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를 갈고 노력하면 꿈은 이뤄진다”
▲ 6월 17일 세레소 오사카 클럽하우스에서 만난 김보경. 박지성과 박주영을 합쳐 놓은 듯한 외모가 인상적이었다. |
세레소 오사카에는 미드필더 김보경과 골키퍼 김진현이 주전으로 뛰고 있다. 그중에서 대표팀과 마찬가지로 등번호 7번을 달고 뛰는 김보경은 이전 레바논전에서 A매치 데뷔골과 두 번째 골을 터트리며 상승세를 달리고 있어 그의 발 끝에 많은 관중들의 시선이 쏟아졌지만 아쉽게도 세레소 오사카는 1-4로 패하고 말았다. J리그 득점 랭킹 2위를 달리고 있는 김보경과의 인터뷰는 다음날 세레소 오사카 클럽하우스에서 이뤄졌다. 박지성이 대표팀에서 은퇴하며 자신의 후계자로 김보경을 꼽으며 시작된 ‘제2의 박지성’이란 타이틀 덕분에 대표팀과 소속팀에서도 박지성이 달았던 등번호 7번을 사용 중인 김보경은 박지성+박주영을 섞어 놓은 듯한 외모와 말투 생활 스타일 등이 인상적이었다. 그래도 두 선수보다는 입담이 좋았다는 게 다행이다.
▲ 6월 27일 열리는 김보경의 세레소 오사카와 윤정환 감독의 사간 도스 결전이 구단 홈페이지에 메인 소식으로 장식됐다. 사진출처=세레소 오사카 |
▲그래도 이번에는 대표팀에서 골 맛을 보고 동료들로부터 축하도 받고 해서 가벼운 마음으로 소속팀에 합류했다. 이렇게 경기를 보러 오셨을 때 이겼어야 하는데, 많이 아쉽다.
―브라질월드컵 최종예선 레바논전에서 두 골을 터트리는 바람에 일본에선 김보경 선수를 J리그에서 키웠다고 하고, 한국에선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반응한다. 이런 얘기를 알고 있나?
▲(웃으면서) 기사를 봤다. 그런데 지금 내가 J리그에서 뛰고 있고 J리그에서 배운 것도 있으니까 아주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정리를 한다면 한국에서 축구를 시작했고 2002월드컵을 보며 국가대표에 대한 목표를 세웠고 더 나은 축구 인생을 위해 외국 생활을 택한 게 지금은 J리그이기 때문에 ‘반반’이라고 할 수 있겠다.
▲ 리터칭=송유진 기자 eujin0117@ilyo.co.kr |
▲음…, 이제 시작이라는 생각을 한다. 겨우 두 골이 나왔을 뿐이다. 그런데 언론에서 너무 띄워주려고 애쓰시는 것 같다. 그동안 대표팀에 합류할 때마다 경기에 뛰고 싶다는 마음을 앞세웠다. 하지만 바람과 현실은 매번 어긋났다. 오랜 시간 참고 기다리면서 노력해왔던 부분들이 이번에 좋은 결과로 나타났던 것 같다. 그런데 지금은 두 골에 마냥 좋아하고 있을 수가 없다. 앞으로 올림픽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마음을 다스리고 차분하게 준비를 해야 한다.
―2010남아공월드컵에서 경기에 뛰진 못했지만 인터뷰 때마다 그 당시의 경험이 축구인생에 좋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말했다. 구체적으로 설명을 해줬으면 좋겠다.
▲월드컵 명단에 이름을 올렸지만 경기 출전은 언감생심이었다. 내가 뛸 수 있는 자리에는 (박)지성 형, (이)청용 형 등 능력과 실력을 겸비한 선배들의 즐비했다. 허정무 감독님께서 날 뽑아주신 이유는 남아공이 아닌 다음 월드컵을 준비하라는 배려라고 받아들였다. 경기에 나가지 못했지만 영원히 잊지 못할 짜릿한 경험을 했다. 솔직히 말해서 그때 남아공월드컵은 어린아이가 소풍가는 것처럼 들뜨고 설렘만 존재했다. 내 눈 앞에서 아르헨티나의 메시, 이과인 등이 뛰어다닌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처음에는 어안이 벙벙한 채로 경기를 지켜보다가 시간이 흐를수록 내가 그 경기 속에 동화돼 머릿 속에서 플레이를 펼쳐나갔다. 그 경기를 마치고 결론을 내린 건, 난 아직 그런 경기를 뛸 정도의 레벨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내 축구실력이 얼마나 미미하고 부족한지를 살 떨리게 실감했다(웃음).
―남아공월드컵 기간 동안 박지성과 룸메이트로 지냈는데 그 이후 박지성의 은퇴 기자회견 때 자신의 후계자로 김보경을 점찍는 바람에 자연스레 ‘제2의 박지성’이란 타이틀이 붙게 됐다.
▲처음엔 지성 형이 날 후계자로 지목했다고 해서 어리둥절했다. ‘같은 포지션이라 그렇게 말씀하셨나?’ 아니면 ‘후배한테 용기를 주시려고 일부러 내 이름을 언급하신 건가?’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지성 형이 나한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신 게 아닌가 싶었다. 즉, 더 노력해서 지성 형의 자리를 차지하라는, 그리고 그 자리를 빼앗기지 말라는 무언의 메시지라는 느낌이 들었다. 지성 형의 그 말씀 덕분에 대표팀에서 더 많은 기회를 얻었던 게 사실이다. 정말 감사하고 고맙다. (기자가 ‘지성 형’에게 밥이라도 사야 하는 거 아니냐는 말에) 그러고 싶지만, 아직 개인적으로 연락을 드릴 만큼 가깝지가 않다. 앞으로 내가 더 성장해서 지성 형 앞에 당당히 설 수 있을 때, 그때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
―2010년 홍익대를 다니다 중퇴하고 세레소 오사카에 입단 후 바로 오이타 트리니타에 임대 선수로 등록했다. K리그 드래프트를 포기하고 J리그로 방향을 튼 이유가 뭔가.
