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피라이터·블로거·소매 판매원·소프트웨어 엔지니어·그래픽 디자이너·단순 사무직 등 위험
챗GPT가 더욱 화제가 된 이유는 마이크로소프트(MS)가 개발사인 오픈AI에 100억 달러(약 12조 원)를 투자한다는 소식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이런 화제성 덕분에 출시 두 달 만에 1억 명의 사용자를 확보했으며, 이는 ‘틱톡’이 같은 수의 회원을 모집하는 데 9개월이 걸렸다는 점을 생각하면 분명 이례적인 속도다.
인간의 대화 방식을 거의 그대로 모방하는 챗GPT는 대규모 언어 예측 모델인 GPT3.5를 기반으로 작동한다. 아직 완벽하다고 볼 수는 없지만 생각보다 진보된 기술이 앞으로 검색엔진 시장에 파장을 몰고 올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물론 더 지켜봐야 한다는 주장도 많다. 사내 비상령이 떨어진 구글이 서둘러 공개한 AI 챗봇인 ‘바드’가 공개 시연회에서 오답을 내놓으면서 한껏 부풀어 있던 기대감에 찬물을 끼얹었다는 점만 봐도 그렇다.
하지만 이런 우려에도 불구하고 AI 개발에는 지속적으로 막대한 자금이 투입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시애틀의 시장조사업체 ‘피치북’의 자료에 따르면, AI 개발 및 운영 기업에 대한 벤처캐피털 투자는 지난해 130억 달러(약 16조 4000억 원) 가까이 늘었다. 올해 10월까지 60억 달러(약 7조 5000억 원)가 더 투입될 예정이다.
그렇다면 과연 챗GPT와 같은 AI는 인간의 노동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이와 관련, AI 전문가인 리처드 드비어 울티마 사회공학부장은 “5년 안에 챗GPT가 전체 노동인구의 20%를 대체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시를 쓰거나 대본을 작성하고 필기시험을 보기도 하며, 심지어 법정에서 인간을 변호할 준비까지 되어 있기 때문이다.
드비어는 “챗GPT는 일시적인 유행이 아니다. 새로운 기술 혁명이다”라고 말하면서 “비트코인, NFT 또는 스마트 콘택트렌즈처럼 반짝하는 유행이 아니다. 현재의 유행 속도는 앞으로도 꾸준히 지속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그러면서 미래의 노동시장에 대해서는 “인간이 로봇으로 대체되는 일은 하룻밤 사이에 일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첫 번째 물결은 일상 업무를 돕기 위해 AI를 사용하는 덜 숙련된, 즉 경험이 적은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날 것”이라고 주장했다.
실제 이미 몇몇 회사는 사람이 하는 작업을 자동화하는 AI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다. 무제한으로 무료 카피라이팅 서비스를 제공하는 ‘자운스 AI’나, 과속 딱지 때문에 법정에 선 사람들을 대변해주는 AI 변호사 서비스를 제공하는 ‘두낫페이’ 등이 있다.
몇몇 직업군에서 나타나고 있는 이런 변화를 주의 깊게 바라보고 있는 드비어는 “우리는 지금 챗GPT의 초기 단계에 서있을 뿐이다”라면서 “앞으로 챗GPT의 활용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우리는 지금까지 사람들이 자동차 수리 방법을 배우거나, 해킹을 위한 컴퓨터 코딩을 작성하는 작업에 이르기까지 모든 분야에서 이 플랫폼을 사용하는 예를 보았다”면서 “앞으로 AI가 사람의 일자리를 얼마나 빼앗아갈지 가늠이 안 돼 두렵다”고 말했다.
반면, 드비어는 이런 경고와는 달리 창조적인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비교적 안전하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그는 “창의적인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비교적 걱정할 필요가 없다. 대신 변화는 받아들여야 한다. AI 혁명을 그들 자신의 능력을 돕거나 혹은 강화하는 데 사용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사용자들이 옷과 같은 아이템을 돈으로 바꿀 수 있도록 하는 핀테크회사 ‘트위그’가 좋은 예다. 일부 기능을 자동화하기 위해 챗GPT를 사용하고 있는 ‘트위그’는 마케팅, 금융 및 기타 비즈니스 분야에서 AI를 적극 도입하고 있다. ‘트위그’의 게리 쿠피 CEO(최고경영자)는 “AI의 잠재력을 일찌감치 파악한 우리 회사는 지난해 챗GPT를 기반으로 한 흥정 기능을 출시했다. 이 기능은 직원과 회원 사이에서 열렬한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이것은 미래이고, 회사는 이를 중심으로 인력을 조정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쿠피는 “AI는 사람들의 일자리를 빼앗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람들을 단순하고 지루하고 반복적인 작업에서 해방시켜 더 빠르고 효과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돕는 하나의 ‘도구’다”라고 주장했다. “근래 AI의 발전은 고용시장의 미래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낙관적인 입장도 보였다. 요컨대 AI는 ‘직접적인’ 일자리를 대체하기보다는 사람들의 삶을 전반적으로 향상시키는 기능을 수행하는 ‘촉진자’ 역할을 하게 된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AI 혁명으로 가장 사라질 위험이 높은 직업들은 구체적으로 어떤 게 있을까. 이미 AI를 활용해 일부 글쓰기 작업을 자동화하고 있는 IZSRI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자크 사이디는 “앞으로 3년 안에 여러 분야에 걸쳐 AI의 영향력이 체감되기 시작할 듯싶다”라고 점쳤다.
