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짐 안 싸길 정말 잘했지…”
▲ 김시진 넥센 감독이 연승을 달리고 있는 5월 24일 잠실야구장에서 경기 전 취재진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박은숙 기자 |
▲ 박은숙 기자 |
김 감독은 “지금껏 오십 평생을 살면서 단 한번도 꼴찌를 경험한 적이 없다”며 “구단과 팬들께 미안해 얼굴을 들고 다니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사실이었다. 김 감독은 야구공을 쥔 이래, 엘리트 코스만을 밟으며 항상 ‘최고’라는 소릴 들었다. 경북지역의 야구명문 대구상고 시절엔 초고교급 투수로, 명문 야구대학인 한양대 재학 중엔 국가대표 에이스로 이름을 날렸다. 1983년 삼성에 입단할 땐 당시로선 최고 계약금인 3000만 원을 받았다. 프로 시절 성적도 좋았다.
입단 첫 해 17승12패 평균자책 2.55를 기록하며 ‘역시 김시진’이란 찬사를 들었고, 이후 6시즌 연속 두 자릿수 승수를 거두며 명실공히 한국 프로야구 최고의 투수로 우뚝 섰다. 1987년 그가 한국 프로야구 사상 최초로 100승 투수가 된 건 그래서 놀랄 일이 아니었다.
김시진은 통산 124승73패 팽균자책 3.12를 기록하며 화려하게 선수생활을 마감했다. 코치가 되고서도 그는 엘리트 지도자의 길을 걸었다. 현대 시절 그는 정민태, 위재영, 임선동, 김수경, 조용준, 장원삼 등 뛰어난 투수들을 다수 배출했다. 특히 김수경, 조용준, 이동학, 오재영은 당시 김 코치의 조련을 받고 신인왕에 올랐다.
최고의 엘리트 코스를 밟은 만큼 지난해 꼴찌는 김 감독에겐 충격 그 이상이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김 감독은 오랫동안 괴로워하는 대신 새로운 돌파구를 찾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김 감독은 “어떻게 하면 팀이 강팀이 될 수 있는지 하루에도 열두 번씩 고민한다”며 “꼴찌 충격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오직 좋은 성적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당시 김 감독은 대화 말미에 “2013년 큰일을 내기 위해선 올 시즌 성적이 매우 중요하다”며 “혼신의 힘을 다해 2012년을 넥센의 해로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전 해 꼴찌팀 감독이 말하는 ‘큰일’의 정체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김 감독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한국시리즈 우승”이라고 대답했다.
▲ 2004년 현대 투수코치 시절. 당시에도 그는 엘리트 지도자의 길을 걸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2011년 넥센의 팀 타율은 2할4푼5리로 리그 최악의 물방망이 팀이었다. 팀 내 3할 타자가 전무했고, 20홈런 이상도 외국인 타자 코리 알드리지가 유일했다. 그러나 코리의 타율은 2할3푼7리에 지나지 않았다. 4번 타자로 내세웠던 강정호는 전 해 광저우 아시아경기대회 출전 후유증과 4번 타자의 중압감을 이기지 못한 채 평범한 타자로 전락했다. 톱타자로 기용했던 장기영은 출루율이 2할7푼에 그치며 팀 공격을 이끄는 데 실패했다.
팀 평균자책도 4.36으로 한화 다음으로 좋지 않았다. 하지만, 한화엔 에이스라도 있었다. 류현진이었다. 그러나 넥센은 10승 이상을 거둔 선발투수가 단 한 명도 없었다. 외국인 투수 브랜든 나이트도 고작 7승밖에 거두지 못했다. 손승락, 송신영 등 불펜투수들이 제 역할을 했지만, 지난해 넥센이 7회까지 앞선 경기는 133경기 가운데 43경기밖에 되지 않았다. 원체 선발진이 경기 초반 무너지다보니 좋은 불펜투수들이 등판할 기회가 적었다는 뜻이다.
문제는 과연 빈약한 재정의 넥센이 전력 강화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창단 초기 주요 선수를 팔아 운영비를 조달했던 넥센에게 FA(자유계약선수)와 고액 외국인 선수 영입은 그림의 떡처럼 보였다.
