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이적이 제안, 하태경 의원 도입 추진 밝혀…국민 여론 팽팽한 가운데 한국은행은 신중론
그동안 3만 원권을 발행하자는 목소리는 끊이지 않았다. 용돈, 세뱃돈 등을 줄 때 ‘1만 원을 주자니 적고, 5만 원을 주자니 많거나 부담스럽다’는 이유가 주를 이뤘다. 5만 원권 도입 후 축의금 부담이 늘었다는 하소연도 쏟아졌다. 1만 원권과 5만 원권 중간인 3만 원권을 발행해 그 고민을 덜어주자는 게 취지였다. 미국 달러의 경우 10달러와 50달러 사이에 20달러 단위 화폐가 있다.
3만 원권 논의에 불을 댕긴 것은 가수 이적이다. 이적은 1월 2일 “1, 3, 5, 10으로 올라가는 한국인 특유의 감각을 생각해보면, 3만 원권 지폐는 필시 유용하게 쓰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글은 1월 27일 기준 약 1만 8000여 개의 ‘좋아요’ 수를 기록했다. 많은 이들이 찬성하는 댓글을 남기기도 했다.
화폐 권종을 새로 발행하는 일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먼저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의결과 정부(기획재정부) 승인을 거쳐야 한다. 발행까지 소요되는 비용과 시간도 상당하다. 새 액면을 발행하기 위해서는 걸리는 시간은 대략 2~3년 정도로 추산된다. 조형 작업과 화폐 위·변조 방지 장치 등을 구현하는 데만 1년 6개월가량이 소요된다고 한다.
5만 원권 화폐 발행 당시만 봐도 알 수 있다. 2006년 12월 ‘고액권 화폐 발행을 위한 촉구 결의안’이 국회에서 통과됐지만, 2009년 6월에야 5만 원권이 통용됐다. 법안 통과 후 2년 6개월이 지난 시점이다.
5만 원권이 도입되면서 세뱃돈이나 축의금 단위도 자연스레 올라갔다. 당시 한국은행은 5만 원권 도입 취지에 대해 “1만 원권 발행 이후 물가는 12배, 국민소득은 150배 상승했는데 최고액권 1만 원 유지로 경제 주체들이 많은 불편을 겪고 있다”고 설명한 바 있다.
금융권에서는 3만 원권 발행이 큰 이익은 없을 것으로 본다. ‘현금 없는 사회’ 흐름이 계속되는 가운데 3만 원권 발행이 굳이 필요하냐는 입장이다.
한국은행이 2022년 발표한 ‘2021년 경제주체별 현금사용행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가계가 최근 1년간 상품 및 서비스 구매를 위해 사용한 현금 지출액은 월 평균 51만 원이었다. 2018년(64만 원)보다 13만 원(25.4%) 감소한 수준이다. 전체 지출액에서 현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21.6%다. 신용·체크카드(58.3%)의 절반 수준이다.
한국은행 역시 3만 원권 도입에 신중한 입장이다. 국민 여론이 아직 무르익지 않았기 때문이다.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3만 원권 화폐 필요성이 잠시 대두됐지만 국민적 공감대는 더 지켜봐야 한다는 평가다. 실제 한국은행이 2022년 화폐 사용 만족도를 조사했을 당시 3만 원권 도입과 관련해 ‘필요 없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해당 조사는 내부 참고용 자료로 구체적 수치는 공개되지 않았다.
국민 여론도 갈리는 양상이다. 금융권에 종사하는 한 직장인은 “3만 원권 도입에 찬성한다”며 “축의금 부담이 커서다. 선택 폭이 커지는 건 좋은 일이다”라고 했다. 반면 국회에서 일하는 한 관계자는 “설 연휴 앞두고 세뱃돈 부담으로 3만 원권 얘기가 나왔지만, 금방 묻힐 것”이라며 “요새 현금 쓰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 불필요한 입법이고, 3만 원권 발행하기 위한 부담이 더 클 것”이라고 봤다.
한 여론조사 결과도 3만 원권 발행에 대해 팽팽한 결과가 나왔다. 1월 25일 토마토그룹의 여론조사 애플리케이션 ‘서치통’에서 847명을 대상으로 1월 25일부터 27일까지 온라인 여론조사를 진행한 결과, 응답자 55.3%가 3만 원권 발행을 찬성한다고 답했다.
반대 의견은 44.7%였다. 반대 이유로는 ‘현금 사용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시대를 역행하는 발상’이라고 답한 비율이 28.8%로 가장 높았다. 이외에도 △발행 과정에서 드는 시간과 비용이 만만치 않아서(26.1%) △1만 원권 세 장을 주면 된다(19.6%) △더 고액의 지폐 발행이 필요하다(8.7%) 등의 응답이 이어졌다.
최근 3만 원권 도입 의사를 밝혔던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은 1월 22일 “가수 이적 씨가 3만 원권 발행을 제안했다”며 “3만 원권 발행이 조속히 될 수 있도록 국회 논의를 추진해 보겠다”고 했다. 이어 하 의원은 “한국은 축의금 단위가 1, 3, 5만 원으로 커지기 때문에 2만 원권보다는 3만 원권이 적합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 의원실 관계자는 “3만 원권 발행 촉구 결의안을 발의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설상미 기자 sangm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