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철한 ‘시간패’ 딱한 사정 있었다
6월 13일 오후, 한국기원 3층 사무국. 기전부(프로기전 관련 담당부서)의 여직원이 부장을 찾았다. 급한 일인 것 같았다. 판정 요청이 왔다는 것이었다. 4층 대국실에서는 안성준 3단과 박준석 2단의 제56기 국수전 본선 16강전이 한창이었고, 대국은 인터넷으로 생중계되고 있었다. 두 사람 모두 신예. 안 3단은 1991년생, 2008년 입단자인데, 신예 중에서도 ‘센 신예’여서 현재 한국리거. 형제 프로기사로 안형준 3단이 그의 형이다. 박 2단은 1992년생, 2010년 입단. 지난해부터 두각을 나타내면서 현재 2부리그인 락스타리그에서 뛰고 있다.
사람들이 모니터로 모여들었다. 화면은 <장면> 흑8(실전 187수)에서 멈춰 있었다. 박 2단이 흑. 좌하귀 쪽에서 백이 1로 따내자 흑은 상변 2로 손을 돌렸다. 좌하귀는? 빅인가? 대궁소궁인가? 대궁소궁으로 백이 잡힌 건가? 아니, 패인가?
<1도>는 수순을 거슬러 올라간 그림. 좌변 흑진에서 백이 수를 내려고 하는 모습이다. 흑4가 긴요한 수. 익혀두어야 할 점이다. 백5는 어쨌든 이렇게 파호하고 볼 자리. 계속해서….
<2도> 흑1도 이렇게 잇는 것이 수를 늘이는 것. 백2 들어올 때 흑3으로 먹여치고 5로 막은 것도 정확한 대응. 그냥 5에 막으면 흑이 수부족이다.
<3도> 백은 1~5로 수를 늘였고, 흑은 4로 따내고 6으로 치중했다. 흑6 다음 수순이 바로 <장면>이다. 좌하귀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4도> 백1부터 수를 줄여가 보자. 그런데… 흑6 다음 백은 더 둘 수가 없다. A의 곳을 메울 수도 없다. 자살이니까. 흑은 10 다음 12로 일단 따내고 ….
<5도> 백1 때 흑2로 몰아간다. 이래서 패. 그러면 결론은 패인가? 그런데 그게 아닌 것. <4도> 흑6 다음 백은 둘 수가 없고, 패를 할 수 있는, 이른바 ‘권리’는 흑에게만 있는 것. 그래서 결론은 백이 잡힌 것.
<장면> 좌하귀의 경우는 귀곡사와 비슷하다. <6도>가 그런 모양.
그러나 백이 둘 수 없는 것을 구태여 패를 만들 필요는 없는 것. 그래서 ‘귀’의 ‘곡사(曲四, 꼬부라진 4집 모양)’는 ‘사(死, 죽음)’로 규정하고 있는 것. 포위한 상대의 돌들이 못 살아 있다면, 흑도 패를 해야 하는 것.
이런 경우에는 중국 룰이 꽤 편리하다. 패로 잡아가라, 내 권리다, 팻감이 어디 있느냐, 그런 걸 갖고 싸울 이유가 없다. 중국 룰은 집도 집이고 바둑판 위에 살아 있는 내 돌도 내 집이어서, 우리 식으로 내 집에 가일수 하는 것이 손해가 아니다. 그러니 상대가 팻감으로 쓸 수 있는 자리를 다 가일수해 없애면 된다. 그래 놓고 패를 들어가면 너는 꼼짝 못한다는 거다.
기전부장이 규정집을 펼치면서 김수장 9단에게 전화를 했다. 김 9단은 한국기원에서 ‘룰의 권위자’로 통한다. 상황은 흑의 불계승으로 종결되었다. 잠깐의 해프닝이었다. 바둑을 중계하는 인터넷 댓글창에서 누군가 대국자들을 점잖게 나무랐다. “프로기사가 이런 걸로 판정을 요청한다는 건 이상하지요? 물론 깜빡할 수도 있겠지만…^^”
▲ 최철한과 조치훈. |
다음 날 최 9단이 글을 올렸다. “… 죄송합니다. 제가 사실은 어릴 때 병을 앓았고 그 후유증인지 오른쪽 귀가 전혀 들리지 않습니다. 특히 스튜디오 대국에서 흑을 들 경우에는 제 오른쪽에 계시원이 있게 됩니다…”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가슴 아픈 사연이었다. 팬들은 모두 최 9단에게 사과와 위로를 전했다. 바둑TV 스튜디오 대국, 다른 문제도 좀 있지만, 카메라 위치 때문에 흑백 자리를 고정시킨 것이고, 자리를 바꾸려면 카메라 위치도 고쳐야 하는데 그게 20분 이상 걸리고, 그래서 곤란하다는 이런 것도 문제다. 최 9단 한 사람만 배려하면 특혜 시비가 생길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방송이 먼저인가, 선수가 우선인가? 배려가 무슨 특혜인가. 선수로 하여금 최상의 컨디션에서 최고의 작품을 만들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그게 제일 중요한 것 아닌가?
7일에는 중국 리그에서 조치훈 9단과 백홍석 9단이 바둑을 두다가 조 9단이 팻감을 쓰지 않고 패를 따내 반칙패를 당했다…^^. 기억도 새롭다. 1980년 10월, 일본 제5기 명인전 도전7번기. 명인 오다케 히데오, 도전자 조치훈. 2 대 1로 도전자가 앞선 가운데 나고야에서의 제4국. 도전자가 유리했는데, 패싸움을 하다가 팻감을 쓰지 않고 패를 따냈다. 지금이라면 무조건 반칙패. 그러나 당시엔 이런 경우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없었던 데다가 대국자가 패를 따내기 전에 기록자에게 “내가 딸 차례지요?”라고 물었으며 기록자도 황망 중에 고개를 끄덕였다는 정황 등이 참작되어 일본기원은 무승부로 판정했고, 4국은 전무후무한 도전기 무승부 바둑으로 기록에 남았다. 지금은 물어보는 것 자체가 반칙.
이광구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