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수도권 후보론·약자 동정론’으로 역전 노려…과거 대세론 절대 우세 ‘윤심 후보’ 김기현 유리 전망
취임 1년도 되지 않은 대통령 위상을 감안할 때 일찌감치 ‘윤심 후보’로 각인된 김기현 의원이 유리할 것이라는 전망이 일단 지배적이다. 하지만 인지도에서 확실히 앞서는 안철수 의원이 약자 동정론까지 등에 업을 경우, 뒤집기도 가능하다는 관측이 조금씩 고개를 든다. 실제 여당의 전당대회 역사를 봐도 대세론이 대체로 이어졌으나, 약자의 역전극도 있었다.
#문 두드리지 못한 나경원
강력한 당대표 후보 나경원 전 의원이 결국 선거의 문을 두드리지 못했다. 나 전 의원은 1월 25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3·8 전당대회 당대표 선거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공식 선언했다. 기자회견이 잡혔다는 소식이 전해진 전날과 당일 이른 아침까지만 해도 정치권 안팎에선 출마를 점치는 의견이 우세했다. 하지만 기자회견이 임박하자 분위기가 확 달라졌고 불출마 선언으로 이어졌다.
심한 고뇌 끝에 내린 몹시 힘든 결정이었음을 나경원 전 의원 스스로 드러냈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용감하게 내려놓겠다”고 언급, 불출마 선언이 출마 선언보다 더 고통스러운 결단이어서 용기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는 뜻을 내비쳤다.
불출마 선언에 엄청난 용기가 필요했다는 것은 누구나 이해할 만했다. 보수 분열의 역사 속에서 단 한 번도 국민의힘을 떠난 적 없는 4선 국회의원 출신,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 원내대표를 지낸 이력에 인지도라면 당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나 전 의원이었기에 후보 등록조차 하지 못한 채 당대표 선거에서 전격 하차한 것은 그의 경력과 전혀 맞지 않는 행동으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수십 년 동안 정치를 해온 나 전 의원이었기에 자신의 능력으로 도저히 돌파할 수 없는 명확한 한계를 인식, 눈물어린 결단을 내린 것으로 정치권에서는 해석한다.
나 전 의원이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있으면서 기자간담회에서 ‘헝가리식 저출산 대책’ 아이디어를 거론하자 대통령실 참모가 이를 실명 비판한 것을 두고, 나 전 의원의 전당대회 출마를 윤심이 막아섰다는 첫 해석을 낳았다.
나 전 의원에 대한 윤심의 태클 신호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그는 부위원장직 사의를 윤석열 대통령에게 전달했지만, 윤 대통령은 ‘해촉’ 대신 나 전 의원을 전격 ‘해임’했다. 정부 위원회 조직 수장에 대한 해임 결정은 정치권에서는 물론, 공직사회에서조차 이례적으로 받아들였다. 그만큼 나 전 의원에 대한 대통령실의 조치는 강도가 셌다.
나 전 의원의 시련은 끝을 모르고 계속됐다. 나 전 의원이 자신에 대한 해임을 두고 “대통령의 본의가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가, 김대기 대통령 비서실장이 “대통령의 정확한 진상 파악에 따른 결정”이라고 직접 반박한 것은 나 전 의원에게는 결정타였다. 김 실장 발언이 나오자 ‘윤심이 나 전 의원을 완전히 떠났다’는 분석들이 쏟아졌고, 나 전 의원은 그로기 상태로 몰렸다.
여러 상황에 수세적으로 대처하던 나 전 의원은 한때 공격모드로 전환하기도 했지만, 당내에 그의 세력은 거의 없었고 여러 공세에 대응하기에 역부족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믿을 구석이었던 여론조사 당대표 선호도에서도 김기현 의원에 밀렸다는 소식까지 날아들자, 마침내 수건을 던졌다.
설 연휴 전까지만 해도 “‘제2의 진박 감별사’가 쥐락펴락하는 당이 과연 총선을 이기고 윤석열 정부를 지킬 수 있겠나. (친박 공천으로 총선에서 참패했던) 2016년의 악몽이 떠오른다”며 강력한 출마 의지를 보였던 나 전 의원이었다. 이랬던 그가 뜻을 접은 것과 관련해 당내에서는 “힘의 ‘일극체제’가 당내에서 완전히 확립됐다”는 얘기가 나온다.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나 전 의원이 ‘반윤’ 기치를 내걸고 당대표 선거에 나가려는 시도도 생각해봤겠지만, 이를 접은 것으로 볼 때 친윤 원팀 기류가 이미 세력을 안정적으로 구축했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국민의힘 한 초선 의원은 “대통령의 뜻에 무조건 따르는 굴종적 당이 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오지만 거대 야당의 입법 횡포를 반드시 막아내야 한다는 상황 논리가 당원들 사이에서 훨씬 더 우세하다”며 “당과 대통령실이 원팀이 되어야 한다는 기류가 강하고 상당수 당원들도 이를 대세로 인식하고 있기에 그러한 방향으로 전당대회 승부가 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대세론’ 김기현, 안심할 수 없는 이유
하지만 원팀 기류에 대한 반작용도 조금씩 형성되는 모습이다. 대통령실과 크게 불협화음을 내는 전투적 이미지의 당대표가 아니라면 윤 대통령과 쌍두마차를 이룰 만한 당대표가 오히려 총선 승리에 전략적으로 유리하다는 논리다. “혼자 다 해먹으면 안 된다”는 약자 동정론까지 가세한다면 윤심이 뒤집어질 수 있다는 목소리가 조금씩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현재 구도에서 뒤집기를 할 만한 후보로는 안철수 의원이 꼽힌다. 수도권이 지역구인 안 의원은 수도권을 잡아야 총선에서 이길 수 있다는 명분에다, 나경원 전 의원 낙마 이후 조금씩 세력을 넓힐 것으로 보이는 약자 동정표까지 쓸어 담는 실리 전략을 펼칠 경우 김기현 의원과 예측 불가 승부를 벌일 수 있다는 것이 정치권 전망이다.
