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국민요정이 ‘돈연아’ 비난 받을까
▲ 안티 없이 전 국민적인 사랑을 받아온 김연아가 최근 비난의 화살을 맞고 있다. 많은 광고 출연이 지나치게 상업적으로 보인다는 이유에서다. 사진은 삼성 신제품 발표회에 참석한 김연아. 일요신문DB |
#박지성은 되고 김연아는?
지난해까지 김연아는 국민적 스타였다. 그를 비판하는 기사나 칼럼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물론 그의 기사에 악성 댓글이 달렸지만, 이때만 해도 유명인에 대한 시샘과 이유 없는 질투 정도로 인식됐다.
그러던 5월 7일 한국중독정신의학회에서 ‘국민 스포츠 스타가 나서서 술 권하는 사회’라는 이름의 성명서가 발표되며 상황이 급변했다. 당시 중독정신의학회는 ‘사회·경제·문화적으로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김연아 선수가 이제 갓 성인이 돼 맥주 광고에 출연한 것은 우리 사회의 음주문화를 부추기고 특히 감수성이 예민한 청소년의 음주를 조장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김연아와 같이 청소년들의 행동에 큰 영향을 주는 유명인의 경우 주류 광고 출연을 규제할 필요가 있으며 이에 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미국은 연방 알코올 음료 관리법을 토대로 유명 스포츠 스타의 주류광고 출연을 금지한다. 영국도 젊은이의 인기를 끄는 유명인의 주류광고는 금지시키고 있다. 프랑스, 독일 등의 유럽 국가에선 아예 주류광고 자체를 금한다.
학회의 성명서에 적시된 서구적 입장에서 보면 김연아의 맥주광고 출연은 청소년에 악영향을 주는 일이 분명하다. 하지만, 김연아의 매니지먼트사인 올댓스포츠의 입장은 다르다. 올댓스포츠의 관계자는 “미국과 유럽 몇몇 나라에서 유명인의 주류광고 출연을 금지하고 있지만, 국내엔 그런 규제가 없다”고 말했다. 덧붙여 이 관계자는 “영국 프리미어리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뛰는 박지성 선수가 맥주광고에 출연한 적이 있다”고 강조했다. 올댓스포츠는 학회의 성명서가 발표됐을 때 “박지성은 되고 김연아는 안 되는 이유가 뭐냐”고 하소연했다는 후문이다.
일본은 스포츠 스타가 맥주광고의 단골 모델이다. 기린맥주는 야구스타 스즈키 이치로, 아사히맥주는 마쓰자카 다이쓰케가 메인 모델이다. 일본 야구장엔 두 선수가 캔 맥주를 든 광고 사진이 여기저기 붙어 있다.
일단 올댓스포츠는 김연아의 맥주광고가 비난의 대상이 될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지만, 학계의 조언을 겸허한 자세로 받아들이겠다는 반응이다. 이번 논란이 유명인의 주류광고 출연에 관한 사회적 담론 형성에 큰 기여를 했다는 점에서 김연아의 맥주광고는 의도하지 않았으나, 순영향을 끼친 면이 없지 않다. 최근 정부는 학회와 몇몇 교수의 지적을 받아들여 유명인의 주류광고 출연을 어느 선까지 용인해야 하는지 고민을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 김연아가 출연하는 각종 CF들. 출연 CF들로 꾸며진 ‘김연아의 하루’라는 유머가 돌 정도로 다양한 제품의 모델로 나섰다. ‘김연아만 보이고 제품은 안 보인다’는 말이 돌기도 했다. |
사실 김연아의 광고가 문제가 된 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비난의 이유는 두 가지였다. 먼저 광고출연이 너무 잦다는 것이었다.
<일간스포츠>의 조사에 따르면 김연아는 2010년 6월부터 2011년 5월까지 1년간 10편의 광고에 출연했다. 인기 모델답게 광고사도 다양했다. 태블릿PC, 에어컨, 우유, 섬유 유연제, 스포츠의류 등 TV만 켜면 김연아가 나온다는 소릴 들을 정도였다.
