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세원쇼’로 인기 정점 ‘PR비’ 파문 이후 해외도피…전부인 서정희 가정폭력 및 이혼으로 구설
캄보디아에 거주 중인 박현옥 아시아한인총연합회 부회장은 매일경제 스타투데이와의 통화에서 “당뇨 환자들은 식이요법을 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질 못했고 식사도 제때 못해 최근에는 말라 거의 뼈만 남아있었다. 누워서 수액을 맞다 돌아가셨다”며 “부인이 충격을 받아 처음에 혼절했다. 지금도 상태가 좋지 않다. 서세원 씨는 항상 딸과 같이 다녔는데 딸은 아빠가 죽은 걸 아직 모른다. ‘아빠, 한국 갔다’고 얘기했다”고 전했다.
코미디언으로 데뷔해 MC 등 방송인과 영화 제작자 및 감독 등으로 활동한 서세원 씨는 목회자의 길을 걷기도 했으며 사업가로도 활동했다. 사업과 목회 활동 등을 위해 재혼한 아내와 그 사이에서 낳은 딸과 함께 캄보디아에서 지내던 고인은 결국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다.
#80~90년대 방송가를 대표하는 최고의 스타
방송인 서세원을 기억하는 이들이라면 가장 먼저 KBS 2TV ‘서세원쇼’를 떠올릴 것이다. 1996년 10월부터 2002년까지 방영된 이 프로그램은 당시 최고의 인기를 구가했었다. 그리고 이즈음이 연예인 서세원이 가장 환하게 불타오르고 있을 시절이다.
서세원 씨는 1979년 TBC 라디오를 통해 데뷔했지만 1980년 TBC가 문을 닫은 뒤 MBC에서 주로 활동했다. 당시만 해도 공채 시절이라 탤런트와 코미디언은 본인이 소속된 방송사에서만 활동했다. 서 씨의 무기는 ‘입담’이었다. 당시 코미디언들이 몸 개그나 바보 흉내 내지는 정치 풍자 등을 주로 했던 데 반해 서 씨는 MC로 활동하며 인기를 얻었다. ‘영11’ ‘청춘행진곡’ ‘일요일 일요일 밤’ 등을 통해 큰 사랑을 받았는데 오늘날의 '국민 MC' 유재석, 강호동 등의 원조가 바로 그다.
컬러텔레비전이 대중문화의 핵심이던 1980년대 방송가에선 코미디언이 많은 인기를 얻었고 그만큼 대형 스타도 많이 배출됐다. 이주일이라는 확실한 원톱을 중심으로 서세원을 비롯해 1977년 MBC 개그콘테스트로 데뷔한 주병진, 1980년 TBC 개그콘테스트로 데뷔한 김형곤, 1981년 MBC 개그콘테스트로 데뷔한 최양락과 이경규, 1982년 KBS 개그콘테스트로 데뷔한 심형래 등이 1980년대 방송가를 호령했다. 1956년생인 서세원 씨가 67세로 가장 나이가 많고 주병진 심형래 씨가 1958년생, 이경규와 김형곤 씨가 1960년생, 최양락 씨가 1962년생으로 이제 모두 60대다. 이 가운데 김형곤 씨가 2006년 가장 먼저 세상을 떠났고 이제 서 씨도 고인이 됐다.
서세원 씨는 오늘날 토크쇼의 시작점이라는 평가를 받는 ‘서세원의 스타데이트’를 진행하며 사랑을 받았고 이를 계기로 토크쇼 MC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는데 이런 흐름이 KBS 2TV ‘서세원쇼’에서 정점에 이르렀다.
#연이은 영화 제작 실패와 해외 도피
가장 높이 올라갔다면 이제 내려가야 하고, 가장 화려하게 불타오르면 곧 그 불씨는 꺼지게 된다. 서세원 씨 역시 1990년대 후반 절정의 인기를 얻었지만 2000년 이후 본격적인 위기에 직면한다. 우선 ‘토크박스’ 코너로 인기를 끌었던 ‘서세원쇼’가 일본 프로그램 표절 의혹에 휘말렸고 출연자에게 너무 공격적인 MC 서 씨의 태도에 대해서도 시청자들의 지적이 이어졌다.
이즈음 서세원 씨는 영화제작자 활동에 매진하고 있었다. 1986년 영화 ‘납자루떼’의 각본을 직접 쓰고 감독까지 맡았던 그는 흥행 참패를 겪었다. 이후 2001년 영화 ‘조폭 마누라’를 제작해 흥행에서 크게 성공했지만, 2002년 제작한 영화 ‘긴급조치 19호’로 다시 흥행 참패를 겪었다. 문제는 2002년 영화 ‘조폭 마누라’ 홍보 과정에서 서 씨가 방송국 PD 등에게 소위 ‘PR비’를 건넨 혐의로 검찰 수사가 시작된 것이었다.
