밝혔다.
개막전을 해설한 유창혁 9단은 “대만 선수들이 시간 관리와 안배에서 전반적으로 뛰어난 면을 보이는 등 준비를 잘한 것 같다”면서 “평균연령(22.8세)도 가장 어려 대국을 거듭할수록 발전성도 충분해 보인다”고 높이 평가했다.
한편 대만이 선전 가능성을 보이자 일본팀에 대해서도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일본은 10~20대 유망주를 중심으로 팀을 꾸렸다. 세키 고타로 8단(21), 히라타 도모야 7단(28), 오니시 류헤이 7단(22), 고이케 요시히로 7단(24), 히로세 유이치 6단(21), 장루이제 5단(23), 사카이 유키 3단(18), 후쿠오카 고타로 3단(17)이다. 이중 세키 고타로는 천원전, 히라타 도모야는 아함동산배, 사카이 유키는 신인왕전 타이틀을 보유 중이다.
한 전문가는 “국내 참가 팀이 올 시즌 10개로 늘어나면서 전반적으로 실력이 하향 평준화된 느낌도 있다. 따라서 개막 전 예상에서 다크호스 정도로 여겨졌던 대만과 일본이 의외로 강세를 보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올 시즌 한국리그에 출전할 용병 선수들에겐 대국료가 주어지지 않는다. 대신 출전 팀 의무 조항인 대회 참가금 3억 원은 면제되며, 시즌 종료 후 순위별로 시상하는 팀 상금은 국내팀과 차별 없이 지급된다.
유경춘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