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문의 망신도 불사…득 없는 싸움에 독 품은 까닭은
▲ 조석래 회장.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법원 판결문에 따르면 이 아무개 씨(69)와 처삼촌 조석래 회장과의 ‘거래’는 1989년부터 시작됐다. 그해 이 씨는 경기 이천시 모가면 두미리 산39-15 임야 6만 8596㎡를 매입하고 각 부동산에 관해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쳤다. 하지만 토지에 관한 등기필증은 조 회장이 보관했으며 토지세를 비롯한 각종 세금도 직접 부담해왔다.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아무런 문제가 없었지만 2004년쯤부터 두 사람이 부딪치기 시작했다. 조 회장이 회사 직원들을 통해 수차례 소유권이전등기를 넘겨줄 것을 요청했으나 이 씨가 이를 거절한 것. 다만 2004년 해당 땅은 인근 골프장과 서로 필요한 부지를 교환하기로 하고 분할했는데 이 과정에서는 이 씨가 전혀 이의제기를 하지 않았다. 이처럼 소유권이전등기를 둘러싸고 한 차례 갈등을 빚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분할 외에는 변동사항이 전혀 없었다. 그러다 2009년 조 회장이 소송을 제기하면서 법정다툼이 벌어졌다.
재판부는 두 사람의 관계와 세금납부 여부 등 여러 정황을 근거로 매매계약의 실제 매수인은 조 회장이고 등기명의만 이 씨로 마쳐 해당 부동산은 조 회장이 이 씨에게 명의신탁한 것이라고 봄이 상당하다고 인정했다. 재판부는 그러나 “민법 제162조 제1항에 따라 10년의 기간이 경과함으로써 시효가 소멸하고 조 회장이 부동산을 이 씨로부터 넘겨받아 점유하고 있다고 볼 만한 아무런 근거가 없고 그렇다 하더라도 부동산실명법 시행에 따라 청구권은 소멸됐다”며 1심과 2심 모두 원고의 청구에 대해 기각 판결을 내렸다. 조 회장은 이에 불복해 대법원에 즉각 상고한 상태다.
알려진 것은 여기까지. 효성 측은 “조 회장 개인적인 일이라 대법원에 상고한 사실 이외에 자세한 내용은 알지 못한다”며 함구하고 있지만 의문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전경련 회장까지 지낸 대기업 총수가 인척과 작은 땅 하나를 놓고 망신을 당하고 또 더 심각한 여러 문제를 감수해가며 굳이 소송까지 제기할 이유가 있었을까.
소송의 배경과 관련해 가장 설득력을 얻고 있는 것은 골프장 건설사업과의 관계다. 현재 소송 중인 땅 남쪽에는 효성그룹 계열사인 두미종합개발이 골프장(두미CC)을 짓고 있는데 여기에 필요한 땅이기 때문에 꼭 찾아야만 하기 때문이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된다. 문제의 땅과 맞붙은 두 필지 모두 효성과 두미종합개발 소유다.
1989년 매입 이후 별일 없이 지내오다 골프장 건설 계획을 진행하던 2004년부터 조 회장이 회사 직원을 통해 적극적으로 반환을 요구한 점도 설득력을 높이고 있다. 두미종합개발은 조 회장의 아들들인 현준(1.68%), 현상(49.16%), 현문(49.16%) 삼형제가 100% 지분을 가지고 있는 회사로 효성가 3세들의 경영승계와 관련해 회자가 되기도 했다.
본래 이 회사의 지분은 장남인 조현준 사장이 최대주주였으나 2006년 말 유상증자 과정을 거치며 차남과 삼남이 대부분의 지분을 갖게 되면서 재계에서는 ‘계열사 가르기’가 시작된 것이라고 풀이했다. 또한 소송이 마무리되지 않은 탓에 말을 아끼고는 있지만 이 씨 측에서도 “이 땅을 확보해야만 골프장 사업을 제대로 진행할 수 있다”고 귀띔했다.
일각에서는 77세인 조 회장이 후일을 위해 차명재산 정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을지 모른다는 분석도 제기한다. 차명재산의 속성상 실제 주인이 아니면 되찾기는 불가능에 가까울 수밖에 없다. 소송을 준비하기 시작한 2009년 무렵부터 1심 판결이 나온 2010년 9월까지 조 회장의 건강이 좋지 못했다. 2010년 7월에는 건강상의 이유로 전경련 회장직에서 물러나기도 했다.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드러나지 않은 차명재산이 더 있을 것”이라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번 소송 결과를 통해 반환 가능성 여부를 점쳐보고 앞으로의 계획을 세우려는 것 아니냐는 시선이다. 해당 땅은 비교적 금액은 적어 주목을 덜 받을 수 있고 차명이라는 증거가 명확하기에 판결에 따라 숨겨진 재산을 되찾을 수 있는 가능성을 점쳐 볼 수 있다는 점을 근거로 하고 있다.
