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거 대신 버바’ 광고계 돈 풀 준비!
▲ 로이터/뉴시스 |
지난 4월 8일, 미 조지아주 오거스타내셔널 골프클럽에서 열린 ‘2012 마스터스토너먼트’ 연장전 두 번째 홀. 기적과도 같은 샷 한 방으로 세상에 자신의 이름을 각인시킨 한 남자가 있었다. 바로 미국의 버바 왓슨(34)이 그 주인공이다. 오른쪽으로 휘어지는 40야드의 ‘트러블샷’을 성공시키면서 그린 재킷을 입는 데 성공한 왓슨은 이로써 생애 첫 번째 메이저 대회 우승을 거머쥐는 한편, 144만 달러(약 16억 원) 상금의 주인이 됐다. 왓슨의 성공이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이유는 단지 그림 같은 샷 때문만은 아니다. 다른 메이저 대회 우승 선수들에게서는 찾아보기 힘든 이색적인 배경 때문이기도 하다. 단 한 번도 정식 골프 레슨을 받지 않았다는 점, PGA에서 보기 힘든 왼손잡이 선수라는 점, 300야드는 밥먹듯이 날리는 장타자라는 점, 남자 선수로서는 드물게 핑크 드라이버를 사용한다는 점 등이 그렇다. ‘괴짜 골퍼’ 왓슨이 타이거 우즈 못지 않은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런 개성들 때문이다.
그가 골퍼들 사이서 튀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독특한 이름 때문이다. ‘버바(Bubba)’라는 이름은 사실 그의 본명은 아니다. 그의 진짜 이름은 제리 레스터 왓슨.
‘버바’는 흔히 미 남부지방에서 장남에게 붙이는 별명 내지는 통통한 사내아이를 가리킬 때 부르는 애칭이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버바 클린턴’으로 불린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다.
왓슨에게 ‘버바’라는 애칭을 붙여준 사람은 그의 아버지였다. 갓 태어난 그를 물끄러미 쳐다보던 아버지가 아내 몰리에게 “애가 통통한 게 못난이처럼 생겼으니 ‘버바’라고 부릅시다”라고 한 것이 시작이었다.
플로리다 바그다드 출신인 왓슨이 처음 골프를 접한 것은 여섯 살 무렵 아버지가 집으로 가지고 온 골프채 하나 덕분이었다. 시골에서 자란 탓에 제대로 된 레슨을 한 번도 받지 않았던 그는 애초에 골프선수가 되겠다는 생각은 꿈도 꾸지 않았다. 골프채는 그에게 그저 아이들이 갖고 노는 장난감에 불과했다. 그는 “어릴 적 다른 아이들이 장난감을 가지고 놀 때, 나는 머릿속으로 샷을 생각하면서 놀았다”고 말했다. 골프공이 없었던 까닭에 뒷마당에서 솔방울이나 플라스틱공을 치면서 홀로 스윙을 익혔고, 이런 소년에게 제대로 된 스윙폼을 가르쳐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따라서 그가 본격적으로 골프 선수로서 활동을 시작한 것은 뒤늦은 고등학교 때부터였다. 어린 시절 혼자 터득한 스윙의 기본자세는 현재까지 그대로 유지되고 있으며, 그의 폼이 다른 골퍼들에 비해 독특한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일부에서는 정식 레슨을 받지 않은 탓에 스윙 때마다 자세가 약간씩 변하는 점을 단점으로 지적하지만, 그럼에도 ‘버바 골프’로 불리는 그의 호쾌한 장타와 파워풀하고 빠른 스윙은 많은 팬들을 매료시키기고 있다.
