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보다 더한 운명의 장난에 ‘퍽’
▲ 데이비드 린치 감독의 유명한 컬트 영화 <이레이저 헤드>의 주인공 잭 낸스. |
데이비드 린치의 첫 장편영화인 <이레이저 헤드>는 1972년에 시작해, 제작비가 마련될 때마다 조금씩 촬영을 진행해 5년 만에 완성된 영화다. 영화를 시작하면서 린치가 찾아낸 배우 잭 낸스는 무명 연기자였다. 대학에서 저널리즘을 공부하다가 무작정 배우가 되겠다고 댈러스에서 LA까지 온 그는 10년 가까이 단 두 편의 영화에 단역으로 출연하며 캘리포니아를 배회하고 있었던 29세의 사나이였다. 역시 별 볼일 없는 상황이었던 20대 중반의 영화 청년이었던 린치는 그를 주급 25달러로 캐스팅 했다.
이후 그는 린치의 영화에 종종 출연하게 된다. 영화 <블루 벨벳>(1986), <광란의 사랑>(1990), TV 시리즈 <트윈 픽스>(1990~91) 등에서 작은 역이지만 인상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의 유작도 데이비드 린치의 작품인 <로스트 하이웨이>(1997)였다. 그는 데이비드 린치라는 ‘악몽의 대가’와 긴 세월을 함께했던 친구였던 셈. 하지만 그에게 진짜 악몽은 영화가 아니었다. 그에게 현실은 영화보다 훨씬 더 악몽 같은 미스터리였다.
첫 번째 비극은 ‘사랑’이라는 모습으로 다가왔다. 긴 세월 동안 알코올 중독에 시달리던 잭 낸스는 <블루 벨벳>에서 만나 친구가 된 데니스 호퍼에게 도움을 청했다. 술과 마약에 빠져 고통 받았지만 끝내 극복했던 호퍼는 잭 낸스에게 요양과 함께 금주 치료를 하는 클리닉에 소개했고, 그는 그곳에서 갱생의 삶을 살게 되었다. 더 큰 행운은 켈리 밴 다이크라는 여성을 만난 것. <메리 포핀스>(1964)의 ‘버트’로 잘 알려진 유명 코미디 배우 딕 밴 다이크의 조카이며 TV 배우인 제리 밴 다이크의 딸이었던 그녀는 잭 낸스와 사랑에 빠져 1991년 6월에 결혼식을 올린다. 이미 40대 후반에 접어든 낸스보다 열다섯 살 어린 신부였다.
하지만 결혼이 행복을 담보하진 못했다. 잭 낸스는 켈리가 ‘낸시 켈리’라는 이름으로 포르노에 출연하고 있다는 걸, 그리고 여전히 마약을 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낸시는 그녀와 계속 함께 있다가는 자신도 다시 술에 손을 댈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잭 낸스는 <미트볼 4>(1992)라는 싸구려 코미디의 주연을 맡아 촬영지인 요세미티 국립공원으로 떠났다. 낸스는 결심했다. 켈리와의 결혼 생활을 빨리 끝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전화를 걸어 “더 이상의 결혼 생활은 무의미한 것 같다”고 말하는 잭 낸스에게 켈리는 울면서 “지금 빨리 집으로 와 달라”고 매달렸다. 잭 낸스가 “전화를 끊겠다”고 하자 켈리는 “전화를 끊으면 자살해버리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때 번개가 쳤고 국립공원 지역에 전화선이 끊겨 버렸다. 불길한 예감에 휩싸인 잭 낸스. 그는 다음 날 켈리가 진짜로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정말 그녀는 낸스와의 통화가 끊기자 목을 매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것이다.
▲ 잭 낸스의 사랑과 죽음은 이상한 운명에 휘말린 비극의 연속이었다. |
다음 날 아침, 세탁물을 챙겨주러 방문한 불가리니는 욕실 바닥에 쓰러져 싸늘하게 식은 잭 낸스를 발견한다. 검시관의 소견은 ‘경막하혈종’, 즉 뇌를 보호해주는 뇌막 사이의 공간에 피가 응고된 상황이었다. 원인은 둔기에 의한 외상. 그는 누군가에게 살해당한 것이었다. 경찰의 수사가 이어졌지만, 아무리 찾아 봐도 용의자는 없었다. 캐서린과 레오에게 전날 새벽 윈첼 도넛 앞에서의 일을 들은 경찰은 그곳에 갔지만 당시 근무자는 그 시간에 가게 앞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했다. 낸스와 시비가 붙었다던 두 명의 히스패닉 틴에이저도 찾을 수 없었다. 어쩌면 낸스는 캐서린과 레오에게 거짓말을 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렇다면 그는 어디서 멍이 들었을까.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죽었을 때 혈중알코올농도가 0.24%였던 만취 상태였기에 경찰은 술에 취해 넘어진 사고사로 추측해보기도 했지만, 머리에 있는 둔기 자국은 살인이 아니고서는 생길 수 없는 것이었다. 용의자도, 목격자도, 증인도 없는 살인사건. 결국 경찰은 2001년에 잭 낸스의 죽음을 영구 미제 사건으로 처리했다. 그리고 다음 해 데이비드 린치는 잭 낸스에 대한 다큐멘터리인 <나는 잭을 모른다>(2002)를 제작하며 인터뷰이로 등장해 “그를 위한 많은 역할들을 구상하고 있었는데 그 대신 누굴 캐스팅해야 할지 도저히 모르겠다”며 안타까운 심정을 드러냈다. 영원한 ‘컬트 아이콘’이었던 잭 낸스는 그렇게 아쉬움을 남기며 미스터리한 죽음 속으로 사라졌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