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버랜드 주식 3400억대 종착점이 관건
▲ 이건희 회장과 에버랜드 홈페이지의 이미지. | ||
지난 1997년에 만들어진 금산법에 따르면 재벌계열의 금융회사가 비금융계열사 주식 5% 이상을 가지면서 지배구조에 영향을 미칠 경우 금융감독위원회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이 때문에 삼성카드의 삼성에버랜드 지분(25.6%)과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7.2%)은 항상 논란의 대상이 돼 왔다.
지난 2월 7일 이건희 회장 귀국 이후 삼성은 구조본 축소 운영과 8000억 원 사회 헌납 등을 발표하면서 정치권의 금산법 개정안에 따를 것임을 밝혔다. 지난 2월 27일 국회 재경위 전체회의에서 금산법 개정안은 찬성 12표, 반대 11표를 얻어 가까스로 가결됐다.
삼성카드가 허용 범위인 5%보다 많이 보유한 에버랜드 지분 20.6%를 5년 안에 처분할 수 있게 해준 것과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지분 7.2% 중 5%를 초과하는 2.2%에 대해 2년 후부터 의결권만을 제한한다는 내용 때문이었다. 일종의 ‘유예기간’을 준 것에 대해 한나라당을 비롯한 야당 의원들이 반대표를 던졌지만 열린우리당 의원들 덕분에 겨우 통과된 것이다. 금산법 개정안의 2월 국회 본회의 통과가 미뤄졌지만 4월 국회에서 통과될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 봐주기’ 논란을 낳기도 했지만 금산법 개정안으로 인해 삼성은 적지 않은 어려움에 직면할 수도 있다. 아무리 5년이란 시간이 있다해도 삼성카드가 보유한 에버랜드 주식 처분이 만만치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우선 삼성카드가 보유한 에버랜드 지분을 얼마에 처분할 것인가를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이건희 회장 자녀들이 에버랜드 전환사채를 주당 7700원이란 헐값에 배정받은 것이 문제가 돼 결국 삼성 지배구조에 대한 논란이 불거진 까닭에서다.
지난해 삼성그룹 계열사들이 금융감독원에 제출한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하나안진회계법인은 삼성카드가 보유하고 있는 에버랜드 주식 64만1123주(25.6%)에 대한 2004 회계연도 순자산가액총액을 4407억 8624만 3000원으로 평가했다. 이를 환산하면 에버랜드 주식을 주당 68만 7522원으로 볼 수 있다. 또 에버랜드 전체 발행주식의 20%는 약 50만900 주이고 그 가치는 3400억 원을 웃돈다.
이 정도 가치의 주식을 처분하는 방법으로 우선 삼성의 여러 계열사가 분할해서 매입하는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삼성 지배구조의 근간을 위협할 수 있다. 삼성그룹은 현재 ‘삼성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전자 등 주요계열사→삼성카드→삼성에버랜드’로 이어지는 순환지배구조로 이뤄져 있다. 삼성카드가 에버랜드 지분 25.6%를 보유하고 에버랜드가 삼성전자 지분 13.34%를 보유해 삼성그룹 지배구조의 핵심 역할을 하고 있다. 현재 이건희 회장 일가가 보유한 에버랜드 지분 53.93%는 순환지배구조의 시발점 구실을 하고 있다. 삼성카드처럼 단일 법인이 아닌 여러 법인이 에버랜드 지분 20%를 나눠 갖게 되면 이는 곧 삼성그룹 지배구조가 흔들리게 된다는 이야기로 귀결된다.
종전의 지배구조와 같은 틀을 유지하려면 3400억 원을 한꺼번에 동원할 수 있는 단일 계열사가 삼성카드의 에버랜드 지분 20%를 매입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나 삼성물산 같은 ‘덩치 큰’ 계열사가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순환지배구조를 통해 주요계열사를 지배하고 있던 삼성 총수일가가 특정 계열사를 통해 삼성카드의 에버랜드 지분을 사들이는 것에 부담을 가질 수 있다.
우호적 성향의 대주주나 ‘비 삼성’ 계열 법인을 통해 삼성카드의 에버랜드 지분 획득을 꾀할 수도 있다. 그러나 3400억 원을 들여야 한다는 점에서 ‘부당 지원’ 의혹을 낳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헐값에 넘겼다간 ‘반 삼성’ 정서에 기름 붓는 격이 된다. ‘제3자를 통한 총수일가의 주요 계열사 지배’라는 비판을 낳을 수도 있으며 제3자가 ‘딴 생각’ 품을 위험 역시 배제할 수 없다.
이렇다 보니 금산법 적용을 앞둔 삼성그룹의 지배구조에 대해 ‘지주회사가 등장할 것’이란 관측이 대두되고 있다. 삼성물산은 삼성전자(3.48%)를 비롯해 삼성정밀화학(5.59%) 삼성증권(0.27%) 삼성테크윈(4.28%) 등 주요 상장 계열사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순환지배구조 하에서 중심 역할을 해온 삼성에버랜드(1.48%)와 삼성카드(3.18%) 지분도 보유하고 있다. 최근 주식시장에선 금산법 영향에 따라 삼성물산이 지주회사로 등장할 것이란 관측이 퍼지면서 삼성물산 주가가 크게 상승하기도 했다.
얼마전 이건희 회장 귀국 직후 삼성이 구조본에서 법무팀을 분리 운영할 것을 발표하자 재계에선 ‘법무팀이 삼성물산에 배속될 것’이란 관측이 나돌기도 했다.
그러나 삼성물산을 둘러싼 ‘지주회사’설에 대해 삼성측은 부인하고 있다. 만약 에버랜드를 대체할 지주회사를 찾아야한다면 삼성전자 지분을 많이 갖고 있어야 한다는 논리다. 삼성물산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 3.48%론 어림없다는 이야기다. 이 관계자는 법무팀에 대해서도 삼성물산이 아닌 여러 법인으로 분산돼 운영될 것이라 밝혔다.
삼성 관계자의 말대로라면 삼성전자 지분 7.2%를 보유한 삼성생명이 새로운 지주회사로 등장할 가능성에 주목해야 한다. 그러나 금산법 개정안으로 5% 초과분인 2.2%에 대한 의결권이 제한되면 삼성생명의 삼성전자에 대한 장악력도 느슨해질 수밖에 없다는 문제가 있다.
새로운 지주회사 설립이 아니라면 삼성은 경영권 방어를 위해 에버랜드를 중심으로 한 현재와 같은 순환지배구조를 고수해야 한다. 이 때문에 정치권과 재계 일각에선 정부·여당과 삼성 사이에 모종의 교감이 있을 가능성에 주목하지만 양측은 전면 부인하고 있다.
삼성 총수일가가 그룹 지배를 포기할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이다. 금산법 개정안 수용 의사를 밝힌 이후 ‘정부·여당과 밀약은 없다’고 주장해온 삼성은 현재 아무도 모르는 복안을 갖고 있는 것일까.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