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은 골문 뚫어라! 외국어 열공 뻘뻘
▲ 그래픽=장영석 기자 zzang@ilyo.co.kr |
축구 선수들은 어떻게 은퇴 이후를 준비하고 있을까.
#지도자들이 대세
역시 예상대로였다. 결국 축구인들은 축구판에서 먹고 살아야 한다는 인식이 팽배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당연했다. 더욱이 가장 익숙한 포지션이 축구라면 더욱 그렇다.
선수들 상당수가 지도자를 꿈꾸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생각보다 문호도 넓은 편이라는 게 축구계의 전언이었다. 여기서 ‘지도자’는 프로나 실업축구 내셔널리그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었다. 아마추어까지 전부 총괄하는 것이다.
프로에서는 아무래도 이름값이 높은 이들이 지휘봉을 잡는 데 유리하겠지만 학원축구, 이른바 초등학교나 중학교, 고등학교 축구부에서 꼭 걸출한 스타급들을 요구하는 건 아니다.
얼마간의 경력과 인지도만 있으면, 또 대한축구협회에서 발급하는 지도자 라이선스만 일정 부분 갖추고 있으면 자격 요건은 충족된다. 다만 자릿수는 한정돼 있으므로 <일요신문> 최근호에서 밝혔듯이 어느 정도 운이 따라야 하는 건 맞다.
흥미로운 현상은 미래를 준비하는, 지도자를 생각하고 과정을 밟는 연령대가 예전에 비해 낮아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 에이전트는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군 입대를 전후해 선수들이 현역 이후의 진로를 고민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요즘은 달라졌다. 나이대가 크게 어려졌다. 대책 없이 막연히 걱정만 하고 있다가 은퇴 시점이 돼서 후회하는 것보다는 일찌감치 준비하겠다는 생각을 가진 선수들이 많아졌다”고 밝혔다.
실제로 선수들이 30대 중반이 된 이후에야 진로를 걱정하는 건 여러모로 어려움이 따른다. 지도자 자격증 발급을 위한 교육 코스도 시간이 날 때마다 틈틈이 해야 은퇴 시기가 닥쳐 부랴부랴 준비하는 사태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 여느 직장인들과 마찬가지로 어학 능력 역시 필수 요건으로 자리 잡고 있다.
해외 무대를 경험했거나 또는 경험하고 있는 선수들은 이러한 점에서는 국내 무대에서만 활동했던 선수들에 비해 앞서고 있다. 탁월한 어학 실력은 선수들에게도 큰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대표적인 게 대구FC 박만춘 통역의 경우다. 박 통역은 어린 시절을 남미에서 보냈기 때문에 포르투갈어 실력이 상당하다. 스페인어와 영어도 수준급이므로 아무래도 전력의 상당 부분을 용병들에 의존하는 K리그에서 자리를 구하기가 수월한 편이다. 박 통역은 FC서울에 잠시 몸 담았던 게 프로 이력의 전부이지만 적어도 국내 최고 수준의 축구 통역으로 통하고 있다. 그는 일찌감치 선수 생활을 접은 대신, 지도자를 꿈꾸고 있다. 마치 주제 무리뉴 레알 마드리드(스페인) 감독이 포르투갈과 스페인 등지에서 통역관으로 활동하다 현재의 위치에 오른 것처럼 비슷한 케이스를 목표로 하고 있다. FC서울에서 넬로 빙가다 감독을 보좌했던 박 통역은 벌써 3급 지도자 자격증을 획득했고 올해는 2급 지도자 자격증을 준비 중이다. 대구 구단도 이 같은 노력을 높이 사서 그와 정식 코치 계약을 했다. 누가 볼 때 화려한 선수 시절을 보낸 건 아니지만 우수한 언어 실력이 충분히 쓰일 수 있다는 사실을 박 통역이 몸소 증명해주고 있다.
이밖에도 자신의 이름을 내건 유소년 축구교실이 최근 들어 급격히 늘어나고 있고, 이제는 낯선 일이 아닐 정도로 여기저기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다만 성공 확률이 그다지 높지는 않다. 유소년 축구교실에서 선배들의 일을 돕는 경우도 있다.
#지도자 외의 길
그렇다고 꼭 선수들의 미래 진로가 지도자에만 국한돼 있는 것은 아니다.
이 경우 상대적으로 높은 수입이 많은 도움을 준다. 선수들은 프로에서 활약하며 또래 나이대의 직장인들보다 많은 연봉을 받는다. 기타 수당까지 챙길 수 있으니 목돈을 만질 수 있다. 금전적으로 유리할 수밖에 없다. 다만 은퇴 이후에도 비슷한 수준으로 돈을 벌어들이겠다는 조금은 허황된(?) 생각을 품지 않는다면 길은 열려있기 마련이다.
착실하게 돈을 모아놓았다면 자신의 명의로 된 건물을 사거나 이를 운영하면서 안정적인 수입을 올릴 수도 있겠지만 그냥 ‘놀고먹는’ 일에는 분명 한계가 있는 법이다.
개인 사업을 추진하는 이들도 꽤 있다. 측근들에 따르면 작년 시즌을 끝으로 그라운드를 떠난 국가대표 출신의 안정환과 조재진이 사업을 하고 있거나 할 계획이다.
일부는 축구 행정가나 구단 프런트를 목표하기도 한다. 스포츠 마케팅을 공부하며 현역 생활을 좀 더 이어가기 위해 미국 메이저리그사커(MLS)에 진출한 이영표가 대표적이다. 물론 생각처럼 쉽지는 않다. 그라운드에서 땀을 흘려야 하는 선수 생활과 동시에 알찬 공부를 병행하는 건 분명 어려운 일이다. 그를 가까이에서 지켜본 측근들은 “(이)영표처럼 착실한 선수도 어려움이 있는데, 일반 선수들은 더욱 힘겨울 것”이라고 한다. 비교적 화려한 선수 생활을 거친 한정국 부산 사무국장이나 김주성 대한축구협회 사무총장 등 축구 행정가로 활동하는 이들은 현역 선수들에게는 상당한 귀감이 되는 인물들이다.
박경훈 제주 유나이티드 감독이나 이용수 세종대 교수처럼 박사 학위를 받고 교단에 서는 방법도 있는데, 역시 엄청난 노력이 뒷받침돼야 하고 열성적인 공부 및 연구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구단 스카우터나 전력분석관 등도 선수들이 목표할 만한 진로로 떠오르고 있다.
남장현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