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사금융은 우리 사회의 보통 큰 고질이 아니다. 문제의 뿌리는 갈수록 깊어지는 빈곤의 늪이다. 경제가 고용창출능력을 잃은 상태에서 소득양극화가 구조화하여 한번 빈곤층으로 떨어지면 재기할 가능성이 극히 낮다. 소득순으로 중위소득의 절반 이하를 버는 빈곤층 가구가 전체 가구의 20% 수준이다. 이중 빈곤 탈출률이 30% 이하에 머물러 나머지 70%는 반복 빈곤의 함정에 빠진다. 이들은 신용불량자로 낙인이 찍혀 제도권금융의 지원을 받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사금융 범죄의 대상이 된다. 불법추심 협박에 시달리다 자살까지 하는 등 극단적인 고통을 겪는다. 정부의 대책이 보통 절박한 것이 아니다.
정부의 불법 사금융 근절 대책은 성공할까? 한마디로 그 가능성은 낮다. 불법 사금융은 근본원인을 제거하지 않는 한 소나기피하기 식으로 잠시 숨었다가 더욱 음성적인 형태로 진화하는 속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대책이 나온 지 한 달도 안 되어 벌써 다른 형태의 불법 사금융들이 고개를 들고 있다. 휴대전화를 맡기면 은밀하게 며칠간 급전을 빌려주는 대가로 연 1000퍼센트 이상의 선이자를 떼는 고리대금이 있다. 자동차를 담보로 금전을 빌려주고 주차비를 추가로 징수하여 교묘히 법정금리 한도를 피하는 대부업자도 있다.
그렇다면 불법 사금융을 사라지게 하는 방법은 없나?
기본적으로 금융의 공기능을 확대하여 서민들도 제도권 금융을 이용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 금융시장은 경제주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공적 영역이다. 이러한 시장이 서민들의 참여를 제한한다는 것은 그들의 경제활동기회를 차단하는 것으로 시장경제의 기본원칙에 어긋나는 일이다. 따라서 신용도에 따라 금리를 차등 부과하는 시장원리를 대폭 확대하여 아무리 신용도가 낮아도 그에 상응하는 높은 이자를 내면 자금을 대출받을 수 있도록 제도를 바꿔야 한다.
이런 면에서 정부정책은 역행을 했다. 정부는 2002년 연 66%였던 제도금융권의 최고금리한도를 지난해 39%까지 낮추었다. 제도 개혁이 아니라 단순히 금리를 낮춘다는 논리였다. 그러자 서민들의 급전대출창구인 대부업체수가 급감했다. 2007년 1만 8000개에 이르던 대부업체가 올해 2월 1만 2000개로 줄었다. 제도금융의 마지막 보루까지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자연히 서민들이 대거 고금리 사금융 시장으로 내몰렸다. 여기에 최근에는 가계부채규모를 줄이기 위해 제도금융권의 대출마저 억제하여 불법 사금융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더욱 중요한 정책은 서민들의 사금융 수요를 근본적으로 줄이는 것이다. 이를 위해 우선 경제가 수용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복지정책을 최대한 강화하여 사회안전망 구축을 서둘러야 한다. 무엇보다도 중소기업육성과 일자리창출정책을 효과적으로 펴야 한다. 그리하여 서민들이 빈곤층에서 쉽게 탈출할 수 있는 경제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사금융과의 전쟁은 사후 처벌을 위한 전쟁이 아니라 사전 원인제거를 위한 전쟁이 되어야 한다.
고려대 교수·전 총장 이필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