사이디가 말하는 가장 타격이 심한 직업은 카피라이터와 블로거다. 사이디는 “현재 챗GPT는 무료로 사용이 가능하지만 카피라이터들은 그렇지 않다. 아마도 앞으로는 더 많은 소규모 기업들이 비용적인 측면에서 무료로 사용 가능한 챗GPT나 AI에 의존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이런 변화는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온라인 뉴스 사이트인 ‘버즈피드’는 올해 초 일부 온라인 콘텐츠를 챗GPT를 사용해 제공하겠다고 발표했으며, 기술미디어 웹사이트인 ‘씨넷’은 지난달 AI를 이용해 기사를 작성한 사실이 드러나 논란에 휩싸였다. 이유인즉슨, 이 기사들 가운데 일부가 오류투성이인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외는 있다. 사이디는 “다만 고도로 숙련된 카피라이터들의 경우에는 비교적 안전하다”고 말했다. 핵심은 창의성이다. 사이디는 “우리는 그 무엇도 인간의 창의성을 대체할 수는 없다고 믿는다. 챗GPT는 아직까지 매우 일반적인 콘텐츠를 생성하는 수준이다”라고 설명했다.
소매 판매원들도 AI로 빠르게 대체될 수 있는 직업군에 속한다. 사이디는 “이 분야에서는 심각한 일자리 감소가 초래될 수 있다”라고 말하면서 “이미 계산대 직원, 고객서비스센터 직원, 퍼스널 쇼퍼 등은 챗GPT처럼 딥러닝 기술에 의해 구동되는 AI 봇으로 서서히 대체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올해 초 인공지능 기업 ‘스탠더드 AI’가 ‘자율 소매점’을 만들겠다는 목표로 자율 계산대 업체 ‘스킵’을 인수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이는 소매업체들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인 인건비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사이디는 “어떤 면에서는 AI가 노동자들을 하찮은 일에서 해방시켜 더 관리적이고 창의적인 역할에 몰두할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며 긍정적인 면도 함께 고려해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및 사이버 보안 전문가도 위험하긴 마찬가지다. 챗GPT는 영어로 문장을 작성할 뿐만 아니라 파이썬(프로그래밍 언어) 등을 이용한 코딩 작업도 할 수도 있다. 실제 오픈AI는 챗GPT가 프롬프트에 대한 응답으로 코드를 디버깅(오류를 검출)하는 모습을 시연해 보이기도 했다. 사이디는 이런 기술이 개발자, 더 나아가 사이버 보안 전문가들에게 즉각적이고 광범위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한다.
챗GPT가 즉시 html 코드를 생성해 복잡한 코드의 오류를 인간보다 빠르게 해결하는 모습을 직접 목격한 사이디는 “챗GPT는 이전에는 주니어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들이 담당했던 역할, 즉 코드 오류를 해결하고 기본 애플리케이션을 구축하는 역할까지 할 수 있을 정도로 발전했다. 이는 AI가 현재 인간이 수행하는 기본적인 프로그래밍 작업을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다.
사이버 범죄에 악용될 수 있다는 문제도 있다. 사이버 범죄자들은 이미 챗GPT와 같은 도구를 사용해 악성 프로그램 개발부터 다크웹(특정 프로그램을 사용해야만 접속 가능한 웹페이지) 시장 창출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자동화하고 있다. 때문에 사이디는 AI가 사이버 보안 전문가들에도 적지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그래픽 디자이너와 비주얼 아티스트도 안심할 수 없는 직업군이다. 이미 ‘달리(Dall-E)’, ‘스테이블 디퓨전(Stable Diffusion)’, ‘미드저니(Midjourney)’와 같은 그래픽아트 소프트웨어는 디자이너, 일러스트레이터 및 시각 예술가의 활동 영역을 상당 부분 침범한 상태다. 오픈AI가 개발한 ‘달리’는 현재 하루에 200만 개의 이미지를 생성할 수 있을 만큼 진보해 있으며, 지난해 ‘미드저니’는 콜로라도 주립 박람회 미술대회에 출품해 우승을 차지하면서 논란을 일으켰다. 스톡사진 플랫폼인 ‘게티이미지’가 ‘스테이블 디퓨전’의 제조업체인 ‘스태빌리티 AI’를 상대로 법적 소송을 제기한 이유 역시 이런 위기감이 작용했기 때문이었다.
