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털어 안나오면 세금폭탄, 그게 더 겁나”
▲ 검찰이 5월 24일 오전 영재고철에 대해 압수수색을 하고 있다. 이날 검찰은 컴퓨터 하드디스크 등 관련 물품 두 박스를 압수해 갔다. 유장훈 기자 |
검찰의 오락가락 행보가 노건평 씨의 비자금으로 추정되는 뭉칫돈을 둘러싼 갖가지 억측과 논란만 증폭시키고 있다. 건평 씨의 비리혐의를 수사 중이던 검찰은 5월 18일 “노 씨의 자금관리인으로 추정되는 사람의 계좌에서 노 전 대통령 퇴임 3~4년 전부터 퇴임 직후인 2008년 5월까지 수백억 원의 뭉칫돈이 오간 사실이 발견돼 확인 작업을 벌이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뭉칫돈 소식은 이날 검색어 1위에 오르며 순식간에 노 씨와 친노세력의 비자금 의혹으로까지 확대됐다. 하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계좌 주인 박 씨가 회사 계좌를 언론에 공개하며 적극 해명에 나섰기 때문이다.
박 씨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 “노건평 씨와 돈거래를 한 적이 있다면 내 목을 베겠다”는 극단적인 표현으로 의혹을 전면 부인하고 나섰다. 그러자 검찰은 5월 21일 “뭉칫돈과 박 씨가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 (뭉칫돈) 규명에 상당 시간이 걸릴 것이다”며 한 발 물러섰다. 하지만 그로부터 사흘 뒤 검찰은 박 씨의 집과 회사에 대해 전격적으로 압수수색을 단행하면서 뭉칫돈 수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 박영재 씨 동생 석재 씨 명의의 영재고철 농협통장 내역으로 검찰의 발표와 달리 잔액은 800만 원뿐이다. |
하지만 ‘뭉칫돈과 박 씨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는 검찰의 입장 발표로 의혹이 해소된 것으로 여겼던 박 씨 측은 난데없는 검찰의 압수수색에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5월 24일 박 씨의 아들 정호 씨(32)와의 전화통화를 통해 검찰이 제기한 각종 의혹들에 대한 입장 및 심경을 들어봤다.
―검찰이 압수수색을 통해 회수해 간 자료들은 어떤 것이었나.
▲검찰 두 개 팀이 영재고철과 동부스틸 등 회사 두 곳과 집을 압수수색했다. 회사 통장(농협)과 장부, 각종 서류 등을 가져갔다.
―뭉칫돈이 발견됐다던 영재고철과 관련된 통장은 몇 개나 되나.
▲작은 아버지(석재 씨) 명의의 회사 통장과 2008년 세법이 개정되기 전 회사 통장으로 사용하던 작은 아버지 개인명의의 통장 두 개가 있다.
―검찰에서 주목하고 있는 것은 돈의 입금 시기다. 노 전 대통령 재임기간인 지난 2005년부터 2008년 5월까지 통장거래 횟수가 급증한 이유는.
▲1997년 아버지(영재 씨)가 파지 등을 팔며 기반을 잡아 1999년 영재고철을 인수했다. 회사가 잘 운영될 때는 거래처가 160곳이나 될 정도로 상당한 이윤을 남겼다. 하루에 1톤 트럭이 40대씩 들어왔다. 한 트럭당 50만 원씩이었으니까 하루에 2000만 원씩 현금으로 거래가 됐다. 받은 현금은 고스란히 통장에 입금하는데 현금 입출금은 거래명이 나오지 않는다. 누가 자기 통장에 자기가 돈 입금하며 거래명을 적겠는가. 그걸 가지고 뭉칫돈이라고 하다니 말이 안 된다.
―노 전 대통령 재임 기간에 대우조선·쌍용자동차 고철을 수주한 것을 두고 노건평 씨로부터 특혜를 받았을 것이란 의혹이 제기된 바 있는데.
▲대우조선 고철은 우리가 직접 받은 게 아니다. 대우조선의 하청업체를 운영하는 사장이 아버지의 친구다. 그분으로부터 소개 받아 고철을 가져 온 것이다. 또 쌍용자동차는 입찰을 통해 공식적으로 고철을 가져왔다. 특혜가 있을 수 없다. 오히려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에서 (이권 개입을 의식해) 대우조선 측에 우리 회사와의 거래를 중단 시키려고 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이 부분은 지난 검찰 조사에서 이미 다 확인된 사안이다.
―잘 운영되던 회사가 갑자기 노 전 대통령 퇴임 후 어려워지고 통장 거래가 급감한 것에 대해서도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데.
▲노 전 대통령 퇴임 후 회사가 어려워졌다는 소리도 이쪽 실정을 몰라서 하는 소리다. 당시 회사가 어려워지기 시작한 건 한국철강이 고철을 안 받아 들이면서부터다. 고철은 대기업에서 사 주지 않으면 말 그대로 고철일 뿐이다. 독자적으로 고철을 팔려면 압축을 해야 하는데 압축기계가 40억 원씩 한다. 회사 재정상 구매가 어려웠다. 또 아버지의 무리한 투자도 회사를 어렵게 한 부분이 있다. 회사 운영이 잘 되자 아버지가 여기저기 투자를 많이 했다. 2006년 은행 대출을 받아 선박용 철판절단업체인 ‘금동’을 인수하고 ‘오리농장’도 운영했다. 지금은 은행 이자를 내기 위해 처분한 상태다.
―2005년 10월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의 돈 6억 원이 영재고철 계좌로 입금된 이유는.
▲2005년 한일합섬 터 철거공사 입찰이 진행됐다. 우리도 철거를 통해 나오는 고철을 확보하기 위해 입찰에 참여했다. 입찰 금액이 10억 원 정도 됐는데 당시 돈이 없어 부산의 아버지 지인으로부터 4억 원, 박 전 회장으로부터 6억 원을 빌렸다. 10억 원은 나중에 모두 갚았다. 이 부분은 지난 2008년에 창원지검이 노건평 씨와 박 전 회장 수사 도중 관련 자금에 대해 수사를 했지만 무혐의 처분 받았다. 당시 검찰이 아무리 수사해도 아무것도 나오지 않자 (국세청)세무조사를 통해 ‘탈세’로 9억 원의 추징금을 물렸다. 하지만 그마저도 법원에서 승소했다.
―회사 계좌를 언론에 공개하며 적극적인 해명에 나선 이유는.
▲압수수색 나온 조사관이 동료에게 ‘더 조사할게 있나’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명백히 정치적으로 이용당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미 한 차례(2008년) 검찰 조사로 무혐의가 난 사안이기에 이번에도 조용히 마무리가 될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검찰이 뭉칫돈·비자금·자금관리인 운운하면서 언론플레이를 하기에 참을 수가 없었다.
검찰이 조만간 소환 조사를 한다고 하는데 이번에는 또 무슨 혐의를 적용해 세금을 얼마나 때릴지 모르겠다. 검찰조사보다 무서운 게 세무조사다.
이훈철 기자 boazh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