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ㆍ선수 ‘파릇’ 멀리 보고 ‘3점슛’
▲ 지난해 FIBA 아시아농구선수권대회 8강 일본전을 하루 앞둔 한국대표팀이 훈련 전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고 있는 모습. 사진제공=KBL |
#‘초짜’ 잡음을 바라보는 시선
우승팀 감독이 대표팀 지휘봉을 잡는 관례에 따라 이상범 감독이 사령탑에 올랐다. 이 감독은 KGC의 돌풍을 이끌며 막강 전력의 원주 동부를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이 감독의 빛나는 ‘형님 리더십’이 있었지만, 그 뒤엔 ‘멘토 리더십’도 숨어 있었다. 이 감독은 경험이 풍부한 지도자들을 찾아 끊임없이 조언을 구해 해답을 찾았다. 결과는 KGC의 사상 첫 우승이었다.
이 감독은 프로에서는 산전수전을 다 겪었다. 프로선수 출신으로 코치와 감독대행, 감독을 거쳤다. 하지만 아마추어로 돌아가면 백지 상태나 다름없다. 이 감독은 대표팀 사령탑 자리가 부담스럽다. 정중히 고사도 해봤다. 국가대표 운영협의회(이하 국대협)는 관례를 깨지 않았다. 이 감독은 경험이 풍부한 베테랑 코치로 수차례 추천을 했다. 아마와 프로 전직 감독 출신들이다. 결격 사유를 들어 모두 거절당했다. 코치 선임은 감독 권한이라는 관례가 깨졌다. 우지원 코치 영입은 파격적이었고, 이 감독의 의도와도 거리가 멀었다. 여자농구대표팀 감독 선임 문제가 불거진 상황에서 또 국대협의 감정이 개입됐다는 의혹을 버리기 힘들다. 이 감독은 “국대협에서 젊은 분위기로 가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을 했고 받아들였다. 세대교체는 내 운명이라 생각하고 부딪쳐 보기로 했다”고 밝혔다. 불안한 출발이다.
대표팀 선수 선발도 고민이다. 이 감독은 “아마농구 선수들의 경기를 많이 본 적이 없다”며 걱정을 토로한 뒤 김주성(동부)과 이종현(경복고) 등 베테랑과 고교생 초짜를 대표팀에 합류시키는 문제에 대해 고민스런 입장을 밝혔다. 이 감독은 세대교체를 원한다.
지난 25일 국대협은 예비엔트리 24명을 발표했다. 김주성과 박지현(동부), 양동근(모비스) 등 베테랑들이 포함됐고, 대표팀 경험이 있는 김종규(경희대)와 이승현(고려대), 김준일(연세대), 김민구(경희대) 등 대학생 4명, 유일한 고교생인 이종현이 이름을 올렸다. 세대교체를 예고하는 파격적인 선발이다. 5월 1일부터 시작되는 합동훈련을 통해 13~15명으로 추릴 계획이다.
▲ 대표팀에 선임된 이상범 감독(왼쪽)과 우지원 코치. |
한국 남자농구의 최근 10년간 국제대회 성적은 처참했다. 아시아선수권대회 우승은 1997년 이후 멈췄고, 아시안게임 금메달 역시 2002년이 마지막이다. 2009년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는 7위에 머무르는 최악의 성적으로 ‘톈진 참사’로 기억된다.
‘톈진 참사’는 각성의 기회였다. 남자대표팀은 2009년 이후 재정비에 나섰다. 국대협이 구성됐고, 전폭적인 지원과 함께 국제대회에서 다시 위용을 보이기 시작했다.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는 유재학 감독이 지휘봉을 잡아 은메달을 따냈고, 2011년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는 4강에서 개최국 중국에 석패한 뒤 3위를 차지하며 올림픽 최종예선 티켓을 따냈다.
사실상 이번 대회 결과는 낙관적이지 않다. 같은 조에 편성된 러시아와 도미니카공화국은 객관적 전력에서 앞선다. 한국은 국제농구연맹(FIBA) 랭킹 31위. 유럽 강호 러시아와 도미니카공화국은 각각 11위, 25위다. 이 감독은 도미니카공화국에 초점을 맞추기로 했지만, 역시 쉽지 않은 상대다.
남자대표팀은 변화를 선택해야 할 시점이다. 세대교체다. 당장 올림픽 최종예선이 아닌 2014년 인천에서 개최하는 아시안게임에 모든 전력을 쏟아야 한다. 프로농구의 흥행과 한국 남자농구의 미래가 모두 걸려 있는 중요한 대회다.
남자농구는 국제대회가 많지 않다. ‘우물 안의 개구리’라는 말이 그냥 나온 것이 아니다. 젊은 선수들로 구성해 국제경험을 쌓아야 하는 이유다. 이번 대회는 더 없이 좋은 기회다. 세계의 벽을 몸으로 느껴야 한다. 2014년은 김주성이 30대 후반으로 접어드는 시기다. 물론 기량을 유지해 대표팀의 든든한 맏형 노릇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김주성에게 이번 대회와 같은 국제대회 경험은 큰 효과가 없다. 오히려 충분한 휴식이 필요하다.
지난 시즌 프로농구의 흥행을 주도한 플레이오프 최우수선수(MVP) 오세근(KGC)과 김선형(SK), 최진수(오리온스) 등은 인천 아시안게임의 주축이 될 선수들이다. 대학생 김종규와 이승현, 김준일은 장신 빅맨들이고, 김민구는 프로에서 통할 장신 가드로 평가받는다. 특히 유일한 고교생인 이종현은 눈여겨 볼 만하다. 한국농구의 기대주로 평가받는 이종현은 205㎝의 장신 센터. 성장판이 열려 있어 210㎝ 이상 키가 더 클 가능성도 있다. 최근 한 고교대회에서 한 경기 42개의 리바운드 기록을 세웠을 정도로 출중한 기량을 갖고 있다.
인천 아시안게임은 홈에서 개최돼 이점이 많다. 농구인들은 2002부산아시안게임의 영광을 재현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로 내다보고 있다. 세대교체의 가장 큰 이유는 병역의무 면제권이다. 프로농구의 흥행을 위한 연속성을 가져갈 수 있는 기회다. 대부분의 스타플레이어는 데뷔 후 짧으면 한 시즌, 길어도 세 시즌이 지나면 군 입대를 해야 한다. 한 프로농구 관계자는 “아마와 프로를 떠나 모두가 합심해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반드시 금메달을 딸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세대교체는 지금 당장부터 이뤄져야 하고 전폭적인 지원을 해야 한다. 젊은 선수들이 군 면제 혜택을 받아야 프로농구도 살고 전체 한국농구도 산다”고 역설했다.
이 감독은 세대교체를 강력히 원하고 있다. 국대협도 선수 구성만큼은 이 감독과 박자를 맞춰야 한다. 당장의 성적보다 장기적인 플랜이 절실한 때다. 한국 남자농구 10년의 청사진, 그 이상의 미래가 달려 있다.
서민교 MK스포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