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구단’ 표심 얻기 회장님이 머슴처럼
▲ 구 총재가 2011 한국시리즈 개막을 선언하고 있다. 사진제공=삼성 |
▲ 지난해 대만에서 열린 아시아시리즈에서 시구하고 있는 구 총재. 연합뉴스 |
개인 재산에서도 구 총재는 로열 패밀리답다. 지난 3월 미국 경제잡지 <포브스>가 발표한 ‘2012 세계 억만장자’ 순위에 한국인 20명의 이름이 올랐다. 이 가운데 한국 최고 부자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었다. 그의 재산은 83억 달러(약 9조 3134억 원)로, 세계갑부 가운데 106위였다. 국내 재산 2위인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은 62억 달러로 161위를 차지했다. 주목할 건 구 총재의 재산이었다. 구 총재는 10억 달러로 세계갑부 1153위에 올랐다. 지난해 구 총재는 11억 달러로 국내 재산 순위 16위를 차지한 바 있다.
#10억 달러 부자, 그러나 실상은 소탈한 회장님
이름난 로열 패밀리지만, 구 총재의 일상은 로열 패밀리와는 거리가 멀다. 구 총재는 허름한 카페에서 술 한잔 기울이는 걸 좋아한다. 언뜻 재벌그룹 회장답게 수백만 원 상당의 고가 양주를 마시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아니다. 그는 국산양주 임페리얼을 마신다. 그것도 12년산이다. 안주도 마른 오징어 하나면 그만이다. 구 총재는 담배도 국산만 피운다.
원체 소탈하다 보니 사람을 만나도 격의가 없다. 구 총재는 야구장에 자주 간다. 홈팀 관계자들이 귀빈석을 안내하지만, 매번 사양한다. 대신 표를 사서 내야석에 앉는다. 거기서 일반 관중과 허물없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 받는다. 대개 야구팬들은 구 총재가 자릴 뜨고서야 그가 한국야구계의 수장임을 안다.
구 총재는 KBO 총재 취임 당시 “KBO로부터 연봉을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과거 낙하산 인사들은 2억 원의 연봉과 1억 원 이상의 판공비를 악착같이 챙겼다. 야구인들은 ‘과연 약속을 지킬까’하고 구 총재를 바라봤다. 그는 약속을 지켰다. 여태껏 연봉은 고사하고, 판공비도 받지 않았다. 오히려 자비를 쓴다.
총재에 취임하고서 구 총재는 자비 1억 원을 들여 야구 원로들의 영상 및 녹음 작업을 진행했다. 주변에선 “당연히 KBO가 할 일이니 아랫사람들에게 맡기라”고 했지만, 구 총재는 손을 흔들었다.
“영상 작업도 돈이 들어가는 사업이다. 그러려면 회원사(구단)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총재라고 KBO 돈을 함부로 써선 안 된다. 하지만, 시간이 없다. 언제 또 야구인이 쓰러질지 모른다. 사재를 털어 야구 원로들의 증언을 남기는 편이 여러모로 좋다. 그게 나 자신한테도 떳떳하다.”
따지고 보면 구 총재의 자비를 턴 건 이번만이 아니다. 그는 예전부터 야구계를 챙겼다. 불우 야구인을 물심양면으로 도왔고, 2007년엔 장충리틀야구장의 전광판을 갈아줬다. 2008년엔 경남고 야구부 발전을 위해 10억 원을 쾌척했다.
구 총재는 “야구계를 위한 기부는 돈이 전혀 아깝지 않다”며 “KBO 총재도 명예직이 아닌 봉사직이란 생각으로 임하고 있다”고 밝혔다.
▲ 경기 관람을 위해 잠실구장을 찾은 이 대통령 내외와 구본능 총재. 사진제공=LG트윈스 |
구 총재는 이 문제를 타개하려 9개 구단 사장들을 만나 설득 작업을 펼쳤다. 그리고 몸통 격인 모그룹 회장들과 접촉해 10구단 창단의 당위성을 설명하고, 협조를 구했다. 같은 대기업 회장임에도 구 총재는 설득을 위해 잔뜩 몸을 낮췄다. 젊은 그룹 총수들에게도 예를 갖췄다. 구 총재는 야구계의 숙원을 위해 희성그룹 회장 직함을 버린 지 오래였다.
구 총재는 악전고투 끝에 10구단 창단 불가였던 모 구단을 찬성 쪽으로 돌리는 데 성공했다. 만약 10구단 창단 승인을 KBO 이사회 표결로 붙인다면 찬성으로 가결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러나 변수는 있다. 최근 찬성 쪽이던 모 구단이 모그룹 최고위 인사의 지시를 받고 반대로 돌아선 것으로 알려졌다. 이 소문이 사실이라면 표결로 갈 시 10구단 창단 승인은 다시 한 번 보류될 수도 있다.
10구단 창단 승인이 부결되거나 보류되면 구 총재의 노력은 물거품이 되고 만다. 만약 그렇다면 구 총재는 자신이 10구단 문제를 책임지겠다는 자세다. 구 총재는 “KBO 총재를 맡은 것도 야구계 발전에 밀알이 되기 위해서였다. 누군가 10구단 창단 무산 책임을 져야 한다면 내가 지면 된다”며 “직함에 미련은 없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야구계는 구 총재의 책임론에 분명한 반대 의사를 나타내고 있다. 역대 최고의 민선 총재를 이대론 보낼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항상 KBO의 반대편에 섰던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조차 구 총재를 지지하고 있다.
과연 구 총재가 한국야구계의 수장으로 남을지 아니면 야구마니아로 돌아갈지 10구단 창단 승인건에 야구계의 관심이 쏠려 있다.
박동희 스포츠춘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