야구관계자들은 “2012시즌도 넥센이 꼴찌에 머물 것”이라며 상위권 예상구도에서 넥센의 이름을 아예 뺐다. 그러나 단 한 사람. 넥센 이장석 사장은 그 같은 예상에 동의하지 않았다.
▲ 어렵게 영입한 김병현(왼쪽)과 이택근은 넥센 돌풍을 이끄는 주역이 됐다. 사진제공=넥센 히어로즈 |
그러나 이 사장은 모두가 ‘NO’를 외칠 때 혼자 ‘YES’라고 생각했다. 이택근의 가치가 50억 원을 상회한다고 믿은 까닭이다. 이유가 뭘까. 이 사장은 당시를 회상하며 “LG 시절의 이택근은 우리가 아는 이택근이 아니었다”며 “LG 팀 분위기가 이택근과는 잘 맞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다른 팀, 그것도 친정으로 돌아와 편안한 분위기에서 뛰면 과거의 실력이 나올 것이란 판단이 섰다는 뜻이다.
“이택근을 영입하면 박병호-이택근-강정호로 이어지는 강력한 중심타선을 구축하리라 내다봤다. 이택근의 리더십에도 주목했다. 이택근이라면 선참과 신참 사이를 잇고, 젊은 선수들을 이끄는 구심점 역할을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이 사장은 즉시 이택근과 만났고, 그가 요구한 50억 원을 흔쾌히 들어줬다. FA협상에서 난항을 예상하던 이택근은 이 사장의 ‘OK’사인에 당황했다. 되레 너무 큰돈을 요구한 게 아닌가 싶어 미안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이택근은 “네가 우리 팀에 꼭 필요하다”는 이 사장의 설득에 크게 감동받았다.
“몸값을 해야 한다는 부담감보다 날 이토록 원하는 팀을 위해 뭔가 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강해졌다. 그래서 겨우내 혹독하게 몸을 만들었고, 스프링캠프에서도 한시도 쉬지 않았다.” 이택근의 회상이다.
이 사장은 이택근 영입으로 타선보강에 나선 것과 동시에 김병현 영입에도 노력을 기울였다. 한국 프로야구로 돌아올 시 김병현은 넥센에서 뛰어야 했다. 그러나 김병현은 “고향팀 KIA에서 뛰고 싶다”며 넥센행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2010년 이 사장은 김병현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영입 의사를 타진했다. 하지만 그때도 김병현은 “다시 전화를 드리겠습니다”하고서 연락을 주지 않았다. 이 사장의 전화 역시 받지 않았다. 당시 이 사장은 불쾌함을 느낄 법했지만, 되레 김병현 영입 의지를 불태웠다. 결국 지난해 연말 넥센 구단 관계자의 주선으로 김병현과 만난 이 사장은 “우리 팀에 오라”며 구애의 손길을 내밀었다.
“김병현은 KIA에 가고 싶은 게 아니라 넥센에 대한 소문 때문에 입단을 주저한 것이라고 밝혔다. 창단 초기 주요 선수들을 현금 트레이드한 게 김병현 입장에선 ‘못 믿을 구단’으로 비춰졌던 모양이다. 김병현에게 구단의 재정 상황을 소상히 설명하고, 앞으로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게다가 우리 팀이 강해지려면 당신이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병현의 요구사항도 흔쾌히 들어줬다.”
이 사장의 진지한 태도에 마음이 흔들린 김병현은 오랜 외국생활을 마감하고, 결국 넥센 유니폼을 입었다.
결국 두 선수의 영입으로 넥센은 대성공을 거뒀다. 이택근은 타선의 중심으로, 김병현은 투수진의 핵으로 등장하며 넥센 돌풍을 이끄는 주역이 됐다.
#변해야 산다!