2002년 연예계는 검찰의 대규모 연예계 비리 수사로 몸살을 앓았다. 특히 당시 검찰 수사의 핵심이 바로 이 PR비, 다시 말해 ‘촌지수수 관행’이었다. 대형 연예기획사 대표들이 줄줄이 사법처벌을 받았는데 서 씨는 검찰 수사에 응하지 않고 2002년 8월 해외로 도피한다. 그의 갑작스런 해외 도피로 ‘서세원쇼’는 하루아침에 종영하고 만다. 홍콩을 거쳐 미국으로 간 서 씨의 해외 도피는 2003년까지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인터폴 수배가 내려지고 언론에선 서세원 씨가 도피 과정에서 마카오에서 도박을 했다는 의혹까지 보도됐다.
결국 2003년 4월 귀국해 검찰 수사를 받은 서세원 씨는 2006년 대법원까지 가서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2004년에는 재판을 받으며 자신이 제작은 물론이고 각본과 감독까지 맡은 영화 ‘도마 안중근’을 개봉했지만 역시 흥행에 참패했다.
#충격적인 이혼과 재혼
유명 연예인의 해외 도피는 충격적으로 다가왔지만 그 원인이 된 PR비 파문의 파장은 그리 크지 않았다. 어찌 보면 당시 연예계에 만연했던 문제점이었고 연예계 전반의 비리 수사 과정에서 서 씨도 처벌을 받은 것이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사안을 둘러싼 충격적인 물의까지는 아니었다.
문제는 2014년 5월 10일 당시 아내 서정희 씨를 폭행해 가정폭력 혐의로 입건된 일이었다. 그 전까지 서세원-서정희는 연예계를 대표하는 잉꼬부부였다. 서정희 씨는 법원에 접근금지 가처분을 신청하고 서세원 씨는 이에 불복해 서울가정법원에 이의를 제기하기도 했다.
부부 사이에서 벌어진 일이라 대중이 정확한 속내를 알 수는 없었다. ‘부부싸움’이라는 표현이 너무 폭넓은 개념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대중은 두 부부의 상반된 주장을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2014년 7월 24일 MBC ‘리얼스토리 눈’에서 서세원 씨가 서정희 씨를 폭행하는 장면이 실린 CCTV가 공개됐다. 매우 충격적인, 실제라고 믿기 어려운 모습이 담긴 영상이었다. 결국 서세원 씨는 2015년 5월 상해혐의로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 선고를 받았다.
석 달 뒤인 2015년 8월 21일 이들은 합의 이혼했다. 충격적인 CCTV 영상이 공개된 2014년 MBC ‘리얼스토리 눈’ 방송에서 서정희 씨는 이혼소송 사실을 밝히며 서세원 씨에게 내연녀가 있다고 폭로했다. 심지어 서세원 씨의 내연녀가 자신에게 지속적으로 폭언이 담긴 문자메시지를 보내 이혼을 결심하게 됐다고 밝혔다. 다만 서세원 씨 측은 이를 오해라고 주장했다.
다음 해인 2016년 서세원 씨는 23세 연하의 해금연주자인 지금의 아내 김 아무개 씨와 재혼했고 그해 딸을 낳았다. 이 여성이 서정희 씨가 언급한 내연녀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3조 원대 사업가…고인의 최근 행보
이혼과 재혼을 거치며 서세원 씨는 완전히 연예계를 떠났다. 2014년 초에만 해도 영화 ‘건국대통령 이승만’의 감독을 맡을 예정이라며 연예계 복귀 의사를 밝혔지만, 그해 5월 서정희 씨 폭행 사건이 터지면서 시작된 이혼 및 재혼 과정을 거치며 서서히 연예계에서 멀어졌다.
이후 서세원 씨는 사업가로 변신한다. 경기도 용인 일대에서 60여 채의 타운하우스를 지어 분양해 50억 원대 대박을 터트렸으며 2020년에도 용인 성복동에 100억대 빌라를 지어 분양했다. 그리고 2020년에는 캄보디아에서 3조 원대 복합 건설사업체를 주관하는 글로벌 사업가로 알려진다.
2020년 '더팩트' 인터뷰에서 서세원 씨는 캄보디아에서 스포츠채널 CSTV 사업권을 받아 2023년 5월 5일부터 개최되는 동남아시안게임(SEA) 단독중계권을 확보했으며 SEA 개최를 위한 올림픽 선수촌 빌리지와 대규모 빌라 등 1000세대를 지을 예정이라고 밝힌 바 있다. 또한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에서 남서쪽으로 약 160km 떨어져 있는 청정 해안도시 켑 주에 대규모 복합리조트를 건설하고, 여기에 들어서는 호텔과 카지노 등도 서 씨의 해외법인 소스원이 운영권을 갖는 사업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그렇지만 예상만큼 사업이 잘 진행되진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박현옥 부회장은 뉴스1과 통화에서 “서세원 씨가 2020년에 캄보디아에서 미디어 사업을 진행하려고 했으나 코로나19로 부침을 겪은 상황으로 생전에 자금 사정이 좋지 않았다”고 밝혔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