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 바뀌자마자 잘나가던 실적 ‘곤두박질’
▲ 지난 3월 31일에 열렸던 그라비티 주주총회 모습. 중앙 단상에 선 사람이 류일영 그라비티 회장이다. | ||
그라비티는 지난해 8월 일본 최대의 IT 업체인 소프트뱅크가 인수해 한껏 기대를 모은 바 있다. 그러나 정작 뚜껑을 열어 보니 기대 이하의 성적표를 기록했다. 그라비티의 소액주주들은 소프트뱅크가 그라비티의 자금을 빼돌리고 헐값에 소프트뱅크의 계열사인 겅호에 매각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부실 경영을 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지난 3월 31일 열린 그라비티의 주주총회에서 소액주주들은 이에 대해 경영진을 강하게 공격했지만 그라비티 측은 이렇다 할 해명 대신 반발하는 주주 3명을 강제 퇴장시키고 취재나온 기자의 자필 메모를 물리력으로 빼앗는 등 오히려 의구심을 증폭시키고 있다.
2000년 설립된 그라비티는 2005년 8월 30일 일본의 소프트뱅크가 창립자인 김정율 회장의 지분 52.39%를 사들여 소유권이 소프트뱅크 측에 넘어갔다. 공동인수자는 손정의 회장의 동생인 손태장 부회장, 아시안 그루브, 테크노 그루브, EZER, 류일영 현 그라비티 사장이다. 아시안 그루브, 테크노 그루브는 소프트뱅크의 자회사이고, EZER은 테크노 그루브가 그라비티를 인수하기 위해 만든 펀드다. EZER의 대표는 류일영 현 그라비티 사장이 맡고 있다.
그 외 문캐피탈 매니지먼트 등 미국 펀드들이 13.9%, 싱가포르투자청이 5.2%, 국내 기관이 4% 지분을 갖고 있다. 국내 소액주주들은 모두 118명으로 그라비티 지분 2%를 가지고 있다.
소액주주들이 의문을 제기하는 첫 번째 문제점은 그라비티 경영진이 주가를 의도적으로 떨어뜨리고 있지 않냐는 것. 지난해 그라비티를 인수한 이후 호재성 공시를 하나도 하지 않고 악재성 공시만 계속했다는 것이다.
소액주주모임을 이끌고 있는 정아무개 씨에 따르면 소프트뱅크는 그라비티 인수를 전후해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공시를 했다고 한다. 2005년 2월 미국 나스닥에 상장한 그라비티는 소프트뱅크의 인수 발표로 주가가 DR(주식예탁증서)당 7.1달러에서 12달러까지 뛰었다.
그러나 소프트뱅크는 인수 직후 “공개매수를 할 경우 일반 소액주주 지분은 DR당 7.1달러 이상 주고 사지 않겠다”는 공시를 했다. 동시에 “그라비티를 나스닥에서 상장폐지할 수도 있다”고 공시에 언급했다고 한다.
12달러까지 뛰던 주가는 공시 직후 2∼3시간 만에 급락해 8.1달러로 마감했다. 이후 미국의 나스닥 관련 게시판에는 그라비티 주가가 ‘7.1달러 이상으로 오를 것이다, 아니다’라는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나스닥 상장 주간사였던 CSFB에서도 소프트뱅크 인수로 목표가를 13달러로 제시할 정도였지만 소프트뱅크의 상장폐지 언급 이후 주가는 현재까지 6∼7달러 사이를 오가고 있다. 8월 이후 주가가 한 때 9∼10달러까지 오르자 다시 공시를 통해 상장폐지를 언급해 찬물을 끼얹었다는 것이 소액주주들이 제기하는 그라비티 경영진의 의도적 주가떨어뜨리기 의혹이다.
그렇다면 그라비티 경영진이 나스닥 상장폐지로 얻을 수 있는 이득이 있는 것일까. 소액주주 쪽에선 소프트뱅크가 그라비티의 주가를 의도적으로 낮춘 뒤 소프트뱅크의 자회사인 겅호가 헐값에 그라비티를 합병하려 한다고 보고 있다.
겅호는 그라비티의 게임을 일본에 퍼블리싱(온라인 게임 업계에서는 배급을 퍼블리싱이라고 함)하는 것이 전체 매출의 99%를 차지하는 회사로 손정의 회장, 손태장 부회장, 소프트뱅크가 84% 지분을 갖고 있다. 소프트뱅크가 그라비티를 인수할 당시 겅호의 시가총액이 2조 원에서 5조 6000억 원으로 급등하기도 했다.
정씨는 손태장 겅호 대표가 그라비티의 나스닥 상장폐지를 추진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나스닥 상장폐지를 위해서는 대주주 지분이 90% 이상 또는 소액주주가 300명 이하일 경우에 가능하지만 이 요건을 채우는 것이 불가능해지자 주가를 낮추기 위해 그라비티 경영을 파행으로 몰아 가고 있다는 것.