올림픽 금메달을 따기 전후엔 항공사, 생수, 생리대 광고 등에 출연했던 김연아는 올해에도 여전히 인기 모델로 활약 중이다. 그렇다면 김연아의 많은 광고 출연이 꼭 잘못된 것일까. 사실 <일간스포츠>의 조사에서 여자 광고 최대 출연 1, 2위는 김연아가 아니었다. 걸그룹 소녀시대가 1위, 탤런트 이민정이 2위, 김연아는 3위였다.
그러나 소녀시대와 이민정에게 광고 출연을 문제 삼는 이들은 거의 없었다. 유명인의 광고 출연 자체가 비난받을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광고계에서 잔뼈가 굵은 모 감독은 “김연아 광고 효과는 해가 갈수록 줄고 있다”고 털어놨다. “김연아가 출연한 광고엔 김연아만 있고, 제품은 없다”는 게 이유였다. “길을 가는 사람을 잡고 물어봐라. ‘김연아가 나온 광고가 무엇인지 기억하느냐’고. 대부분 기억날 듯하면서도 특정 제품 이름을 대지 못할 거다. 광고에서 차지하는 김연아의 비중이 크다보니 상대적으로 제품이 가려지는 까닭이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김연아가 광고계의 블루칩인 이유는 광고주들이 김연아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김연아가 왜 자꾸 광고에 나오느냐고 비판하려면 광고주한테 이유를 묻는 게 낫다.”
사실 업계에선 김연아 안티가 꽤 많다. 김연아가 동일 제품의 복수 브랜드 광고에 출연한 까닭이다. 대표적인 예가 생수 광고다. 2009년까지 김연아는 롯데 아이시스 생수 모델로 활동했다. 그러다 올해부터 해태음료의 강원평창수 모델이 됐다. 생수 업체 관계자는 “아이시스가 좋다고 실컷 광고하다가 이젠 강원평창수가 최고라고 하면 소비자가 얼마나 혼란스럽겠느냐”며 “돈도 좋지만, 최소한 직업적 윤리의식은 갖춰야 하는 게 아니냐”고 김연아를 비판했다. 이외에도 김연아는 미국 스포츠업체 나이키 모델로 활동하다가 현재는 국산 스포츠업체 프로스펙스 광고 모델로 나서고 있다. 이 역시 ‘광고윤리의식 부재’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그러나 올댓스포츠는 “광고 윤리의식 부재는 사실과 다르다”고 항변했다. “아이시스 광고 이후 3년간 다른 생수 광고 모델로 나서지 않았다. 나이키도 비슷하다. 동일 제품의 경우 적절한 시간 차를 뒀다. 만약 광고 윤리의식이 부재했다면, 아이시스와 나이키 광고계약이 종료한 이후, 바로 다른 브랜드와 계약했을 것이다. 이 점은 해당 업체들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으며, 이와 관련해 업체로부터 어떤 항의도 받은 바 없다.”
여기서 살펴볼 게 있다. 왜 유독 김연아의 광고출연만 문제가 되느냐는 것이다. 모 대학 교수는 “김연아가 본업은 도외시한 채 광고 수입에만 열을 내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덧붙여 “현역생활 지속 여부를 밝히지 않는 것도 혹여 은퇴 발표 시 광고가 끊길 가능성이 있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 김연아 전 동계올림픽 유치위 홍보대사(오른쪽)와 나승연 전 대변인이 각각 국민훈장 모란장과 체육훈장 맹호장을 목에 걸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
김연아의 본업은 피겨스케이터다. 2010년 동계올림픽 때까지 본업에 충실했다. 거듭된 광고 출연에도 비판이 적었던 건 김연아가 누구보다 본업에 충실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해 중반부터 김연아는 각종 대회에 출전하지 않았다. 대신 TV 프로그램과 아이스쇼 그리고 광고에 출연하며 존재감을 유지했다. 휴식 기간이 길어지며 일부에선 “김연아가 은퇴를 준비하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흘러 나왔다. 그때마다 김연아는 은퇴설을 부인하면서 “적절한 시기에 입장을 발표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일부 누리꾼은 김연아가 “광고 출연을 위해 억지로 현역생활을 유지한다”는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다. 실제로 현역과 전역 선수의 대중적 관심도는 큰 차이가 있다. 현역 때 선풍적 인기를 모았던 선수도 은퇴하면 곧바로 찬밥 신세가 된다. 그러니까 이를 잘 아는 김연아가 현역 프리미엄을 계속 유지하려 한다는 뜻이다. 과연 그럴까.
