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여성·비정규직 문제 ‘올인’
▲ 은수미 의원(가운데)이 친동생(오른쪽)과 친구 남주 씨(왼쪽)와 함께 제주도 여행에서 찍은 사진. 대학 친구인 남주 씨와는 3학년 때 헤어진 이후 30대 중반을 넘어 다시 만났다. 그는 “내가 감옥에 있을 때 남주가 편지를 많이 써 줬다. 친구가 재작년 유방암 치료로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을 때 제주도행을 권했다. 둘이서 떠난 여행은 처음이었는데 앞으로 오래 같이 살아가자는 의미였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은 의원은 제주도의 사려니숲과 장생의 숲길을 ‘강추’했다. |
민주통합당 은수미 의원(여·48)과의 만남은 여행이야기로 시작해 “언젠가 산티아고 순례길에 도전하겠다”는 이야기로 끝났다. 사실 은 의원의 삶 자체가 여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82년 서울대학교 사회학과에 입학한 은 의원은 학생운동에 가담하면서 대학 3학년 때 제적됐다. 이후 봉제공장 미싱사로 위장 취업해 노동운동을 벌이며 감옥에 드나들기 시작했다.
“당시 미싱사 친구들이 제가 빨갱이라서 평생을 감옥에 있을 줄 알았대요. 그런데 6개월 만에 ‘짠’하고 나타나니까 놀라던 기억이 나요. 그때 친구들이 ‘그래도 너 때문에 나아진 점이 있다. 작업장에 선풍기를 달아줬고 점심시간 1시간을 다 사용할 수 있게 됐다’고 말해 준 게 아직도 잊혀지지 않아요.”
▲ 은수미 의원. |
“제가 어릴 때 대지가 100평이 넘는 유복한 환경에서 살았는데 제 친구들은 대부분 판잣집에 살고 있었죠. 그게 잘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그래서 부모님께 ‘수녀가 돼 어려운 사람을 돕겠다’라고 말씀드렸더니 부모님이 성당에 나가는 것을 금지시켜버린 거예요.”
비록 수녀가 아닌 정치인이 되었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은 게 있다.
“어떤 사람이든 동등한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누릴 수 있어야 해요. 어렸을 때 ‘내 친구는 밥을 못 먹고 있는데 나는 왜 초콜릿을 먹을 수 있을까’ 의구심을 가졌던 그 마음이 지금까지 이어져 온 거죠.”
현재 은 의원은 국회 내 ‘쌍차모임’에 공을 들이고 있다. 은 의원은 3년이 넘게 흘렀지만 좀처럼 해결되지 않고 있는 쌍용차 문제에 관해 “제가 해결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청년, 여성, 비정규직 문제’만 해결되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고 믿는 은 의원은 어떤 현장이든 달려갈 준비가 돼 있는 듯 보였다. 그녀는 별명처럼 ‘여전사’가 맞았다.
김임수 기자 ims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