실제 안 의원은 나 전 의원 사퇴 직후 수도권 후보론을 강조하면서 당내에서 상당한 표를 갖고 있는 나 전 의원 지지층을 흡수하는 발언들을 쏟아내고 있다. 이와 동시에 다른 후보들과 연대해 김기현 후보를 에워싸는 포위 전략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안 의원은 1월 25일 서울 여의도 자신의 캠프 사무실에서 기자들과 만나 3·8 전당대회 불출마를 선언한 나 전 의원에 대해 “적절한 시기에 한 번 만나 뵙고 말씀을 나누고 싶다”고 했다. 나 전 의원 지지세를 흡수하려는 의도가 담긴 것으로 읽혔다.
이어 수도권 후보론이라는 간판을 내세우며 명분 싸움도 잊지 않았다. 그는 “나 전 의원께서 지금 원하시는 그런 방향들이 수도권에서의 승리”라며 “우리 전 당원들의 바람이기도 하다. 저는 반드시 수도권에서 승리하는 그런 후보가 되고 당대표로 선출되겠다는 각오를 다지게 된다”고 강조했다.
안철수 의원은 ‘대세론’을 업고 있는 김기현 후보에 대해서는 강하게 날을 세웠다. 안 의원은 “당내에서 공천에 대한 공포 정치를 하고 있는 게 김 후보”라며 “현재 김 후보 주변에 이렇게 모여 있는 의원들이 있다. 여기에 같이 포함되지 않으면 ‘너 나중에 공천할 때 굉장히 힘들어질 거야’ 이런 것들이 알게 모르게 작용하기 때문에 분위기가 굉장히 좋지가 않다”고 직격했다.
이런 가운데 일부 여론조사에서 김 의원과 안 의원의 양자대결 상황을 가정했을 때, 안 의원이 김 의원을 앞선 결과치도 나오기 시작했다. 나 전 의원 지지세가 안 의원에게로 이전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김 의원 측에서 안 의원에 대한 경계심이 역력하게 감지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김 의원이 ‘윤핵관’ 장제원 의원과 자신의 연결 고리인 이른바 ‘김장연대’에 대한 발언을 줄이는 것을 두고도 이런 배경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윤심에 지나치게 의존할 경우 자칫 역풍이 불 수 있다는 판단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안철수 의원과 사실상 ‘수도권 연대’를 형성한 윤상현 의원이 안 의원 손을 들어주면 ‘안철수 바람’은 더욱 거세질 수 있다는 예측이 나온다. 보수 성향이 강한 당원들을 중심으로 적잖은 고정표를 갖고 있는 황교안 전 대표 지지세도 결국 안 의원에게 향하지 않겠느냐는 일부 예측도 ‘안철수 바람’에 힘을 실어주는 대목이다.
#그래도 대세론이 이긴다?
국민의힘 전신 보수정당이 여당 시절 역대 전당대회에서는 대체로 당내 주류 세력이 당대표 자리를 거머쥐었다. 1호 당원인 대통령 의지가 반영되거나, 대통령이 임기 말이라면 차기 대선주자 측에서 미는 후보가 당선돼왔다. 일반적으로 대세론이 통했던 셈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 임기 동안 전당대회에서 배출된 박희태 정몽준 안상수 대표 모두 친이계였다. 이명박 대통령 임기 말이었던 2011년 7월 전당대회에서는 홍준표 대표 체제가 등장했는데, 당시 홍 대표는 차기 유력 대선주자였던 박근혜 당시 의원 계열의 ‘친박’ 의원들이 지지에 동참하면서 당선될 수 있었다. 홍준표 체제 다음에도 ‘친박’ 황우여 대표가 등장했고, 박근혜 의원은 이를 발판으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된 뒤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 임기 초반인 2014년 7월 전당대회에서는 대세론이 꺾였던 사례도 있다. 박 대통령이 사실상 밀었던 서청원 후보 대신 김무성 후보가 당대표로 선출됐다.
하지만 2016년 8월 전당대회에서 ‘친박’을 넘어 ‘진박’으로 불렸던 이정현 대표 체제가 다시 등장하면서, 대세론은 다시 힘을 회복했다. 당시 ‘친박 단일 대오’를 외친 이정현 후보(득표율 40.9%)는 ‘비박 단일후보’를 간판으로 내건 주호영 현 국민의힘 원내대표(득표율 29.4%)를 2위로 내려앉히며 승리했다.
“김무성 대표가 될 때도 김 대표는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 전혀 날을 세우지 않았고 당원들은 그를 친박 후보로 봤기에 당대표가 됐다. 이렇게 볼 때 최근 10여 년간 국민의힘 여당 시절 전당대회 역사에서 대통령 또는 차기 유력 대선주자로 대표되는 당내 주류세력과 동조화되지 않은 후보는 단 한 사람도 당선된 적이 없었다. 지금 제1야당 더불어민주당도 마찬가지다. 문재인 대통령 시절 이해찬 이낙연 대표는 친문 계열이었고, 문 대통령 임기 말이 되자 친문색이 옅은 송영길 체제가 들어섰다. 대통령이 당무에 개입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대통령제 하에서 대통령과 여당의 원팀 기조는 구조적으로 벗어나기 어려운 틀이다.”
박근혜 대통령 시절 전당대회를 기억하는 국민의힘 한 전직 의원은 경험치로만 본다면 정치는 관성이 강해서 대세론이 결국 현실론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최경철 매일신문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