올댓스포츠는 “대단히 잘못된 시각”이라고 반박했다. “김연아의 현역 생활 지속 여부와 광고 출연은 별개 사안이다. 어차피 광고 출연은 광고주가 결정하는 것이다. 대회에 출전하지 않는 것도 이미 예전에 발표한 바 있다. 아직 소치 올림픽이 남아 있고, 김연아는 젊다. 언제든 다시 빙판 위에서 새로운 도전을 펼칠 수 있다.”
김연아는 밴쿠버 올림픽 이후, ‘세계피겨선수권대회에 출전하지 마라’는 조언을 들었다. 혹여 좋지 않은 성적을 거두면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의 체면이 깎이고, 금메달 자체가 폄훼될 수 있다는 게 이유였다. 하지만, 김연아는 지난해 4월 러시아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했다. 결과는 2위였다.
따지고 보면 김연아가 본업에 충실하지 않는다는 비난을 받지만, 휴식기간은 1년 남짓이었다. 거기다 세계선수권대회 이후 김연아는 강원도 평창에 동계올림픽을 유치하려고 세계를 누볐다. 금메달리스트들이 국제 대회 유치 로비스트로 활동하는 게 의무처럼 받아들여지는 서구적 관점에서 본다면 김연아는 자신의 본업을 충실히 수행한 것인지 모른다.
올댓스포츠는 “올여름 김연아 스스로 향후 거취를 정확히 발표할 것”이라며 “조금만 기다리면 모두가 듣고 싶어 하는 답이 나올 것”이라고 했다.
대구한의대 구강본 교수는 “많은 선수가 부상, 의욕 감퇴, 개인적 사정 등으로 현역 생활을 중단했다가도 어느새 재기에 성공해 다시 현장으로 돌아온 경우가 한둘이 아니다”라며 “현역선수에게 은퇴 여부를 대답하라고 재촉하는 건 다소 폭력적인 요구일 수 있다”고 조언했다.
#교생 실습 자격이 없다?
김연아의 광고 출연, 현역 지속여부와 함께 최근엔 그의 교생 실습이 뜨거운 감자였다. 고려대 사범대 체육교육과 4학년에 재학 중인 김연아는 5월 8일부터 서울 역삼동에 있는 진선여고에서 4주간의 교생 실습을 시작했다. 첫날 김연아는 언론을 상대로 공개수업을 진행했다. 문제는 이때부터 시작됐다.
5월 22일 CBS라디오 <김미화의 여러분>에 출연한 연세대 심리학과 황상민 교수는 “김연아의 교생 실습은 쇼”라고 주장했다. 황 교수는 “김연아가 언제부터 대학을 다녔나? 김 선수가 바쁜 것은 사실이지만 교생 실습을 성실히 간 것은 아니다. 교생 실습은 한번 쇼를 했다고 표현하는 것이 정확한 얘기”라고 비꼬았다. 한술 더 떠 황 교수는 “김연아가 국가적인 일이나 개인적인 일로 외국에서 주로 훈련받고 외국을 다니는데, 수업을 안 들었다고 해도 학점을 인정해주고 수업을 안 들어도 졸업을 시켜주는 그런 학교인가보다”라며 김연아의 소속대학인 고려대를 에둘러 비판했다.
