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당 ‘빨간불’에 대선가도 깜박깜박
▲ 지난 9일 민주통합당 비상대책위원회 모습. 통합진보당의 도덕성 논란이 야권연대 전체로 번질 태세다.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사실 민주당에서 이 같은 목소리가 터져 나온 것은 이미 예상됐던 일이다. 야권연대의 파트너로서 드러내놓고 말을 안 했을 뿐 진보당 사태가 터진 이후 민주당 내부는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진보당 사태의 피해가 진보당뿐 아니라 민주당을 비롯한 야권, 진보진영 전체의 피해로 이어질 수밖에 없고 이대로 진보당의 손을 잡고 갔다가 오는 12월 대통령선거에서 필패라는 위기감 때문이다. 민주당에게 진보당 사태는 ‘강 건너 불’ 아닌 ‘발등의 불’인 셈이다.
민주당은 진보당 사태로 인해 야권과 진보진영 전체가 ‘부정·부실 집단’으로 낙인 찍힐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국민의 눈높이에서 봤을 때 심각한 결함이 있는, 심지어 부정한 수단까지 동원한 내부 경선이 아주 오랫동안 반복돼 왔다는 사실이 이번 사태로 만천하에 드러났다는 것이다. 실제로 현재의 진보당 당권을 장악하고 있는 NL(민족해방)계열이 구 민주노동당(민노당) 시절이던 지난 2001년 위장전입과 당비 대납 등 온갖 부정행위를 통해 서울 용산지구당을 접수하는 ‘용산 사태’를 일으켰고, 이때부터 NL계열의 민노당 접수가 이뤄졌다는 사실이 새롭게 조명을 받게 됐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번 비례대표 부정경선 파문에 대해 진보당 당권파가 ‘독특한 조직문화’ 운운하며 미온적으로 대처하면서 화를 키웠다. 12일 대표직을 사퇴한 이정희 공동대표를 비롯한 당권파는 비례대표 부정경선 의혹을 제기한 당 진상조사위원회의 조사 결과를 “부실하기 짝이 없는 정치공작”이라고 매도한 바 있다. 심지어 일부 간부는 진상조사보고서가 당원들에게 모욕을 줬다면서 국민보다 당원이 우선한다는 해괴한 논리까지 폈다. 이 과정에서 보수 언론은 물론 진보 성향 언론과 진보 지식인, 시민단체, 심지어 당내 최대 조직기반인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까지 당권파 비판에 나섰지만 당권파는 요지부동이었다.
▲ 통합진보당이 비례대표 부정경선 파문에 대해 미온적으로 대처하면서 불길을 더 키운 측면이 있다. 사진은 통합진보당 공동대표단으로 지난 12일 일괄 사퇴했다.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이번 파문을 통해 ‘진보당=종북세력’ 이라는 논란이 재점화된 것도 민주당에겐 큰 부담이다. 이석기 비례대표 당선자와 이의엽 정책위의장 등 대중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던 인물들이 진보당 당권파의 핵심 실세로 거론이 됐고, 이들이 과거 종북단체 사건에 연루돼 처벌받았다는 사실도 새롭게 조명 받았다. 뿐만 아니라 구국학생연합(구학련), 민족민주혁명당(민혁당), 자주민주통일(자민통) 그룹 등 이름만 들어도 긴장하게 만드는 생소한 단체들 이름과 ‘군자산의 약속’ 같은 무협지에나 나올 법한 사실들이 여과 없이 국민들 앞에 까발려졌다.
물론 ‘종북세력이 진보당을 장악하고 야권연대를 통해 대한민국을 장악하려 한다’는 식의 보수진영의 논리가 야권 지지층에게 먹혀들 가능성은 희박하다. 하지만 진보당의 손을 잡고 있는 한 민주당이 대선기간 내내 색깔론 시비에 휘말릴 수밖에 없게 됐다.
가뜩이나 4·11 총선 과정에서 ‘불안한 야당’ 이미지가 패배의 원인이 됐다는 진단이 나오고 있던 터라, 민주당 내에선 “진보당이 야권의 대권 플랜을 망치고 있다”는 격앙된 여론이 확산되고 있다. 충북 지역에 출마했다 낙선한 한 관계자는 “‘김용민 막말’ 파문보다 농촌 지역 선거에 더 부정적인 영향을 줬던 사안은 진보당 비례대표 후보의 ‘제주 해적기지’ 발언 논란이었다”고 전했다.
야권연대의 당위성을 강조하면서 이정희 전 대표에 대해서도 극도의 애정을 표해 온 이해찬 상임고문이 지난 10일 광주 기자간담회에서 진보당을 비판한 것도 이 같은 당내 기류와 무관치 않다. 이 고문은 “진보당에 대해 동지적 애정을 갖고 있지만 이번 선거 과정상의 문제는 상식적으로 용납하기 어렵고 비판받아 마땅하다. 진보진영 전체가 큰 상처를 받은 만큼 진보당은 지지자와 국민들에게 석고대죄해야 한다”고 일갈했다.
민주당 지도부를 비롯한 주류 세력은 여전히 야권연대의 불가피성을 강조하면서 진보당이 하루빨리 내분 사태를 수습하고 쇄신하는 모습을 보여주길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대선 일정을 감안할 때 민주당이 기다려주는 데에도 한계는 있을 수밖에 없다. 진보당이 납득할 만한 해법을 스스로 찾지 않는다면 민주당 내 우군들도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는 셈이다.
박공헌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