이처럼 설왕설래가 한창이지만 한 가지만큼은 명확하다. 소송의 목적이 단순히 돈 때문은 아닐 것이란 추측이다. 해당 땅은 2012년 1월 공시지가 기준 1㎡당 4400원으로 총 3억 원가량이다. 판결문에 따르면 이 씨는 지난 1989년 김 아무개 씨 등 2명으로부터 각 7262만 5000원에 매입했는데 20년 동안 4배가량 오른 수준이다.
이 땅은 근접한 토지의 공시지가와 비교했을 때도 10분의 1 수준에 불과할 정도로 가격이 낮다. 그렇다고 앞으로 땅값이 급등할 요건이 있는 것도 아니다. 인근 부동산중개업자는 “두미CC를 비롯해 골프장 3개가 그 땅을 둘러싸고 있다. 그 땅만으로는 뭔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는 상태다. 게다가 지금 그 땅을 내놔도 누가 살 사람도 없다”고 했다.
▲ ① 비에이비스타CC ② 두미종합개발이 공사 중인 두미CC ③ 뉴스프링빌CC ④ 조석래 회장이 법정다툼을 벌이고 있는 문제의 두미리 부지. 사진출처=다음 지도 캡처 |
하지만 이 씨 측은 이 땅의 가치가 공시지가 수준에 그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씨 측은 “누가 3억 원이라고 말했느냐”며 “단순히 공시지가로 계산했을 때야 그렇겠지만 골프장 이용 등 주변 여건을 고려했을 때 실제 가치는 10배는 넘을 것이다. 그렇다고 이 소송이 오직 돈 때문에 진행되고 있다는 뜻은 아니다”고 전했다.
이 씨는 한 발 더 나아가 분쟁이 되고 있는 땅의 소유권이 정확히 누구에게 있는 것인지에 대한 부분도 문제제기를 한 상태다. 이 땅이 조 회장의 개인소유라는 명확한 근거가 없다는 것. 땅 매입금액의 출처부터 세금관리까지 효성그룹이 관계돼 있는데 이 때문에 조 회장보다는 효성그룹의 재산이라는 것이 타당하다는 입장이다.
이 씨 측은 “세금 정산도 효성그룹 본사 건물 인근의 은행에서 늘 이체됐으며 해당 부동산과 맞닿은 땅도 효성그룹이나 두미종합개발이 보유하고 있다. 부동산 분할 때도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된 것이 아니라 골프장 사업과 관련이 있었다”며 “여러 가지 정황을 봤을 때 법인명의라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조 회장은 효성그룹의 재산도 모두 개인소유로 보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현재 법원은 이에 대한 판단은 보류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번 소송의 내용을 접한 재계·법조계 관계자들은 하나같이 “두 사람의 배경을 고려하면 어떤 이유로든 소송까지 벌일 만한 일은 아니다. 분명 개인적인 문제가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금액이 얼마가 됐든 인척끼리 법정다툼을 벌였다는 자체로도 이미 집안에 분란이 일었다는 이야기인데 더욱이 재벌가에서 그럴 때는 숨겨진 사연이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 씨는 1977년 효성에 입사해 1997년 5월 상무이사직을 끝으로 퇴사할 때까지 조 회장과 오랜 시간 인연을 맺어온 인물이다. 2004년 토지분할 당시만 하더라도 이 씨는 별다른 이의제기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2009년 조 회장이 소송을 제기하면서부터 변화가 생겼다.
그동안 한 번도 세금을 내지 않았던 이 씨가 어떤 이유에서인지 직접 토지세를 내면서 적극적으로 권리를 행사하기 시작한 것. 조 회장도 지금까지 해왔던 대로 세금을 납부해 현재는 중복 납부가 된 상태다. 즉 2004년 이후부터 조 회장이 회사 직원을 통해 이 씨로부터 반환을 꾸준히 요구했으나 어떤 이유로 해결이 되지 않아 결국 법의 힘을 빌렸다는 얘기다.
