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집서 끌고 큰집서 밀면…
CJ와 삼성의 거래가 이루어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 업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지난 95년 삼성가에서 독립한 CJ는 그간 삼성가와의 소원한 관계 때문에 되도록 업계에서 부딪히는 일이 없도록 조심해왔기 때문이다. 그간 16개 업체를 인수·합병했지만 삼성과 겹치는 사업은 되도록 피해왔다.
CJ와 삼성 측은 이번 인수합병이 물류업계의 구도에 의해 이루어진 것으로 오너가와는 관계가 없다고 못박았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그간 꾸준히 제기되어오던 CJ GLS-삼성HTH-세덱스(Sedex: 신세계 드림익스프레스)라는 범삼성 통합 물류회사 출범의 신호탄이 아니냐는 해석을 하기도 한다. 세덱스는 신세계백화점이 자사 물류만을 담당하기 위해 만든 회사다.
한편 CJ GLS는 7일 싱가포르의 최대 물류회사인 어코드의 인수계약을 체결했다. 지난해 글로벌 기업 원년을 선포한 CJ가 식품사업에 이어 물류사업을 통해 본격적으로 해외진출의 교두보를 쌓기 시작한 것이다. 최근 들어 급격히 몸집불리기에 나서 주목을 받고 있는 CJ가 일부 우려에도 공격적인 확장경영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CJ GLS의 삼성HTH 인수 시나리오는 이미 2년 전부터 꾸준히 거론되어 왔다. 삼성물산이 자회사인 삼성HTH를 정리하려고 하자 인수 대상으로 CJ GLS가 강력한 후보로 꼽혔던 것. 그러나 오히려 CJ GLS는 삼성HTH 인수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보여 왔다. 오히려 CJ가 물류사업을 정리하고 아웃소싱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소문이 들리기도 했다.
삼성HTH는 삼성이 백화점인 삼성플라자와 인터넷 쇼핑몰인 삼성몰 등을 운영하면서 택배사업 강화를 위해 2000년 인수한 업체다. 그러나 유통사업이 부진을 면치 못하는 데다 택배사업도 삼성 브랜드가 무색하게 업계 5위에 그치면서 2년 전부터 매각설이 나돌기 시작했다.
CJ가 인수 후보로 거론되자 CJ는 택배사업을 접을 수도 있다면서 삼성HTH 인수설을 부인했다. 물류시장에 중소업체들이 난립하면서 시장상황이 악화돼 자체 택배사업보다는 아웃소싱 쪽을 택할 수도 있다는 해명이었다.
CJ가 강력한 인수 후보자가 된 데는 아직도 남아있는 기업문화의 동질성을 우선 꼽는다. 업계 한 관계자는 “삼성HTH가 현대택배나 한진택배에게 인수되는 것은 뭔가 어색하지만 CJ와는 기업문화가 비슷하다 보니 합병설이 계속 나온 것 같다”고 전했다.
이 때문에 신세계백화점의 물류사인 세덱스도 범삼성 물류회사 통합 시나리오에 거론되기도 했다. 세덱스는 신세계백화점만을 담당하는 소규모 업체로 백화점 의류 등을 납품하고 있고 개인간 택배업은 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CJ GLS는 삼성HTH 인수를 범삼성가 통합이라는 시각으로 보지 말 것을 주문하고 있다. CJ 측은 “지난해 글로벌 원년을 선포한 CJ가 해외시장 개척을 위해서는 내수시장을 먼저 튼튼히 해야 할 필요가 있다. 4위 업체인 CJ GLS와 5위인 삼성HTH가 합해 국내 1위로 올라설 계획이다”고 이유를 밝히고 있다.
지난해 택배부문 매출은 CJ GLS가 1560억 원, 삼성HTH가 930억 원으로 이를 합하면 1위 현대택배의 2560억 원에 근접하는 수준이다. 게다가 합병되면 영업소 수가 650여 개로 늘어나 520개인 현대택배를 능가한다. CJ GLS는 합병으로 영업소 수를 줄이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영업소 구역이 겹칠 수는 있지만 역할이 겹치지는 않기 때문이다. 택배업이 워낙 적은 숫자의 영업소와 인력으로 유지되다 보니 기존 거래처별로 할 일이 많다. 이번 합병으로 더 빠르고 정확하게 서비스 품질을 높이겠다”라는 것이 CJ의 계획이다.
CJ는 싱가포르의 어코드 인수를 통해 글로벌 물류기업으로의 토대를 다질 계획도 세우고 있다. 어코드는 아시아와 유럽 12개국에 37개의 지사를 두고 있다. 인수 비용으로는 400억 원이 들 것으로 알려진다. 어코드 인수와 동시에 CJ는 2013년까지 3조 원대의 매출을 올리는 아시아 대표 글로벌 물류 기업으로 성장할 것을 선언했다. 국내외 각 1조 5000억 원의 매출을 통해서 이를 달성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1조 5000억 원대의 국내 매출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CJ가 인수 의사를 밝히고 있는 대한통운 인수가 필수적이다. 현재 매각절차가 남아 있는 대한통운의 지난해 매출은 1조 2000억 원대다. 대한통운은 택배사업 비중이 14%로 나머지는 항만물류 등 대규모 물류를 취급하고 있다. 항만 물류를 하느냐 마느냐에 따라 매출 규모가 큰 차이가 나는 것이다.
이처럼 급격한 몸집 불리기를 위해서는 자금이 필수. CJ는 최근 50%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던 해찬들의 나머지 50% 지분을 인수하고 삼호F&G를 인수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CJ측은 “재원 없이 인수합병을 할 수는 없지 않느냐”며 자금 확보에는 자신이 있다는 입장이다.
삼성HTH가 CJ에게 인수되면서 향후 삼성 계열사의 물류 서비스를 누가 담당할지도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지금까지는 삼성HTH가 맡아왔지만 더 이상 삼성의 계열사가 아닌 이상 여러 업체로 다각화할 수도 있다. 그러나 기존 거래선을 그대로 유지한다면 삼성과 CJ의 협력관계가 유지되는 셈이다. 삼성은 전자·금융업에, CJ는 식품·미디어·물류로 서로 다른 분야에 진출해 있지만 향후 두 그룹이 협력체제를 만들어 갈 수 있는 토대도 되기 때문이다.
향후 CJ가 대한통운 인수전에서 금호아시아나 등 내로라하는 인수후보군을 제치고 승리할 수 있을지 주목되는 대목이다.
우종국 기자 woobea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