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멈추자 방송가엔 회오리
▲ 2012시즌을 앞두고 전격 은퇴를 선언한 KIA 이종범 선수가 지난 5일 열린 은퇴 기자회견에서 눈시울을 붉혔다. 사진제공=KIA 타이거즈 |
KIA가 팬들의 반발을 무릅쓰고 이종범에게 은퇴를 권유한 이유는 나이에 따른 기량저하가 가장 큰 이유였다. 사실 이종범은 2007년부터 은퇴 압력에 시달렸다. 그해 타율 1할7푼4리, 1홈런, 3도루에 그치자 코칭스태프는 “나이는 속일 수 없다”는 말로 은퇴 분위기를 조성했다. 하지만, 이종범은 “일시적 부진일 뿐”이라며 현역 연장 의사를 밝혔다. 실제로 2008년 이종범은 타율 2할8푼4리를 기록하며 정상궤도로 돌아왔다. 2009년엔 KIA가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그러나 2010년 타율 2할4푼5리, 2도루를 기록하자 상황이 돌변했다. 가뜩이나 젊은 야수들이 성장하며 이종범의 입지는 갈수록 좁아졌다. 2011년 타율 2할7푼7리, 3홈런, 24타점으로 부활하긴 했으나, 과거 발 빠르고 파워 넘치던 이종범은 더 이상 기대할 수 없었다.
이종범에게 위기가 닥친 건 지난 시즌 종료와 함께 신임 사령탑으로 선동열 감독이 부임하면서다. 삼성 사령탑 시절부터 선 감독은 젊은 선수를 중용했다. 이를 위해 베테랑 선수들을 차례로 은퇴시켰고, ‘양신’ 양준혁도 선 감독의 보이지 않는 압력 속에 2010년 시즌 중 현역에서 물러났다. 야구계에선 “선 감독이 젊은 선수들에게 기회를 많이 제공하고자 KIA에서도 베테랑 선수를 차례로 정리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선 감독은 “이종범은 팀에 꼭 필요한 선수”라며 실력만 좋다면 이종범을 계속 1군에서 기용할 생각임을 밝혔다. 스프링캠프와 시범경기에서 이종범은 42세의 야수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투지가 넘쳤다. 성적도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이종범보다 뛰어난 야수가 많다는 게 악재였다.
KIA 관계자의 말을 들어보자. “외야진엔 이용규, 나지완, 김상현, 김원섭 등 좋은 야수들이 많다. 여기다 스프링캠프와 시범경기에서 신종길이 맹활약하며 2번 타자 후보로 올라섰다. 코치들의 회의 결과 ‘수비에서도 다른 선수들이 이종범보다 낫다’는 결론이 나왔다. 객관적 기량상 이종범이 2군으로 내려갈 수밖에 없었다.”
▲ 선동렬 감독과 이종범.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선 감독은 이종범이 구단과의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은퇴 발표를 하자 몹시 서운해 했다. 사석에서 “(이)종범이와는 감독과 선수 이전에 해태 시절부터 일본 프로야구 주니치 드래곤즈까지 함께 뛰며 친형제처럼 지냈다. 종범이가 ‘은퇴를 권유하려면 스프링캠프에 가기 전에 진작 말하지 왜 시즌을 앞두고 통보한지 모르겠다’고 하지만, 종범이니까 시범경기까지 기회를 준 것이다. 플레잉 코치 제안도 이종범의 명예를 생각해 제안한 것이다. 이종범에게 은퇴를 바로 하라고 지시한 것도 아니고, 심사숙고하고서 답변을 달라고 했다. 그런데 마치 코칭스태프가 일방적으로 은퇴를 강요한 것처럼 알려졌다”며 아쉬워했다.
이종범이 은퇴를 선언했을 때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는 성명서 발표를 두고 고심했다. 베테랑에 대한 구단의 일방적 은퇴 종용에 경종을 울리기 위해서였다. 선수협 모 관계자는 “실력이 확연히 떨어지면 모를까 단순히 나이가 많다고 은퇴를 종용하는 관행은 사라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이종범의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해 결국 성명서를 채택하지 않았다.
이종범의 은퇴는 방송가에도 큰 파장을 몰고 왔다. “이종범이 은퇴 후, 모 케이블 스포츠전문채널의 해설위원으로 온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진 까닭이었다. 실제로 모 방송사에선 이종범에게 1년 전속료로 1억 5000만 원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최고 대우다. 이종범이 원체 슈퍼스타라 그가 야구해설가로 데뷔한다면 케이블 스포츠채널사 간의 시청률 경쟁에 일대 지각변동이 일어날 수 있다.
한 방송사 PD는 “이종범이 해설가로 활동한다면 양준혁과 함께 현역시절 못지 않은 ‘입심 대결’을 펼칠 것”이라며 “전체 프로야구 중계 시청률이 높아지는 호재로 작용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이종범은 은퇴 기자회견에서 해설위원으로 활동할 뜻이 없음을 거듭 강조했다.
박동희 스포츠춘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