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약서 받고 동창 만나고 학교 탐문 ‘데뷔 전 조치’…일단 불거지면 피해자 찾아 사과·읍소·위로금 총동원
현재 상황에서 가장 치명적인 물의는 바로 학교폭력(학폭)이다. 최근 아들 학폭 논란으로 국가수사본부장 임명 하루 만에 낙마한 정순신 변호사 사태로 학폭에 대한 사회적인 민감도가 더 올라갔다. 그리고 사회적 민감도에 가장 빠르게 반응하는 곳이 바로 연예계다.
2022년 5월 2일 데뷔한 쏘스뮤직 소속의 르세라핌과 같은 해 7월 22일에 데뷔한 ADOR(어도어) 소속의 뉴진스는 모두 하이브가 2022년 선보인 차세대 걸그룹이다. 쏘스뮤직과 ADOR은 모두 멀티 레이블 체제 하이브 산하다. 지금은 두 그룹 모두 많은 사랑을 받으며 잘나가지만 최근 분위기는 뉴진스가 더 앞서 있다. 뉴진스의 히트곡 ‘디토(Ditto)’가 멜론에서 ‘10주 연속 1위’라는 대기록까지 세웠다. 2004년 11월 서비스를 시작한 멜론에서 ‘10주 연속 1위’는 뉴진스의 ‘디토’가 최초다.
가요계 관계자들은 뉴진스보다 먼저 데뷔한 르세라핌의 초반 부진이 아쉽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데뷔 이전부터 기대감이 집중됐고 큰 사랑을 받은 르세라핌은 데뷔 직후 김가람 학폭 논란이라는 암초를 만났다. 결국 김가람이 탈퇴하는 선에서 논란이 마무리됐지만 이 과정에서 호된 신고식을 치렀다. 이는 연예계에서 학폭에 대한 포비아가 더 커진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요즘 연예기획사들은 신인을 데뷔시키는 과정에서 학폭 관련 부분에 대한 검증에 엄청난 공을 들이고 있다. 한 명의 연예인이나 하나의 그룹이 데뷔하는 과정에서 연예기획사는 엄청난 투자를 한다. 모든 투자가 그렇듯 성공도 할 수 있고 실패도 할 수 있다. 데뷔한다고 누구나 스타가 되진 못하기 때문이다. 다만 투자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 가운데 하나는 실패 요인 최소화다. 학폭은 가장 확실한 실패 요인이다. 당연히 모든 연예기획사는 연예인 지망생이나 연습생에게 과거 학폭 연루 여부를 미리 확인한다. 요즘에는 아예 학폭 가해와 무관하다는 서약서까지 받는 경우도 흔하다. 그렇지만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는 게 연예계 관계자들의 공통된 이야기다.
한 중견 연예기획사 관계자는 “일정 규모가 되는 연예기획사는 최대한 철저히 검증한 뒤 데뷔를 진행하고 있고 아예 이런 검증을 전담하는 직원이나 팀이 존재하기도 한다”면서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와 소셜미디어(SNS) 등을 확인하는 과정은 기본이고 아예 출신 학교를 찾아가거나 동창 등을 직접 만나서 검증하는 회사들도 있다”고 설명했다.
연예계 데뷔를 위해 학폭 연루 사실을 숨기는 이들도 있지만, 학폭 연루 정도가 가벼워 별 문제될 게 없다고 여기는 이들도 있다. 그렇지만 한번 논란이 되면 아무리 가벼운 사안도 눈덩이처럼 금세 커져버리는 곳이 연예계다.
한 가요관계자는 학폭 검증이 신인 캐스팅 과정과 유사하게 이뤄진다고 설명했다. 중학교나 고등학교 등을 다니며 끼와 재능이 소문난 학생들을 접촉해 오디션을 권유하는 등 연습생을 캐스팅하던 담당자들이 그 경험을 살려 데뷔조에 들어가는 연습생의 출신 학교 등을 찾아 학창 시절 별다른 문제가 없었는지 확인하는 것. 이 관계자는 “출신 지역과 학교 등을 꼼꼼히 살피는데 작은 사안도 빼놓지 않고 파악하려 노력한다”면서 “일부러 어느 학교 출신 누구의 데뷔가 임박했다는 소문을 그 지역사회에 흘린 뒤 반응을 지켜보기도 한다. 오히려 데뷔 전에 어떤 문제가 불거지면 대처가 쉽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요즘에는 해외에서 학교를 다니다 연예인 데뷔를 위해 한국으로 들어오는 경우도 많다. 해외 유학 중일지라도 유학생들 사이에 커뮤니티가 형성돼 있고 그 안에서 학폭 비슷한 문제가 불거지곤 한다. 과거에는 해외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경우 학폭과 무관할 것이라는 인식이 일반적이었지만 몇몇 연예인에게 이런 의혹이 제기돼 논란이 되면서 최근에는 연예기획사들이 이런 부분까지 최대한 검증하려 노력하고 있다.
아무리 철저히 검증을 할지라도 완벽할 순 없다. 정보기관이나 수사기관이 아닌 사기업인 연예기획사의 검증에는 한계가 따른다. 이런 까닭에 데뷔 이후 학폭 논란에 휘말리는 연예인이 거듭 등장하고 있다. 연예기획사 입장에선 그 대응에 고심할 수밖에 없다. 데뷔 이후 학폭 논란이 불거졌다는 의미는 그만큼 유명세가 확보됐다는, 다시 말해 ‘떴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한 중소 연예기획사 대표는 이렇게 털어놨다.
“아무래도 사전 검증이 철저하기 힘든, 좀 작은 회사에서 데뷔한 연예인들이 학폭 논란에 더 많이 휘말리는데 이런 경우 회사가 사운을 걸고 그 신인 연예인을 키운 터라 몹시 힘들어진다. 가장 유효한 방법은 피해자를 찾아가 진심으로 사과하고 읍소하는 것인데, 당사자는 물론이고 당사자 부모와, 당시 함께 가해에 연루한 친구들이 모두 나서 사과하고 회사 차원에서 일정 수준 위로금을 전달하는 게 최고의 방법이다. 그런데 1단계인 당사자 사과부터 쉽지 않은 경우가 많아 회사 관계자들이 난처해하곤 한다.”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 학폭 의혹이 제기됐지만 이내 잠잠해지는 사례는 이처럼 초기에 적극 대처한 경우가 상당수라는 게 연예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연예기획사가 어려움을 겪게 되는 가장 흔한 사례는 피해를 호소하는 이가 분명 있는데 당사자인 연예인이 이를 적극 부인할 때다. 회사 차원에선 피해 호소 자체가 빨리 사라지게 만드는 것이 시급하다. 금전적 목적 등의 가짜 피해자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을지라도 최대한 빨리 해결하려 한다. 문제는 당사자인 연예인이 적극 부인하며 자신을 믿어달라고 호소하는 상황으로 이럴 때 연예기획사는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다.
대다수의 연예계 관계자들은 학폭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이 절실하다는 입장이다. 학폭의 심각성을 사회 전체가 잘 알고 있는 상황에서 학폭 가해자가 대중의 사랑을 받는 연예인이 될 순 없다는 데에도 별다른 이견은 없다. 더 넓게 보면 진정한 문제는 대한민국의 모든 학교가 안고 있는 모순과 한계로 인해 학폭이라는 심각한 문제가 사라지지 않는 현실이다. 결국 정답은 학폭 연예인이 사라지는 게 아닌 학폭 자체가 근절될 수 있도록 사회와 학교가 변하는 것이라고 연예계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전동선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