이에 대해 그라비티 측은 “의도적으로 회사를 부실덩어리로 만드는 경영진이 어디에 있나. 지난해 인수 이후 기존 경영진의 회계부정 등 회사를 정상화시키는 데 시간이 들었다. 지난 달 타임앤테일즈, 라그나로크 도둑편 등 신작 개발을 발표했다. 올해 안으로 7개의 신규 게임 라인업을 완료할 계획이다. 게임 산업은 고급 두뇌인력 위주의 산업이기 때문에 신작 게임 개발을 위한 인력확보 투자비용이 많아지다 보니 순이익이 많이 줄었다. 3~4년 내 대작게임 개발을 완료할 예정이다”라고 해명하고 있다.
▲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 | ||
정씨는 “국내 3대 개발자로 인정받는 김학규(라그나로크 개발), 송재경(리니지 개발), 정상원(카트라이더 개발)이 개발한 신작 그라나도 에스파다, XL레이스, 프로젝트GG의 경우에도 전세계 판권을 45억∼50억 원에 계약했다. 2005년 12월 26일 그라비티 자체 발표에 따르면 일본의 에밀 클로니클 등록계정은 31만 명 정도다. 캐주얼 게임의 경우 동시접속자는 등록계정의 평균 2%라는 것을 감안하면 동접자수는 6200명에 불과하다. 2억∼3억 원 가치도 되지 않는 에밀 클로니클을 70억 원에 산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고, 이는 그라비티의 자산을 겅호로 이관하려는 검은 의도가 숨어 있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그라비티 측은 “오해다. 에밀 클로니클은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일본 시장과 전세계 시장은 다르다. 가격이 비싸진 것은 국내 판권만이 아니라 일본을 제외한 전세계 판권까지 함께 샀기 때문이다. 겅호보다 그라비티가 해외 진출의 노하우가 있기 때문에 이를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셋째 지난해 그라비티 현 경영진이 옛 오너였던 김정율 회장을 고발한 것을 두고도 논란이 일고 있다. 김정율 전 회장이 홍콩의 위장 계열사를 통해 로열티를 지급하는 형식으로 600만 달러를 빼돌렸다며 검찰에 고발했는데, 이를 밝혀내기 위해 감사비용으로 41억 원을 썼다는 것. 정씨는 “그라비티 인수 당시 실사를 포기한 인수자측에 과실이 있으며 당연히 인수자인 소프트뱅크가 부담해야 할 몫이다. 그리고 회계 실사에 41억 원이라는 천문학적인 금액이 지출된 것도 이해할 수 없다”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에 대해 그라비티 측은 “뒤늦게 기존 오너의 회계부정을 발견했고 이를 바로잡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라고 해명하고 있다.
넷째, 그라비티가 부도상태나 다름 없는 네오싸이언을 62억 원에 인수한 것은 일종의 내부자 거래로 그라비티에 막대한 손실을 끼친 것이라고 소액주주들은 문제삼고 있다.
LG텔레콤에 모바일 콘텐츠를 제공하는 업체인 네오싸이언은 2004년 기준 자본금 9억 원, 매출액 41억 원, 종합신용도 ‘C’, 재무신용등급 ‘D’로 부진한 회사였다. 네오싸이언의 오너인 백승택 사장이 가진 지분 40%를 그라비티가 2005년 11월 62억 원에 매입했다. 인수 후 네오싸이언의 대표였던 백승택 사장은 그라비티의 상무이사로 선임됐다. 소액주주들은 네오싸이언 인수 전에 그라비티에서 실질적으로 근무했던 백 상무가 직접 자신이 소유하는 회사 인수를 주도한 것은 명백한 내부자거래라며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이에 대해 그라비티 측은 “네오싸이언이 동구권 유통망을 다수 확보하고 있어 라그라로크를 러시아 등 동구권에 판매하기 위해 인수한 것이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다섯째, 주주들은 그라비티가 압구정동의 예전 사옥을 비워두고 강남역의 메리츠타워 3개 층을 임대해서 쓰고 있는 것은 비용 낭비라고 지적하고 있다. 지난해 완공된 이 건물의 시설을 감안하면 임대료가 월 2억 원은 낭비되고 있다는 것. 그라비티측은 “구 사옥은 매각작업이 진행중이다. 이는 고정자산을 유동자산으로 전환시키려는 경영상의 판단 때문”이라고 이유를 밝히고 있다.
소액주주모임은 현재 그라비티 경영진을 업무상 배임 및 주가조작 혐의로 형사 고발을 준비중이다.
한편 그라비티 경영진에 대한 의혹이 커지면서 그라비티 지분 13.9%를 가진 미국 투자사인 문캐피탈 매니지먼트와 라미우스 캐피털그룹은 3월 29일 그라비티 경영진의 파행 운영을 문제삼으며 한국 소액주주들과 연대할 뜻을 밝혔다.
우종국 기자 woobea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