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차리는 밥상에도 ‘숟가락 싸움’
▲ 왼쪽부터 CJ, 농심, 오뚜기의 즉석밥. | ||
식생활의 변화로 쌀 소비가 줄어드는 와중에도 밥 가공식품의 판매는 오히려 늘고 있는 것. CJ(주)가 1996년 12월 즉석밥 제품인 ‘햇반’을 출시했을 당시 연매출액은 70억 원. 그러나 지난해 농심과 오뚜기의 제품까지 가세해 총 1000억 원대의 시장으로 커졌다.
업계에서는 앞으로 시장이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농심은 “2006년에는 경기 회복으로 즉석밥 시장이 더욱 활성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226억 원의 매출을 올렸으나 올해에는 300억 원의 매출목표를 잡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업체들은 기존 즉석밥의 종류와 용량을 달리한 신제품을 잇따라 출시하면서 시장 선점을 노리고 있다. 현재 CJ, 농심, 오뚜기 3사가 참여하고 있는 즉석밥 시장에 동원F&B도 가세할 예정이어서 밥 시장은 더욱 가열될 것으로 보인다.
즉석밥 시장을 처음 연 것은 CJ. 블루오션을 개척한 CJ는 당시 시장 개척을 위해 대대적인 광고, 판촉, 유통 프로모션을 진행했다. 세계 최초로 포장된 밥인 ‘햇반’을 개발했지만 ‘밥을 사먹는다는 것’에 대한 한국인의 거부감을 줄이는 것이 관건이었다. 사먹는 김치가 초반에 시장에서 고생했던 이유와 똑같은 어려움을 겪은 것. 경쟁사들이 CJ가 제품을 출시한 지 6년이 지나서야 유사 제품을 내놓을 정도로 시장에 대한 확신을 갖지 못했던 이유도 바로 이때문이었다.
햇반은 출시 이후 1997년 600만 개, 1998년 800만 개, 1999년 1000만 개를 판매하며 꾸준한 성장을 지속했다. 2006년에는 4500만 개 판매량을 예상하고 있다.
즉석밥 시장의 경쟁구도는 국내 최대 라면업체인 농심이 2002년 5월 즉석밥 시장에 뛰어들면서 열렸다. CJ의 햇반 출시 6년 후 시장 형성에 대한 확신이 들자 뒤늦게 뛰어든 것이다. 농심에선 라면, 스낵 등 한국인의 입맛을 가장 잘 알고 있기에 차세대 전략상품으로 밥사업을 선택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후발주자인 농심은 백미밥 위주였던 즉석밥 시장에 잡곡밥, 찹쌀밥을 출시해 제품 다양화로 승부를 걸었다. 농심이 2003년 3월 발아현미밥을 출시하자, CJ는 발아현미밥, 오곡밥, 흑미밥을 출시해 맞불을 놓았다.
2004년 9월에는 기존 210g보다 용량을 줄인 130g 소용량 ‘농심 라밥’을 내놓았다. 라밥의 경우 ‘라면에 말아먹는’ 콘셉트로 상품명을 만들어 인기를 끌었다. 이에 CJ는 지난해 12월 130g 소용량 제품 외에 300g 대용량 제품도 함께 출시하면서 선택의 폭을 넓혔다.
2004년 8월 농심이 개발한 찹쌀 50%를 섞은 ‘농심 찰밥’은 아직까지 경쟁 제품이 없다. 농심은 즉석밥 출시와 동시에 자사의 라면 제품을 사은품으로 함께 구성해 할인점에서 파는 등 판촉 행사를 벌였다. 라면업계의 선두임을 활용한 마케팅으로 현재 즉석밥 시장의 20%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2004년 11월 뒤늦게 즉석밥 시장에 출시한 오뚜기는 ‘맛있는 오뚜기밥’, ‘맛있는 오뚜기큰밥’, ‘맛있는 오뚜기 발아현미밥’, ‘맛있는 오뚜기 발아흑미밥’ 4종을 동시에 출시했다. 이미 형성되어 있는 시장에서 가장 잘 나가는 제품군으로 라인업을 짠 것이다.
대신 즉석밥 외에도 소용량 포장의 생쌀을 상품으로 개발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 있다. ‘씻어나온 오뚜기 맛있는 쌀’은 수퍼지프라이스(Super Jiff Rice) 공법으로 씻어 건조해 밥을 지을 때 씻을 필요 없이 물만 부으면 되도록 가공한 쌀이라고 한다. 오뚜기는 즉석밥 시리즈와 가공쌀 제품을 혼합한 구성으로 할인점 등에서 판촉 행사를 벌였다. 오뚜기가 점유율 10%를 차지하는 동안 80%의 점유율을 차지하던 CJ의 제품은 현재 70%대로 낮아졌다. 오뚜기는 최근 3개월간 점유율이 15%에 육박했다며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이들 3사는 각기 할인점 식품매장의 강자라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라면에 압도적인 우위를 보이고 있는 농심이 라면 끼워팔기 필살기를 던지며 점유율을 늘리자 끈끈한 영업력의 오뚜기는 생쌀 끼워팔기로 승부수를 던지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선발주자인 CJ는 자사의 점유율이 다소 하락하고 있지만 되도록 판촉행사를 자제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햇반’의 브랜드 인지도가 있는 한 점유율이 다소 줄어들더라도 시장이 커지고 있기 때문에 품질로 승부하면 매출은 더욱 늘어날 것이라는 얘기다.
즉석밥 제품은 품질의 차별성이 작기 때문에 브랜드 인지도가 큰 역할을 한다. 3사가 밝히는 가장 좋은 밥맛을 내기 위한 기본적인 공정은 비슷하다. 농협으로부터 구매한 국산 햅쌀을 도정하지 않은 채 3일간 저온에 보관한 후 쌀을 찧자마자 즉시 밥을 짓는 방식이다. 다만 쌀을 씻고 건조시키는 공정에서 차별화를 꾀하고 있다.
CJ의 ‘햇반’은 브랜드 인지율이 99% 수준에 달할 정도로 즉석밥의 대명사로 지칭되고 있다. ‘새로 지은 쌀로 만든 밥’이라는 뜻의 ‘햅반’을 읽기 편하게 고친 것이라고 한다. 후발주자인 농심과 오뚜기는 이렇다할 브랜드를 개발하지 못한 채 ‘따끈따끈 햅쌀밥’, ‘맛있는 오뚜기밥’ 등으로 상품명을 지었다.
한편 동원F&B도 올해 즉석밥 제품을 출시할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뒤늦게 뛰어드는 만큼 제품 차별화와 시장 전망을 놓고 고심하는 모습이다. 동원측은 즉석밥 출시에 대한 질문에 대해 “아직 상품개발이 진행중이다. 출시 시기는 정해지지 않았다. 올해 안으로 출시할 수 있을지도 불투명하다”며 구체적인 언급을 하지 않았다.
업계에서는 즉석밥 시장이 점차 확대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농심은 “맞벌이 부부, 독신자 가정 증가로 1∼2인분 소량의 밥짓기 대신 즉석밥을 이용하는 가정이 늘어나고 있다. 또 바쁘게 살아가는 젊은 세대가 늘어나고 주5일 근무제가 도입되면서 레저생활이 증가하고 있어 즉석밥에 대한 수요가 꾸준히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긍정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CJ는 “햇반 출시 이후 지금까지 2억 4000만 개가 판매되었다. 우리나라 인구가 4600만 명인 것을 감안하면 국민 1인당 평균 5.4개의 햇반을 먹은 셈이다”며 햇반의 지속적인 성공을 자신했다.
우종국 기자 woobea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