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열한 경쟁과 비교 속 ‘아플 때 아프다고 말 못해’…최근 아이돌 활동 중단 잇달아 ‘위험신호’
20대 초반, 뭐든 다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나이의 스타들이 자꾸만 스스로 세상을 등진다. 세간의 선망을 받으면서 화려한 삶을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계속되는 아이돌 스타들의 죽음은 ‘K팝 공화국’으로 통하는 우리 사회에 질문을 던진다.
#문빈의 비보, ‘자신의 삶에 집중해야’
1998년생 문빈은 2016년 아스트로의 멤버로 데뷔해 활동 8년 차에 접어든 아이돌 가수다. 하지만 그보다 아역 연기자로 먼저 출발해 일찌감치 연예계 생활을 시작했다. 초등학생 때 드라마 ‘꽃보다 남자’에 아역 배우로 출연했고, 그룹 동방신기의 뮤직비디오에도 출연했다. 이후 아이돌 그룹으로 데뷔하면서 삶의 대부분 시간을 연예계에서 보냈다.
비보가 전해지기 불과 며칠 전까지 문빈의 SNS에는 다양한 게시물이 올라왔다. 명품 브랜드와 협업한 사진이 게시되기도 했다. 하지만 겉으로 보이는 게 전부일 수 없듯, 문빈은 스스로 생을 끝내기까지 누군가에게 털어놓지 못할 고민을 겪은 것으로 보인다. 고민이 꽤 깊었는지, 같은 분야에서 일하는 선배들에게 속내를 털어놓은 적도 있다.
문빈은 가수 김종국이 진행하는 한 프로그램에 출연해 어릴 때부터 연예계에서 생활하면서 겪은 고충을 꺼냈다. 김종국 역시 고등학생 때 데뷔해 30년 동안 연예계 생활을 해온 가수. 문빈은 김종국에게 “이쪽(연예계) 생활을 하다 보면 괴리감을 느낄 때가 있다”며 “활동할 때의 모습과 쉴 때의 내 모습이 다르고, 쉴 땐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고 털어놨다.
먼저 그 과정을 겪은 선배 김종국은 “너의 개인적인 인생, 너라는 사람에 대한 삶, 무조건 거기에 집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연예인이나 가수로서의 삶이 죽을 때까지 너의 삶이 되긴 어렵다”며 “네 자체의 삶이 건강해야 나머지도 할 수 있는 것”이라고도 당부했다. 하지만 문빈은 끝내 자신이 품은 고민의 열쇠를 풀지 못하고 먼저 세상을 떠나 주위를 더욱 안타깝게 하고 있다.
#종현, 설리, 구하라…아이돌의 죽음 언제까지
문빈의 안타까운 죽음으로 인해 스스로 세상을 등진 아이돌 가수들의 이야기도 다시금 주목받는다. 2017년 그룹 샤이니의 종현, 2019년 설리와 구하라가 팬들 곁을 떠났다. 이들은 10대 때부터, 혹은 그보다 어릴 때 연예계 활동을 시작했다. 겪어보지 않으면 짐작할 수 없는 혹독한 아이돌 연습생 과정을 보냈고, 누구나 누릴 수 없는 정상의 인기도 맛봤다. 그 모든 일이 10대부터 20대 초·중반의 짧은 시간동안 벌어졌다.
스스로 하늘로 떠난 아이돌 가수들이 왜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분석이 나온다. 물론 당사자가 아니면 알 수 없는 일. 다만 세상의 시선과 평가에 그대로 노출된 삶, 그에 따른 극심한 스트레스와 우울증 등이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예상할 뿐이다. 어릴 때부터 치열한 경쟁에 놓이는 처지, 늘 누군가와 비교돼야 하는 상황도 스트레스로 작용할 수 있다. 최근에는 신인 연기자들의 사망 소식도 들려왔다. 정채율, 유주은 등 이제 막 연기 활동을 시작한 신인들이 어떤 이유에서인지 스스로 생을 마감해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동료, 후배들의 연이은 죽음은 같은 분야에 종사하는 이들에게도 충격을 안긴다. 가수 아이유는 문빈의 비보가 전해지자, 자신이 주연한 영화 ‘드림’ 홍보 일정을 잠시 중단하기도 했다. 생전 종현, 설리와 각별한 사이였던 아이유는 문빈의 비보를 접하고 “아플 때 아프다고 얘기하고, 힘들면 힘들다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조심스럽게 밝혔다.
아이유 역시 중학생 때부터 연예계 활동을 시작해 20대를 거쳐 30대가 됐다. “10대부터 이 일을 하면서 주변 동료들이 어떤 부분으로 힘들어하는지, 마음이 다치고 움츠러드는지 직접 봐 왔다”는 아이유는 “연예인이란 직업이 개인과 업무 공간을 나누는 게 쉽지 않고 매 순간 ‘일을 한다’고 생각하게 되는데 분리하기 어렵더라도 일과 개인을 분리하는 게 필요한 것 같다”고 밝혔다. 이어 “연예인으로 자신을 바라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조언도 덧붙였다.
#아이돌 스타들의 ‘건강 적신호’ 계속
이런 상황에서 최근 아이돌의 활동 중단 소식들은 ‘위험 신호’다. 신체적인 문제도 있지만 정신 건강에 대한 위기 신호로 활동을 중단하는 아이돌이 부쩍 늘었다.
가수와 연기자를 활발히 오가는 레드벨벳 조이는 활동 자체를 중단했다. 소속사 SM엔터테인먼트는 “조이가 병원 상담과 검진을 통해 치료와 안정이 필요하다는 소견을 받았다”며 “당분간 스케줄에 참여하지 않고 컨디션 회복에 힘쓸 계획”이라고 밝혔다. 건강 문제에 직면한 조이는 레드벨벳 해외 콘서트에 불참하고, 진행을 맡은 SBS ‘동물농장’ MC 자리에서도 물러났다.
‘살인적인 스케줄’을 소화하는 인기 아이돌 멤버들도 건강 문제를 호소하고 있다. 아이브이 멤버 레이는 가슴 두근거림과 답답함을 호소해 검진을 받고 “치료와 안정이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았다. 그룹 NCT의 천러 역시 5월 초까지 예정된 필리핀, 싱가포르 공연에 불참한다. “감기 몸살 증상으로 인한 컨디션 난조”라는 설명이다.
K팝의 전 세계적인 인기에 힘입어 아이돌 스타들이 마치 ‘국가대표’가 된 분위기이지만, 그 이면에서 당사자들의 심리 치료와 건강 문제에 대해 좀 더 세밀한 관심과 관리가 필요하다는 지적과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393, 정신건강 상담전화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청소년 모바일 상담 ‘다 들어줄 개’ 앱, 카카오톡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호연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