이 씨 측에서도 “지금 상황에서는 말할 수 없지만 소송을 제기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다. 법정싸움을 하는 마당에 서로간의 왕래는 전혀 없다. 이미 감정의 골이 생겼지만 조정의 여지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며 “법원에서도 여러 차례 조정의 기회를 마련해줬고 우리도 어느 정도 수용하고자하는 의지가 있었으나 조 회장 측에서 문제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 씨 측에 따르면 소송은 1심에서 조정으로 마무리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고 한다. 금전적 보상과 함께 토지 소유권 반환만 이뤄지면 더 이상 소송을 할 필요가 없기에 이 부분에 대해 대리인들이 적극적으로 나서 합의를 봤다는 것.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당사자인 조 회장에게 합의에 대한 의견전달이 이뤄지지 않았는지, 혹은 거부했는지, 결국 재판은 계속 진행됐다고 한다. 일각에서는 “조 회장으로부터 날벼락이 떨어질까 아무도 쉽사리 합의라는 단어를 입 밖에 꺼내지 못하는 것”이라는 소문도 돌고 있다.
여전히 누구의 말이 옳은지는 밝혀지지 않은 가운데 조 회장이 쉽게 토지를 포기하지 않을 것은 분명해 보인다. 1심에 이어 서울고법에서도 기각 판결이 내려지자마자 대법원에 상고를 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대체로 소송 중 신변에 이상이 생기거나 친인척끼리 엮인 문제라면 도중에 해결되는 상황도 많다고 하나 조 회장에게서는 전혀 그런 기색을 찾아볼 수 없다고 한다. 오히려 조 회장은 1심에서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하자 기존 변호사를 비롯해 대형 로펌과도 접촉해 변호인단을 강화했다.
그러나 조 회장의 ‘굳은’ 의지에도 불구하고 법조 관계자들은 대법원에서도 반전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부동산 전문 정충진 변호사는 “만약 어떠한 이유에서 부당이득반환청구소송을 통해 조 회장의 주장이 일부 받아들여진다고 해도 크게 변하는 것은 없다. 땅 매매대금 일부는 받을 수 있겠지만 금액의 기준은 시가가 아닌 매입 당시(1989년)기 때문에 미미한 금액”이라며 “더욱이 이렇게 되면 명의신탁 사실을 스스로 인정하게 되는 바 양측 모두 과징금을 물게 된다. 어떤 쪽이든 조 회장에게는 달갑지 않은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
▲ 성북동 조 회장의 현재 주소지. 박은숙 기자 |
안갯속 후계구도 ‘보이네 보여’
현재 법인등기부상 조 회장의 주소지는 서울 성북구 성북동 2-×의 단독주택이다. 그러나 해당 주택의 등기부를 확인해본 결과 조 회장의 장남 조현준 효성 사장이 그 집의 소유주로 돼 있었다. 최근 조 회장은 원래 살던 곳(성북동 3-×)에서 현 주소지로 변경했는데 앞서 살던 곳 역시 소유주는 조 사장이었다.
물론 아버지가 아들 집에 살 수 있다. 하지만 명예회장도 아닌 현직 대기업 회장이 본인 소유의 주택에서 거주하지 않는다는 점은 이례적이라 눈길을 끌기에 충분하다. 부친의 전·현 자택을 소유하고 있는 조 사장의 현 주소지는 인근 성북동의 위치한 빌라. 지난 2010년 매입한 것으로 등기부에 기재돼 있다. 아버지인 조 회장이 주소지를 옮긴 시점과 비슷해 조 회장이 주소를 옮기며 조 사장도 빌라로 이사한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사실은 효성의 후계구도와 맞물려 흥미를 더한다. 조석래 회장 아들들인 현준, 현상, 현문 삼형제는 모두 화려한 학력과 경력을 바탕으로 하나같이 경영에 뜻을 두고 있어 후계 정리가 간단치 않다. 현재 삼형제 모두 지주회사 격인 (주)효성 지분율도 각 7%대로 비슷하다. 그런데 최근 장남 조현준 효성 사장이 지분율과 경영 참여를 높이고 있어 주목을 받았다(<일요신문> 1046호 ‘후계구도 가시화 효성가 삼형제 주목’ 보도). 이런 상황에서 조 회장이 장남 조 사장 소유의 집에 산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반면 조 사장과 경쟁하는 차남 조현문 효성 부사장의 거주지는 본인 소유가 아닌 것으로 확인돼 대비된다. 물론 조현문 부사장 또한 포스코의 영빈관으로 쓰이던 대저택(성북동 1-××)을 지난 2004년 매입, 보유하고 있기는 하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