3년 동안 PGA 2부 투어인 ‘네이션와이드투어’에서 활동하다 2006년 처음 PGA 프로에 데뷔했던 그가 지금까지 우승한 횟수는 마스터스 토너먼트를 포함해 모두 4회다. 2010년 ‘트레벨러스 챔피언십’을 시작으로 2011년에는 ‘파머스 인슈어런스 오픈’과 ‘취리히 클래식 오브 뉴올리언스’ 등 두 차례 우승을 거머쥐었다. 메이저대회 우승은 마스터스가 처음이며, 이로써 세계랭킹 순위는 현재 4위로 껑충 뛰어오른 상태다.
그의 마스터스 우승은 어쩌면 확률상으로는 어느 정도 예상 가능했던 일이었다. 18개 홀 가운데 6개 홀이 왼쪽으로 휘어져 있는 오거스타에서는 전통적으로 왼손잡이가 강세를 보였기 때문이다. 지난 10년 동안 왼손잡이 선수가 그린 재킷을 입은 횟수는 올 시즌 왓슨을 포함해 2003년 마이크 위어, 2004년, 2006년, 2010년 필 미켈슨 등 총 다섯 차례였다. PGA와 유러피언투어를 통틀어 왼손잡이 골퍼가 드물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무려 절반이 왼손잡이라는 점은 특이할 만하다.
그의 가장 커다란 장점이자 트레이드마크인 ‘장타력’ 또한 이번 대회에서 빛을 발했다. 350야드 이상의 장타 실력을 겸비한 그의 올 시즌 평균 비거리는 PGA 선수들의 평균 비거리인 285.7야드를 훌쩍 넘는 313.1야드다. 데뷔 첫 해인 2006년에는 평균 319.6야드를 기록하면서 장타 부문 1위에 올랐으며, 2007년과 2008년 3년 연속 이 부문 1위를 유지했다. PGA 개인 최고 기록은 2010년 ‘소니오픈’에서 기록한 416야드며, 2부 투어에서는 무려 422야드를 기록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빼어난 장타력에 비해 퍼팅 실력이 형편 없다는 것은 그에게 치명적인 약점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후한 점수를 주지 않았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자신의 이런 약점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왓슨은 “마스터스 연장전 홀에서도 바로 이 점 때문에 바짝 긴장했었다”고 말하면서 “마지막 퍼팅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다시는 이 순간이 오지 않으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며 내심 불안했던 속내를 털어놓았다.
▲ 자선의 의미가 담긴 핑크색 드라이버. |
▲ 자선활동의 일환으로 결성한 밴드 ‘골프보이즈’. |
▲ 11만 달러에 낙찰받은 닷지 차저 ‘제네럴 리’. |
▲ 52만 5000달러를 호가하는 ‘리처드 밀’ 손목시계. |
스폰서인 ‘핑’ 브랜드의 핫핑크 드라이버로 300야드 이상을 날릴 때마다 ‘핑’에서 300달러(약 34만 원)씩 ‘버바&프렌즈 드라이브 투 밀리언’ 자선단체에 기부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암환자를 돕는 이 자선단체에 총 100만 달러(약 11억 원)의 기부금을 전달하는 것이 현재 그의 목표. 마스터스 우승 후 왓슨은 “나에게는 마스터스 우승보다 300야드가 넘는 샷을 몇 번 날리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말하면서 기부천사의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와 관련, ‘핑’은 왓슨의 마스터스 우승 기념으로 6월 1일부터 왓슨이 이번 시즌 사용하고 있는 핑크색 G20 드라이버를 5000개 한정 판매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한정판 드라이버의 가격은 430달러(약 50만 원)다.
왓슨이 이렇게 기부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10년 식도암으로 세상을 떠난 아버지 때문이었다. 아버지를 기리고자 하는 뜻에서 자선활동을 시작한 그는 암환자뿐만 아니라 일본 지진 피해자들에게도 5만 달러(약 5700만 원)의 성금을 쾌척했으며, 주니어골프대회를 통해 모금한 2만 5000달러(약 2900만 원)를 투병 중인 어린이들에게 전달하기도 했다.
