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이거나 가업이거나 도피처
오스트리아의 영화감독인 미카엘 글라보거(53)는 자신의 다큐영화 <창녀에게 경배를(Whores’ Glory)>의 제작 배경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지난해 9월 제68회 베니스국제영화제 특별심사위원상을 수상하면서 주목받았던 이 영화가 지난 4월 27일 뉴욕과 시애틀에서 동시에 개봉되어 뒤늦게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태국, 방글라데시, 멕시코 등 3개국 집창촌에서 일하는 매춘부들의 삶을 가까이서 들여다본 이 영화는 비교적 정확한 묘사와 생생한 현장감이 압권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선정적이고 도발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착잡하다는 반응이 주를 이루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세계화로 인해 발생한 보이지 않는 변화를 다룬 글라보거 감독의 3부작 가운데 하나인 이 영화는 <메가시티> <워킹맨스 데스>에 이은 마지막 3부이기도 하다. 나라마다, 또 종교마다 다른 형태로 발전해온 3국의 집창촌은 영화 속에서 어떻게 묘사됐을까.
영화 속에 등장하는 집창촌은 태국 방콕의 ‘피쉬 탱크’, 방글라데시 파리드푸르의 ‘시티 오브 조이’, 그리고 멕시코 레이노사의 ‘라조나’ 등 세 곳이다. 이들 세 나라는 성매매가 다른 나라들에 비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기는 하지만 저마다 종교가 다른 탓에 매매춘 역시 조금씩 다른 형태를 띠고 있다. 가령 태국은 불교 국가이고, 방글라데시는 이슬람, 그리고 멕시코는 가톨릭과 원주민 종교가 합쳐진 ‘라 산테 무에르테’라는 컬트 종교가 성행하고 있다.
글라보거 감독은 “이들 세 나라에서 매춘 여성들 대다수는 상품처럼 사고 팔리고 있으며, 가족에 의해 내다팔리는 경우도 더러 있다”라며 “하지만 이 영화는 인신매매를 고발하는 영화는 아니다. 묵묵히 제3자의 눈에서 현실을 담아내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이런 까닭에 이 영화에는 내레이션도 없고 또 해설도 없다. 그저 관찰자의 입장에서 있는 그대로를 담아내고 있다.
집창촌 깊숙한 곳까지 들어가 생생한 현장을 담아낼 수 있었던 비결(?)에 대해서는 “매춘부들에게 돈을 쥐어줄 수 있어 가능했다”고 설명했다. 촬영을 하거나 인터뷰하는 동안에는 손님을 받을 수 없었기 때문에 한 시간 단위로 손님을 받은 셈치고 돈을 지불했다는 것이다.
▲ ‘수족관’을 연상케하는 태국의 ‘피쉬 탱크’. 출퇴근하는 이곳 여성들은 자신의 일에 당당한 편이다. |
이곳을 찾는 고객들은 태국인들이 주를 이루며, 외국인들은 극히 일부다. 그렇다면 매춘부들은 어떤 고객들을 가장 꺼려할까. 한 매춘 여성은 “오히려 돈 많은 손님일수록 별로 반갑지 않다. 요구하는 것도 많고, 또 육체적으로도 더 고통스럽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매춘 여성은 “흑인 손님들은 가학적인 성향이 강해서 싫고, 인도 남자들은 몸에서 악취가 나서 싫다”고 말했다.
한편 비교적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일하는 이곳의 매춘 여성들은 자신의 일에 대해 당당하고 자신감이 넘치는 편이다. 마치 출근기록부에 도장을 찍듯이 사무적인 태도로 일하며, 정해진 시간에 출근을 하고 또 퇴근도 한다. 또한 최저임금이 보장되어 있기 때문에 수입도 안정적이며, 손님들이 지불하는 팁 역시 100% 모두 본인 몫으로 챙길 수 있어 벌이도 쏠쏠하다.
생활이 비교적 여유롭다 보니 퇴근 후에는 삼삼오오 모여 나름의 여가 시간을 즐기면서 스트레스를 풀기도 한다. 이들이 가장 선호하는 스트레스 해소법은 다름 아닌 술집이나 호스트바에서 남성 접대부들과 어울리면서 술을 마시는 것이다.
