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도한 정보 넘어갈 우려” 법원 ‘압색 전 관계인 심문’ 입장…“수사 차질 엄청날 것” 검찰 등 반발
#2. 이보다 앞선 5월 2일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전 원내대표는 검찰에 자진출석해 ‘주위를 괴롭히지 말고 나를 수사하라’고 촉구했다. 그러면서도 이보다 앞서 이뤄진 자신의 전·현 주거지 압수수색 현장에도 나타나지 않았고, 그 다음날 초기화된 휴대전화를 검찰에 제출했다. 검찰은 4월 29일 이뤄진 송 전 대표의 후원조직 ‘평화와 먹고사는 문제 연구소’(먹사연) 압수수색 과정에서도 컴퓨터 하드디스크가 포맷되거나 교체된 정황을 포착했는데, 송 전 대표는 이와 관련한 기자들의 질문에 “검찰에 수사권이 있듯, 저희는 방어권이 있다”며 “그런 문제는 법정과 검찰에서 대응해 가겠다”고 답했다.
#휴대전화 증거의 중요성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2부(김영철 부장검사)가 진행 중인 더불어민주당의 2021년 전당대회 돈봉투 의혹 사건에서 ‘휴대전화 및 디지털기기 증거인멸’이 주요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검찰은 구속영장 발부에 성공한 강래구 씨 등 핵심인물들의 증거인멸 과정을 주목하고 있다. 송 전 대표는 “방어권 행사”라고 말했지만, 검찰은 휴대전화 초기화나 교체는 피의자의 방어권을 넘어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강래구 씨를 향한 압수수색 전후로 강 씨가 수사팀 연락을 피하고 여러 차례 관련자와 접촉했던 정황 등을 고려할 때 증거인멸이 조직적으로 이뤄졌을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있다. 경선 캠프 관계자들을 중심으로 휴대전화 교체 및 초기화 등이 이뤄진 것을 확인하고 있다. 송 전 대표가 검찰에 자진 출석해 ‘나를 먼저 수사하라’고 얘기했지만, 정작 초기화된 휴대전화를 제출한 것을 두고 구속영장 청구사유로 거론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법원 안팎의 분위기는 정반대다. ‘휴대전화 압수수색’에 신중해야 한다는 태도가 견고해지고 있다. 판사가 압수수색영장을 발부하기 전 사건 관계인을 심문할 수 있게 하는 내용의 대법원 형사소송규칙 개정안이 다시 거론되고 있다.
법원행정처가 2월 형사소송법의 하위 법령인 형사소송규칙 개정안에 압수수색 전 관계인 심문을 가능하게끔 하는 내용을 포함시키는 입법예고를 한 뒤 일선에서도 필요성을 언급하고 나섰다.
대법원이 나서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 법원행정처는 5월 1일 전국 영장전담 판사가 참여하는 온라인 간담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선 ‘휴대전화 등 디지털 증거물의 압수수색 시 과도한 정보가 경찰과 검찰에 넘어갈 수 있다’는 일선 판사들의 우려 섞인 반응이 주를 이뤘다고 한다.
법원행정처는 이런 내용이 담긴 입장을 2일 공개했다. 정재우 법원행정처 형사지원심의관이 정리한 59쪽 분량의 발제문에는 최근 10년 동안 검찰의 압수수색 영장 청구가 급증했고, 선별 없는 압수수색으로 인한 기본권 침해 우려가 크기에 ‘압수수색 전 관계인 심문’이 필요하다는 입장이 담겼다. 기존에 검찰이 “수사 과정에 기밀성이 사라져 피의자들이 수사를 방해할 수 있다”고 공개반박한 것을 재반박한 셈이다.
발제문에 따르면 압수수색영장 청구는 2011년부터 2022년까지, 10여 년 동안 10만 8992건에서 39만 6671건으로 3.5배(363%) 넘게 늘었다. 같은 기간 체포영장 청구는 5만 9173건에서 2만 7426건으로 오히려 50% 넘게 줄었다. 법원은 늘어난 압수수색영장 대상의 상당 부분이 휴대전화나 컴퓨터, 서버에 저장된 디지털 정보이기에 보다 엄격한 통제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사건 관계인을 불러 심문하는 것 역시 압수수색영장 발부 여부를 심리하는 과정에서 영장 범위나 대상에 대한 의문점이 생겼을 때 비공개로 하면 ‘기밀성’도 문제가 없다는 설명이다.
#검찰 "오히려 법원 통제 강화"
검찰은 곧바로 반박 입장을 냈다. 같은 날(2일) 오후 자료를 내고 “과거 영장 없이 수집했던 증거에 대해서도 영장을 발부받아야 압수할 수 있기 때문에 영장 발부 건수가 증가한 것”이라며 “수사기관의 활동에 대한 법원의 통제가 오히려 강화된 것”이라고 반박했다.
실제로 경찰이나 검찰은 임의제출이 줄어들고, 영장이 있어야만 자료를 받게 되는 게 늘었다고 하소연한다. 과거에는 휴대전화는 물론, 포털사이트 가입자 인적사항이나 CC(폐쇄회로)TV 영상 등이 임의제출로 받던 자료들이었는데 재판에서 ‘증거 확보 과정’이 잇따라 문제가 되면서 모두 압수수색영장으로 정식 확보하게 됐다는 것이다.
형사 사건 경험이 많은 한 검사는 “주요 사건들의 증거 확보 과정을 두고 법정 다툼이 이뤄지면 자연스레 다른 사건들까지 법적 증거 효력을 갖추기 위해 증거 확보 과정이 정식 절차로 복잡해지게 된다”며 “법원이 제시한 기준으로 압수수색영장 때마다 관계인을 불러 조사하게 되면 수사가 훨씬 더 지연되고 그만큼 피의자들이 사전에 대응할 수 있게 된다”고 설명했다.
검찰뿐만 아니라 경찰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등도 모두 법원의 입법예고에 반발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수사기관들은 ‘휴대전화’에 대해서는 조금 더 크게 반발한다.
앞선 검사는 “휴대전화에는 전화 기록뿐 아니라, '카톡'이나 문자, 사진과 전화 녹취, 개인적인 메모나 금융거래 흔적 및 위치 기록 등 거의 모든 정보를 담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며 “10년 전만 해도 수사 대상자의 메모가 담긴 수첩이 중요했다면 이제는 증거가 남아있는 휴대전화를 확보했는지가 수사에서 가장 중요한 초기 대응이고 피의자들도 이를 알기에 갈수록 새 휴대폰이나 초기화한 휴대전화를 들고 오는 이들이 많다”고 지적했다.
법원이 검토 중인 휴대전화 등 디지털기기 압수수색 때 검색어를 제한해 영장을 발부해주겠다는 조치가 현실화되면 수사 차질이 엄청날 것이라는 지적이다. 영장전담 재판부를 역임했던 한 변호사는 “디지털기기 압수수색 영장 발부 과정이 더 구체화되면 거꾸로 구속영장 때에도 피의자들의 개인 증거인멸을 방어권으로 보고 덜 문제 삼는 동시에 검찰이 확보한 증거에 대해서 절차적 정당성을 놓고 다투는 일이 더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