2009년 어려운 팀 사정에도 넥센은 6위까지 올랐다. 이때의 지도력을 인정받은 김 감독은 모 구단으로부터 감독 제의를 받기도 했다. 인기구단이었기에 김 감독의 귀는 솔깃했다. 하지만 김 감독은 정중히 거절했다. 당시 내세운 거절 사유는 “히어로즈 선수들을 버리고, 혼자 팀을 떠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고, 김 감독을 만났을 때 그는 “전혀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만약 그 팀으로 떠났으면 큰돈과 3년의 계약기간을 보장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어려울 때 함께한 선수들을 버리고 떠났다’는 죄책감에 평생 시달렸을 게 자명하다. 그때나 지금이나 내가 할 일은 우리팀 선수들과 함께 과거 현대의 영광을 재현하는 것이다.”
잦은 현금 트레이드와 팀을 둘러싼 루머에도 김 감독은 의연했다. 성적 하락의 책임을 구단 탓으로 돌리지도 않았다. 오히려 어려운 형편에도 강팀을 만들지 못한 자신의 능력 부족을 반성했다. 구단도 김 감독에게 고마움을 나타내며 계약기간이 1년이나 남았음에도 새롭게 3년 계약을 제시했다.
지난해 연말 구단이 이택근과 김병현을 영입하자 김 감독은 “드디어 기회가 왔다”는 말로 대반격을 예고했다. 김 감독은 수석코치를 교체하고, 박흥식 타격코치를 영입하며 코칭스태프 재정비에 나섰다. 박 코치는 선수 특성에 맞는 타격법과 인간적인 지도와 좋은 평을 들은 이였다. 하지만 삼성 코치 재직 시엔 역설적이게도 “선수들과 너무 친하다”는 이유로 재계약에 실패했다. 김 감독은 선수들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아는 박 코치가 넥센에 적합하다고 판단했고, 박 코치는 감독의 기대대로 빠르게 선수들과 동화하며 신임을 얻었다.
김 감독은 트레이드 마크인 ‘형님 리더십’도 포기했다. 전 해까지 김 감독은 “현대 시절 선수들을 우대한다”며 “1군 선수들만 기용하고, 검증되지 않은 2군 선수들은 잘 기용하지 않는다”는 평을 들었다. 그러나 올 시즌엔 2군 선수들에게 눈을 돌렸다. 1번 타자감이 없자, 2군에서 은퇴를 고려하던 정수성을 전격 1군으로 승격했다. LG에서 방출돼 신고선수로 입단한 서건창도 과감하게 주전 2루수로 기용했다.
투수진에서도 트레이드를 통해 넥센 유니폼을 입은 김상수, 박성훈 등을 기용했고, 애제자 김수경은 2군으로 내려 보냈다. ‘따뜻한 리더십’에서 ‘냉철한 지도자’로 돌아선 김 감독은 투수진 운용에서도 이전과는 다른 방법을 취했다. 바로 원포인트 릴리프 시스템에서 벗어난 것이다.
지난해까지 김 감독은 좌타자가 등장하면 좌투수를 내보냈다. 좌타자 이후 우타자가 타석에 서면 바로 우투수를 내보냈다. 그러나 효과는 미미했다. ‘투수력만 낭비할 뿐’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올 시즌 김 감독은 이러한 관행에서 벗어나 구원투수에게 한 이닝을 맡기는 ‘책임 이닝’ 시스템을 도입했다. 대표적인 예가 좌완 불펜요원 오재영이다.
지난해 오재영은 64경기에 등판했다. 그러나 투구이닝은 43이닝에 불과했다. 원포인트 릴리프로 자주 등판한 까닭이었다. 그러나 올 시즌은 15경기에 등판해 15이닝을 소화했다. 등판하면 최소 한 이닝을 책임지는 것이다.
‘책임 이닝’ 시스템은 불펜요원들의 체력 감소를 막고, 자신감을 높이는 데 큰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지난해까지 ‘불놀이’에 집중했던 넥센 불펜진은 올 시즌 평균자책 3.57로 8개 구단 가운데 가장 강력한 뒷문을 갖추고 있다.
김 감독은 “아직 시즌이 많이 남아 있다. 지금 1위라고 시즌 끝까지 이 순위가 유지될 것으로 보지 않는다”며 “끊임없이 변화하며 팀에 맞는 최선책을 고민하겠다”고 말했다. 김 감독의 전술 변화의 최대 조언자는 이장석 사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동희 스포츠춘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