황 교수의 발언이 알려지며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는 벌집을 쑤신 듯 시끄러웠다. 황 교수를 지지하는 측에선 “김연아의 치부를 공개해 고맙다”며 “이참에 학업을 등한시하고도 학점을 주는 일부 대학의 학점관리가 개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반대편에선 “황 교수가 기본적인 팩트도 조사하지 않고, 무작정 비판만 했다”며 “연세대도 김연아처럼 국외에서 활동하는 선수들은 인터넷 강의와 리포트 제출 등으로 학업을 진행한다”고 지적했다.
시시비비만 가린다면 황 교수의 주장은 상당 부분 과장된 것으로 밝혀졌다. <일요신문>은 김연아의 출입국 기록과 지난해부터 올해까지의 출석일수를 비교했다. 김연아는 지난해 5월 세계선수권대회 출전과 여름기간 동계올림픽 유치 지원을 위해 국외에서 활동할 때 출석을 거의 하지 못했다. 그러나 미국에서 전지훈련을 마치고 돌아온 10월부터는 수업을 충실히 들은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4학년 1학기를 진행 중인 올해도 마찬가지다.
김연아의 대학 동기생도 같은 말을 했다. “지난해 10월부터 김연아를 자주 봤다. 올해 1학기에도 김연아와 함께 수업을 듣기도 했다. 김연아를 마치 학교에 전혀 나오지 않는 학생으로 묘사하는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
고려대 체육교육과에 재학 중인 구기 종목의 한 학생 선수는 “김연아는 국외에서 훈련하느라 학교에 직접 출석하지 못하고, 인터넷 강의와 리포트 제출 등으로 학업을 진행하지만, 우리는 국내에 있는데도 수업에 못 들어갈 때가 있다”고 밝혔다.
특히 이 학생 선수는 “연세대도 학생 선수들의 수업 관리에 대해선 그렇게 할 말이 없을 것”이라며 “고연전을 앞두고 양교 학생 선수들은 100일 동안 합숙훈련을 하며 오로지 고연전 승리에만 매달린다”고 털어놨다. 실제로 연세대 사회체육과 학생은 “우리 학교 학생 선수들도 국외에서 활동하거나 큰 대회가 있으면 출석하지 않고, 인터넷 강의와 리포트 제출로 학업을 이수한다”며 “미국여자프로골프협회(LPGA)투어에서 활약 중인 신지애의 경우 함께 수업을 받은 기억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물론 고려대가 어떤 대체 강의를 통해 김연아의 학사관리를 도왔는지는 의문이다. 고려대 모 교수는 “다른 대학과 별다를 게 없었다”면서도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학사관리를 했는지는 함구했다.
#왜 그녀가 비난받는가
<일요신문>의 취재 도중 많은 이는 “김연아에게 애정이 있기 때문에 비판하는 것”이라는 말을 빼놓지 않았다. 실제로 그들 가운데 다수는 김연아의 팬이었다. 이들은 입을 모아 “이제라도 올댓스포츠가 김연아를 보호하고, 제대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모 교수는 “김연아가 왜 욕을 먹는지 자세히 살펴보면 특정 사안과 관련해 올댓스포츠가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했거나 김연아의 이미지 관리에 실패했기 때문”이라며 “매니지먼트사는 소속선수를 활용한 수익 창출뿐만 아니라 선수의 이미지 관리에도 각별히 신경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피겨인의 조언은 시사하는 바가 컸다. “김연아는 국민적 스타다. 김연아 때문에 피겨 불모지인 한국에서도 피겨 팬이 생겼다. 하지만, 제대로 이미지를 관리하지 못한 탓에 순식간에 ‘돈연아’가 됐다. 지금이라도 매니지먼트의 초점을 수익 창출이 아니라 선수 보호로 바꿀 필요가 있다. 올댓스포츠가 김연아의 광고수익금으로 피겨유망주에게 투자하는 건 잘 알지만, 요즘 들어 골프선수를 영입하는 등 기본 의도와는 다른 방향으로 가지 않나 싶다.”
박동희 스포츠춘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