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과 돈 빼고 다 갖춘 PD 역할로 첫 코미디 도전…“모든 게 2배속이었던 현장, 나만 뒤처진다 생각도”
“4년 전에 대본을 처음 받았는데 그때 저는 ‘나의 아저씨’라든지, ‘호텔 델루나’처럼 사연 많은 캐릭터를 연달아 작업하고 있었거든요(웃음). 그러다 보니 밝고 사연이 없는 캐릭터를 하고 싶단 갈증이 있었어요. 영화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소민이는 사연이 제일 없잖아요(웃음). 그 부분이 좋더라고요. 또 영화가 전체적으로 얘기하고자 하는 의식도 따뜻해서 좋았어요. 제가 생각했을 때 도움이 될 것 같거나 보탬이 되는 게 맞는 일에선 아낄 필요가 전혀 없다고 생각해요. ‘드림’도 작품이 재미있어서 참여한 게 1순위이긴 했지만 감독님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동의해서 출연한 이유도 컸고요.”
1600만 관객을 돌파하며 역대 한국 박스오피스 관객 수 2위를 기록한 영화 ‘극한직업’의 이병헌 감독의 차기작으로 기대됐던 영화 ‘드림’은 선수생활 최대 위기에 놓여 돌파구를 찾고자 하는 축구선수 홍대(박서준 분)와 열정과 돈 빼고 다 가진 현실파 다큐 PD 소민(아이유 분)이 운동이라곤 단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노숙인들을 모아 전 세계 노숙인 축구선수들이 참가하는 홈리스 월드컵에 도전하는 이야기를 그린다. 2010년 한국이 첫 출전한 홈리스 월드컵 실화가 모티브가 됐다.
홈리스 월드컵 국가대표팀의 코치가 돼 선행으로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려는 홍대와 이들을 이용해 억지로라도 눈물을 짜낼 수 있는 감동적인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성공한 PD로서의 입지를 다지려는 소민의 관계는 동상이몽으로 정의된다. 특히 소민은 성공 욕구에 비해 ‘으쌰으쌰’하는 열정으론 달궈지지 않는 무덤덤하고 무감동한 직장인의 면모를 보여 실제 직장인들의 많은 공감을 사기도 했다. 이런 소민에 대해 아이유는 “원래부터 이렇게 열정 없는 친구는 아니었을 것”이라며 웃음을 터뜨렸다.
“소민이는 영화 내내 계속 열정이 없다는 게 강조되는데, 저는 오히려 그래서 더 열정적인 캐릭터가 아닌가 싶더라고요. 한때는 분명 열정적이었지만 후천적으로 시니컬한 성격이 된 거죠. ‘이 미친 세상에 미친X으로 살면 그게 정상 아닌가?’ 그게 딱 소민이의 캐릭터를 설명하는 한 줄 같아요. 원래 미친 아이는 아니었을 것 같은데(웃음), 세상에 맞춰서 본인을 미치게 만든 거죠. 그런데 그 성격이 저와 또 그렇게 많이 다르진 않아서 연기할 때 캐릭터를 이해하는 게 어렵지 않았어요. 저는 소민이처럼 그렇게 자기 진짜 말투와 가짜 말투가 구분되는 사람은 아니지만, 그래도 저도 꽤 어릴 때부터 사회생활을 했다 보니 그게 뭔지 어렴풋이 알 수 있겠더라고요.”
‘드림’은 아이유의 첫 코미디 영화이기도 했다. 코미디에 처음 도전하는 대부분의 배우들이 그렇듯 아이유 역시 관객들의 웃음을 자연스럽게 이끌어내는 연기에서 가장 헤맸다고 했다. 다행히 ‘말맛’ 넘치는 유머러스한 대사가 전매특허인 이병헌 감독의 지시에 따라 비교적 순조롭게 촬영을 진행할 수 있었지만, 쉴 새 없이 몰아치는 현장의 속도감이 초반 촬영의 허들을 높였다는 게 그의 이야기다.
“저희가 촬영할 때가 ‘극한직업’이 개봉한 뒤였는데 저도 코미디 장르에 대한 부담감이 당연히 있을 수밖에 없었어요. 장르 특성상 유지해야 하는 텐션과 호흡, 스피드가 있다 보니 그 어떤 현장보다도 어렵더라고요. 게다가 감독님 현장이 또 굉장히 스피디해서 저한텐 그 모든 것들이 다 2배속으로 느껴지는 거예요(웃음). 심지어 저는 감독님과 첫 작업이지만 현장에 계신 다른 배우 분들이나 스태프 분들은 모두 다 한 번씩 호흡을 맞춰보셨거든요. 그래서 ‘나만 뒤처지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아이유에게 그런 생각이 들게 만든 사람 중엔 홍대 역의 박서준도 있었다. 박서준 역시 이 작품에서 이병헌 감독과 처음으로 함께한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자신에 비해 빠르게 적응해 2배속 이상의 속도감을 모두 맞춰냈다는 것. 첫 촬영 이후 3년이나 지났지만 아이유가 기억하는 박서준의 모든 촬영 신은 그야말로 감탄의 연속이었다.
“‘드림’을 촬영하면서 박서준 씨랑 같이 찍는 모든 신에서 진짜 감탄한 기억밖에 없어요. 아마 저만 감독님의 디렉션에 반응이 뒤처지는 것 같단 생각을 하게 된 가장 큰 이유기도 한데, 서준 씨가 진짜 너무 빨리 습득하는 거예요. 현장에서 자신이 준비해온 것과 다른 디렉션을 받아도 자기만 다 OK를 받아내요(웃음). 그 재치와 순발력이 너무 대단하다 생각해서 정말 부럽더라고요. 현장에서 사담을 많이 나눌 기회는 없었지만 먼발치에서 봐도 정말 멋지고 매력적인 배우였어요.”
2022년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브로커’ 속 미혼모 소영을 통해 불완전하게 성숙한 모성을 보여줬던 아이유는 ‘드림’ 이후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폭싹 속았수다’에서 1950년대 제주에서 태어난 요망진 반항아 애순이로 다시 대중과 만난다. 연기한 캐릭터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아이유는 밝은 캐릭터를 연기할 땐 자신 역시 심플해지는 것을 느낀다며 웃음을 터뜨렸다. ‘캔디’형 캐릭터부터 복잡하고 어두운 ‘사연 많은’ 캐릭터에 이르기까지 감정의 명암을 대부분 경험해 본 그가 요즘 가장 욕심이 나는 건 “덜 착하고, 덜 사랑하는” 캐릭터라고.
“아직 악역을 안 해봐서 해보고 싶어요. 덜 착한 사람들의 덜 깊은 사랑 이야기 이런 거 재미있지 않나요? 많은 작품의 주인공들이 덜 착하게 시작해도 마지막엔 결국 착해지고, 사랑을 잘 모르는 상태로 시작해도 마지막엔 사랑을 알고 끝나잖아요. 그런데 사랑을 하는 주체가 둘 다 착하지 않은 설정은 어떨까요? 적당히 사랑하다 결국 배신하는데 둘 다 상처도 별로 안 받고 ‘오케이’ 하면서 끝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저는 이런 게 너무 재미있거든요. 기회가 된다면 작가님께 제안을 한 번 드려볼까 해요(웃음).”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