▲K리그에선 드래프트 제도 때문에 내가 뛰고 싶은 팀에서 뛸 수가 없었다. 그래서 J리그에 도전하게 된 것이다. 당시 세레소 오사카 감독은 나에 대해 잘 모르셨다. 그래서 벤치 신세로 머무는 것보다 임대된 오이타에서 잘 적응하고 좋은 모습을 보인다면 다시 세레소에서 뛸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결국 지난해 다시 세레소로 돌아왔고 지금까지 주전으로 뛰고 있다.
▲ 김보경이 6월 17일 클럽하우스 밖에서 홈 팬들에게 사인을 하고 있다. |
▲FC서울이었다. 서울에 살아서 그런지 몰라도 어렸을 때부터 난 FC서울의 열혈 팬이었다.
―J리그에서의 생활도 만만치 않았을 것 같은데.
▲처음에는 성공에 대한 막연한 기대를 갖고 일본으로 입성했다. 그런데 몸으로 부딪쳐보니 이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구나, 성공보다는 실패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엄습했다. 이름이 알려져 있지 않다 보니 그라운드 안에서 뭔가를 보여줘야 실력을 인정받을 수 있었다. 그렇지 못할 경우 출전 명단에서 제외된 채 벤치만 달군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럴 때마다 오기와 자극을 가하며 내 자신을 단련시켜왔다. 외국 생활은 고달픔의 연속이다. 대표팀에선 ‘우리’ ‘하나’라는 느낌이 강한데 외국에선 소외감이 물밀 듯하다. 선수들 사이에서 보이지 않는 신경전도 치열하다. 오이타에 있을 때는 나보다 나이 많은 선수가 경기 내내 나한테 소리를 질러댔다. 그 선수가 왜 소리를 지르는지 이유를 몰랐다. 아마 내가 임대 선수이고 J리그 경험이 없다는 걸 알고 일부러 기세 장악을 하려 했던 게 아닌가 싶다. 대표팀의 한 선배님이 하신 말씀이 기억난다. 외국 생활의 노하우 중 하나가 트러블이 생길 때 지지 말고 맞서 싸워서 이겨야 무시당하지 않고 그 이후의 생활이 편하다고. 경험해 보니까 일리가 있는 말씀이셨다(웃음).
―슬럼프라고 꼽을 만한 시기가 있었나.
▲2011년 아시안컵에서 전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을 때, 그리고 2011년 9월 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8강에서 전북을 만나 경기를 치르다 코뼈 골절을 당하는 바람에 A매치 경기에 뛸 수 없었을 때가 힘들었다. 코뼈를 다쳤을 때는 몸 상태가 굉장히 좋아졌었고 곧 대표팀에 들어가서 뛸 수도 있었는데, 다시 주저앉게 돼 상심이 컸던 것 같다.
―혹시 대표팀의 다른 선수들, 선배들이 매스컴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걸 지켜보며 내심 부러웠거나 자신도 그 중심에 있고 싶다고 생각해 본 적이 있었나.
▲없지 않아 있었다. 그러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면 내 마음에 바람이 든다는 것도 깨달았다. 그래서 웬만하면 외부에 신경 쓰지 않고 내 할 일만 하려고 노력한다. 이전에는 종종 내 기사도 찾아서 읽곤 했었는데 지금은 거의 인터넷을 보지 않는다. 인터뷰도 대부분 거절하는 편이다. 2011년 동아시아선수권대회 이후 반짝 관심을 받았던 적이 있었다. 그때 스스로 내가 변하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내가 멘털적으로 많이 약해졌다는 느낌도 들었다. 그래서 자제하려고 노력했다. 그런 점에서 내가 한국이 아닌 외국에서 생활하고 있다는 게 다행이란 생각도 든다.
▲ 김보경이 6월 16일 히로시마와의 경기에서 패한 후 경기장을 나서고 있다. 사진출처=세레소 오사카 |
▲물론 좋은 기회가 찾아온다면 유럽에 나가고 싶다. 하지만 지금은 올림픽에만 집중하고 싶다. 기사들로만 봤을 때 난 이미 유럽의 한 팀에 가서 뛰고 있어야 한다. 끊임없이 쏟아지는 이적설에 대해선 이미 귀를 닫았다. 에이전트한테도 정확한 내용이 아닌 소문만 갖고 내 이름이 오르내리지 않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올 시즌을 마쳐야 이 팀에 잔류할지 이적할지 확정될 것이다.
오사카 시내에 집을 마련하고 어머니와 함께 생활하고 있다는 김보경과 인터뷰를 마치고 클럽하우스를 나오자 뙤약볕에서 선수들의 사인을 받으려고 기다리고 있는 팬들과 마주치게 됐다. 여기저기서 ‘보경’을 외쳐대는 바람에 김보경은 그들한테 다가가 30여 분 동안 사인을 해주고 다시 클럽하우스로 들어갔다. 그중 한 여성 팬은 김보경에게 한글로 팬레터를 써서 선물과 함께 전달했다. 기자를 발견한 그 여성 팬은 짧은 한국어로 이렇게 말한다. “언니, 보경 선수 전화번호 좀 알려주세요!” 그래서 내가 이렇게 대답했다. “나도 아직은 메일 주소 외엔 전화번호 몰라요^^.”
오사카=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