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시장 ‘만년 2위’ 태클에 들썩
▲ 그래픽=장영석 기자 | ||
두산과 진로가 맞붙은 것은 1993년 두산이 강원도의 소주회사인 경월소주를 인수하면서 시작되었다. 두산이 출시한 그린소주는 한때 수도권 점유율 17%까지 육박하며 진로를 위협했다. 그러나 진로가 1998년 26년간 유지했던 알코올도수 25도를 23도로 낮춘 ‘참이슬’을 출시하며 양사의 소주시장 쟁탈전이 본격적으로 불붙었다.
이후 진로는 3차에 걸친 리뉴얼을 통해 소주시장의 아성을 지켜왔고, 두산은 뉴그린, 미소주, 산소주를 차례로 출시했으나 시장탈환에 실패했다. 지난해 진로는 수도권의 92.6%, 전국 55.4%의 시장 점유율을 보였다. 때문에 두산은 이번이 소주시장에서 만회할 마지막 기회라며 배수진을 치고 신제품 판촉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번 신제품에서 진로와 두산은 동시에 20도(진로는 20.1도)의 저도수의 소주를 내놓았다. 어떻게 약속이나 한 듯 이런 일이 가능할까. 양사에 따르면 이미 지방 소주시장에 20도 안팎의 저도주(低度酒)가 출시되었고, 소비자의 입맛이 변한 것이 저도주 출시의 배경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그간 두산에서 진로의 인력을 많이 영입해와 서로의 사정을 빤히 들여다 보고 있는 것을 그 원인으로 보고 있다. 현재 두산주류BG의 한기선 사장은 진로유통에서 영업담당 부사장을 지냈다. 두산 소주 연구소의 최형호 상무도 진로의 개발담당 차장을 지냈고, 경기권역 영업본부장인 오장환 상무, 충청·강원지역 영업본부장인 허관만 상무도 진로에서 지점장을 지냈다. 이 외에도 부장급 서너 명을 포함해 10여 명 이상의 간부가 두산으로 옮겨갔다. 때문에 진로와 두산은 손바닥 보듯 서로의 사정을 잘 꿰고 있을 것이라는 얘기다.
한기선 사장은 진로 근무 당시, 회사 부도로 어려움을 겪을 때 두산에서 직원들을 스카우트하자 동종업체 직원 빼돌리기라며 불공정거래로 제소하겠다고 한 적도 있지만 지금은 두산의 선봉을 맡고 있다.
두산에서 신제품 홍보에 열을 올리자 진로는 물타기 전법으로 맞서고 있다. 두산보다 신제품을 이틀 늦게 출시한 진로이지만 보도자료는 두산보다 앞선 2월2일 배포해 먼저 주목을 받았다. 또 두산에서 20도의 저도주를 내놓자, 20.1도라는 소수점을 내세워 기술의 우위를 은근히 드러냈다.
시장에서는 21도 이상을 고도주(高度酒)로 매기기 때문에 높은 주세 부담을 피하기 위해 저도주를 출시한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보내기도 한다. 그러나 주세는 주종에 따라 구분하기 때문에 소주의 도수는 세율과 관계가 없다며 양사 모두 부인하고 있다.
두산은 이번 신제품의 출고가를 기존 8백원에서 7백30원으로 낮췄다. 신제품에 거는 기대가 대단함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두산측은 “소주의 도수를 1도 내리면 제조비용 10원 이외에 이에 따른 절세효과로 35원을 절약할 수 있다. 나머지는 지난해 영업조직의 비효율을 개선하는 등 비용을 절감함으로써 가능했다”고 밝혔다. 두산은 이번 신제품 출시에 4백억원의 마케팅 비용을 책정해 놓고 있다.
진로측은 “두산이 시장 선점을 위해 출혈경쟁을 하고 있다. 매출액이 진로의 10분의 1밖에 되지 않는 두산이 과도한 판촉비를 쓴다는 것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 하지만 결국은 소주의 품질이 소비자의 선택을 판가름할 것”이라며 신경쓰지 않는다는 반응이다.
두산은 진로 참이슬과의 차별화를 위해 알칼리환원수를 강조하고 있다. “소주의 80%를 차지하는 물에 주목해 차별화했다. 강원도 청정수를 전기분해해 알칼리수를 얻는 방식으로, 육각수에 가까운 물을 만들어 사용해 부드러운 맛 구현과 숙취를 줄이는 효과가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에 대해 진로는 “두산이 편지 형식의 광고를 실으며 한 사장이 알칼리수로 대장암 치료에 효과를 봤다고 썼는데, 건강을 위해 술을 마시는 사람이 몇이나 되나. 소주는 깨끗하게 마시고 깨끗하게 깨면 되는 것이다. 진로는 기본에 충실할 뿐이다”라는 설명을 하고 있다. 그러나 진로도 은(銀)을 침착시킨 대나무숯에 여과한 물을 사용했다며 추가된 기능을 광고하고 있다.
두산은 지난해 신제품 출시를 준비했다고 한다. 그러나 두산그룹 오너 일가의 다툼으로 연기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두산측은 “그보다는 진로의 동향도 파악해야 하고 지난해 말 산소주 매출이 늘어나고 있어 상황을 주시하고 있던 것이다”며 부인하고 있다.
1위의 자부심을 지키려는 진로와 이에 도전하는 두산의 전략도 흥미롭다. 현재 두산은 사장이 쓴 편지 형식의 광고 등 새로운 기법을 동원해 신제품의 기능성을 알리는 데 주력하고 있다. 이에 비해 진로는 탤런트 남상미를 모델로 기용, 전통적인 방식의 이미지 광고를 계속할 예정이다.
업계에서는 신제품 판촉기간 동안의 물량공세가 끝나고 소주 유통의 텀(term)이 한두 번 지나는 석 달 뒤면 신제품의 성적이 나올 것으로 보고 있다. 주군이 하이트로 바뀐 진로와 적군(진로)의 장수를 데려와 세 보강을 한 두산의 ‘순한’ 싸움 결과가 주목된다.
우종국 기자 woobea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