또한 지난해에는 자선 활동의 일환으로 다른 세 명의 젊은 골퍼들과 함께 ‘골프 보이즈’라는 밴드를 결성해 주목을 받기도 했다. 이들이 제작한 뮤직비디오가 유튜브에서 10만 번째 클릭될 때마다 지역 자선단체에 1000달러(약 115만 원)를 기부하는 식이었다.
그렇다고 그가 다른 사람을 위해 기부만 하는 것은 아니다. 버는 만큼 자신을 위한 투자도 아끼지 않는 그는 소문난 자동차광이다. 올해 초에는 1969년 TV 시리즈 <해저드 마을의 듀크 가족>에 등장했던 ‘닷지 차저’ 자동차를 경매를 통해 11만 달러(약 1억 2500만 원)에 사들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평소 이 시리즈 를 즐겨보는 팬이었던 그에게 이 자동차는 ‘드림카’였으며, 지난 2월 피닉스오픈에서는 대회 나흘 내내 이 자동차를 몰고 다니면서 주위의 시선을 한 몸에 받기도 했다. 이밖에도 왓슨은 소문난 ‘벤츠 마니아’로 모두 세 대의 벤츠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투자를 아끼지 않는 것 중에는 손목시계도 있다. 그가 그린 위에서 착용하는 손목시계는 자신의 스폰서인 ‘리처드 밀’의 ‘RM 038’ 모델로, 52만 5000달러(약 6억 원)를 호가하는 고가의 명품이다. 골프 선수, 특히 강한 샷을 날리는 왓슨을 위해 특별 제작된 이 시계는 충격방지 장치가 설계되어 있으며, 38개 한정판으로 제작됐다.
▲ 아내 앤지 왓슨. |
▲ 마스터스 우승 2주 전에 아들을 입양해 기쁨 두배였다고. |
우즈가 30개월이 넘도록 우승컵을 들어 올리지 못하자 스포츠용품업계는 누군가 혜성처럼 나타나 우즈의 공백을 메워주길 간절히 바랐다. 지난 14개 메이저대회 우승자가 모두 14명이었을 만큼 강력한 스타가 좀처럼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스토리’가 있는 왓슨의 우승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일각에서는 벌써부터 그가 광고업계 슈퍼스타로 떠오를 것이라고 점치고 있다. ‘닐슨 스포츠 리서치’의 스티븐 마스터 부회장은 “왓슨은 마케터로서 엄청난 잠재력을 갖고 있다. 마스터스 우승 전만 해도 그는 무명에 가까웠다. 하지만 그럼에도 꾸준히 PGA 투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선수 가운데 한 명이었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마스터스 우승으로 왓슨은 시장가치 면에서도 정상급으로 뛰어 올랐다”고 덧붙였다.
현재 왓슨은 핑(골프클럽), 트래비스 매튜(의류), 리처드 밀(손목시계), 타이틀리스트(골프공), 풋조이(골프화) 등의 스폰서를 통해 연 200만 달러(약 23억 원)를 받고 있다. 스폰서를 통해 연 4000만 달러(약 460억 원)를 벌어들이는 우즈나 미켈슨에 비하면 초라하기 그지 없다.
왓슨의 시장성이 높은 이유에 대해 전문가들은 첫째, 타이거처럼 기억하기 쉬운 ‘버바’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는 점, 둘째, 괴력의 장타자라는 점, 셋째, 레슨 한 번 받지 않고 성공을 이뤄낸 골퍼라는 점, 그리고 넷째, 핑크색 드라이버를 사용한다는 점 등을 꼽는다.
한편 조지아대학 재학 시절 만난 전직 미여자프로농구(WNBA) 선수 출신인 앤지와 결혼한 왓슨은 마스터스 대회 2주 전인 지난 3월, 4년 만에 아들을 입양하는 데 성공하면서 우승의 기쁨을 배가시키기도 했다.
김미영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