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재산 29만 원’은 전 씨의 트레이드 마크처럼 돼있는데, 이번 사건에서도 예외 없이 그것이 뒤따라 붙었다. 육사의 행사가 ‘발전기금 200억 원 모금달성 기념식’이었고, 그는 1000만 원 기부자의 자격으로 사열대에 섰기 때문이다.
노 씨는 고발 이유에 대해 1990년대 사돈에게 맡겨둔 230억 원(이자 포함 654억 원)의 비자금을 돌려받아 미납추징금을 내려고 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전에도 친동생과 조카를 상대로 같은 이유로 비자금의 반환청구 소송을 냈다가 패소한 바 있다.
두 전직 대통령은 재임 중 조성한 불법비자금에 대한 추징의 멍에를 지고 있다. 전 씨는 2205억 원 중 532억 원만 내 1673억 원이 미납인 상태다(납부율 24%). 반면 노 씨는 2628억 원 중 2397억 9300만 원을 97차례에 걸쳐 납부하고, 231억 원을 남긴 상태다(납부율 91%).
그래서 일찍부터 전 씨의 일거수 일투족은 추징금과 관련해 주목됐다. 그는 측근들을 수십 명씩 대동하고 골프장이며 음식점을 드나들었다. 이번에도 29만 원밖에 없다는 사람이 1000만 원은 어떻게 냈냐는 것이 일반인들의 의혹이자 분노다.
하지만 전 씨의 씀씀이에 대해 열을 올리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다. 7년의 집권기간 동안 1조 원에 가까운 비자금을 조달해 쓴 그에게는 출판재벌이 된 아들이 있고, 손 크기로 이름난 그에게 신세를 진 많은 사람들은 신세 갚을 기회를 기다릴지도 모른다. 그는 증권투자로 치면 뒤탈 없고 안정수익이 보장되는 미래형 포트폴리오 구성에 성공한 셈이다.
전 씨의 삶이 추징금에 구애받지 않는 듯이 보이는 것과는 달리 병상의 노 씨는 미납 추징금을 내는 것을 필생의 목표로 삼고 있는 것 같다. 세간의 따가운 여론을 무릅쓰면서까지 가까운 친인척을 잇달아 고소고발 하는 것에서 그런 절박감이 느껴진다. 사돈 고발이 아들 부부가 이혼소송을 진행 중인 시점이라는 아쉬움은 있지만.
두 전직 대통령들에게 남아 있는 유형의 재산은 아마도 배우자 명의로 된 집 한 채가 전부일 것이다. 이 집을 국가에 헌납하고 아들 며느리와 살면 추징금에서 해방될 수 있을까? 부부가 세상을 뜬 후 국고로 넘기라는 유언이라도 남긴다면 멍에를 벗을 수 있을까?
추징시효는 3년이고, 시효소멸에 앞서 국가가 재산파악에 나서게 되는데, 기간 안에 1원이라도 추징금을 내면 시효는 3년씩 자동 연장된다. 전 씨가 2010년 강연 수입이라면서 300만 원을 낸 것도 재산조사를 받지 않으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지난 4월 총선 날 투표장에 나온 전 씨 부부는 기자들로부터 “아들이 추징금을 갚을 생각을 하느냐”는 질문을 받았는데, 부인 이순자 씨가 나서 “연좌제도 아닌데 그건 아니죠”라고 부인했다. 그런 머리 씀의 얄팍함과 얼굴의 두꺼움 사이에 전 씨가 추징금으로부터 해방될 여지는 잘 보이지 않는다.
한남대 교수 임종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