사이디는 이미지를 저렴하고 빠르게 제작할 수 있는 능력은 그래픽 디자이너, 예술가 또는 일러스트레이터에게 돈을 지불할 여력이 없는 소규모 기업들에게는 분명히 매력적인 대체수단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사이디는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인간의 창의성이 항상 디자인의 핵심에 있다고 믿고 있다. 때문에 창작자들을 완전히 대체하기보다는 예술적 영감을 얻기 위해 인공지능을 잘 활용하는 식으로 이용하는 게 더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단순 업무를 보는 중간급 화이트칼라 노동자들 역시 AI로 대체될 전망이 높다. 가령 인사과의 서류 작성, 이메일 작성, 보도자료 초안 작성과 같은 업무들이 그렇다. 노동시장을 연구하는 MIT 경제학자 데이비드 오토는 “AI는 직관적이고 일상적인 업무를 하는 노동자들의 영역에 훨씬 더 많이 개입할 것이다. 이런 작업들은 전문적인 기술을 필요로 하지 않으며, 소프트웨어는 이런 기술을 더 저렴하게 만들어 인간의 노동력을 대체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법조계 역시 돌풍을 피해가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실제 챗GPT가 최근 미국 로스쿨 시험에 합격해서 화제가 되기도 했었다. 법률 소프트웨어 회사인 ‘아이언클래드’의 공동 설립자이자 CEO인 제이슨 보미그는 “현재 변호사들의 가장 큰 문제는 처리해야 할 크고 작은 사건이 너무 많다는 데 있다. 그래서 당장 해야 할 일과 미뤄둘 일이 무엇인지를 일일이 구분해 처리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가운데 비교적 단순한 업무들은 사실 숙련된 봇에게 맡겨도 충분하다. 이를테면 표준 양식이 있는 부동산 임대차 계약서, 유언장, 비공개 계약서 등이 그렇다. 이와 관련, 컬럼비아대 경영대학원의 오네드 네처는 “법률 문서들 가운데 90%는 사실 복사해서 붙여넣기”라면서 “때문에 AI도 이런 종류의 문서를 충분히 작성할 수 있다. 창의성이 덜 필요할수록, 더 많이 인공지능으로 교체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보미그는 “앞으로 변호사들이 일하는 방식은 극적으로 달라질 전망이다. 만약 10년 안에 사라질 확률이 가장 높은 직업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새로운 업무 방식에 적응하지 못한 변호사들이라고 서슴없이 대답할 수 있다. 변화를 원하지 않는 사람들과 변화해야 한다는 사실을 스스로 깨닫는 사람들 사이에는 확실한 차이가 있다”고 장담했다. 변화의 파도를 거스를 수 없다면 적어도 그 파도에 올라타야 한다는 의미다.
전문기술·서비스직은 상대적으로 안전
AI의 도전에도 비교적 안전한 직업들은 무엇일까. 이와 관련, 영국의 ‘메일온라인’은 전문가들의 말을 빌려 대면 상호작용이 필요하거나, 신체를 사용하는 기술을 가진 직업 등을 꼽았다. 가령 전문 기술이 필요한 미장이, 전기기술자, 정비공 등이 그렇다. 이 밖에도 기술뿐만 아니라 사람의 마음과 감정을 헤아리는 능력이 필요한 미용사, 마사지사 등의 서비스직도 해당된다.
고객을 맞이할 때 따뜻하고 친절한 감정을 표현해야 하는 서비스직 가령 요리사, 식당 종업원, 호텔 프런트 직원도 마찬가지다. 의사, 간호사, 치과의사 등도 여전히 필요할 전망이다.
챗GPT를 비롯한 관련 기술은 지식 분야에는 가장 큰 위협이 되긴 하지만, 동시에 가장 큰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문제는 얼마나 이런 변화에 발빠르게 대응하고 적응하는가에 있다. IT 채용회사인 ‘더브릿지’의 이사인 앤디 워즈워스는 “챗GPT의 도입으로 의심할 여지없이 일부 일자리는 AI로 대체될 수밖에 없다. 이때 승자와 패자가 나뉘게 된다. AI를 사용하는 법을 배우고 ‘멋진 신세계’에 재빠르게 적응하는 기업과 개인들은 결국 승자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요컨대 AI가 위협이 될지, 아니면 기회가 될지는 누가, 그리고 어떻게 이 기술을 사용하느냐에 달려 있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