▲ 방글라데시 파리드푸르의 ‘시티 오브 조이’. 엄마를 이어 딸이 창녀가 되는 슬픈 도시다. |
현재 이곳에서 일하는 매춘부들은 600명 정도. 첫 생리를 시작한 후부터 즉시 일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대부분이 10대 소녀일 만큼 전체적으로 나이가 매우 어린 것이 특징이다. 하지만 이보다 더욱 특이한 점은 매춘부라는 직업이 대대로 물려받는 일종의 가업이 됐다는 점이다. 말하자면 나이가 들어 은퇴(?)한 어머니의 대를 이어 딸이 다시 매춘부가 되는 식이다. 만일 딸이 없는 매춘부들의 경우에는 창녀를 고용해 가업을 잇게 하기도 한다.
이처럼 이곳은 기존에 터를 잡은 매춘 여성들이 나이가 들어도 떠나지 않고 대를 이어 계속 머물러 있기 때문에 폐쇄적인 공간이 됐다. 글라보거는 “이곳은 여성들이 지배하는 거주지역이다. 매우 폐쇄적인 곳이며, 여자 포주들이 구역 전체를 통제하고 있다. 만일 어떤 남자 손님이 소녀에게 무례하게 굴면 다시는 이곳에 발을 들여놓을 수 없게 된다”고 말했다. 간혹 이 구역에도 남성들이 살고 있는 경우가 더러 있는데 이런 경우는 포주의 아들이거나, 혹은 애인들인 경우가 많다.
이곳에서 매춘부로 일하는 여성들의 꿈은 나이가 들어서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게 되면 포주, 즉 마담이 되는 것이다. 때문에 젊어서 가능한 돈을 많이 모으기 위해 노력하며, 마담이 된 후에는 자신의 아래로 여러 명의 매춘부들을 거느릴 수 있기를 꿈꾼다. 만일 젊어서 돈을 모으지 못해 마담이 될 수 없게 된 경우에도 대부분은 이곳을 떠나지 않고 남는 쪽을 택한다. 이런 경우에는 밥을 하거나 청소를 하는 등의 가사일을 해주면서 생계를 이어나간다.
사정이 이러니 마담들 사이에서 경쟁이 치열한 것은 당연한 일. 더욱이 매춘부들의 수에 비해 이곳을 찾는 남성들 수가 적기 때문에 업소마다 날카로운 신경전은 매일같이 계속 된다. 따라서 기회만 된다면 가능한 많은 손님을 받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은 당연한 일.
어떤 10대 소녀는 손님과 일을 마친 후 사용한 콘돔을 물이 담긴 대야에 버린 후 밖으로 나가 보란 듯이 물을 쏟아붓곤 한다고 말했다. “봐라. 방금 손님이 다녀갔다”는 무언의 과시라는 것이다.
방글라데시 매춘부들의 또 한 가지 특징은 이슬람 신자들인 까닭에 성관계시에도 절대로 옷을 벗는 일이 없다는 점이다. 손님과 관계를 맺을 때에도 그저 치마만 들어 올리는 정도가 전부다. 또한 손님이 원해도 오럴 섹스를 해주는 것도 금지되어 있다. 알라신에게 기도를 올리는 입과 같은 입이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 이유다.
▲ 멕시코 레이노사의 ‘라조나’. 이곳은 매매춘 여성이 도망을 가더라도 포주가 그들을 쫓지 않는다. |
이곳의 매춘부들 역시 포주들에 의해 고용되어 있긴 하지만 별다른 구속은 받지 않는다는 점 역시 다르다. 언제든 “그만둘래요”라는 말 한마디면 떠날 수 있으며, 설령 아무 말 없이 도망간다고 하더라도 굳이 쫓아가서 잡는 일도 없다. 한 포주는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매춘부들이 도망갔냐는 질문에 “절반 정도가 달아났다”라며 “하지만 몸을 판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특히 감정적으로 그렇다. 사랑이 항상 문제다”며 체념한 듯 말했다.
김미영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