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 가는 한국의 미 알리기 <53>
▲ 꽃전을 만들 때는 진달래 외에도 계절에 따라 다양한 꽃을 사용한다. 사진은 가을에 부쳐 먹는 국화전. 이종현기자 jhlee@ilyo.co.kr |
전통 떡 가운데 한국의 멋과 향취를 듬뿍 지닌 떡은 아마도 꽃전일지 모른다. 꽃전은 찹쌀가루를 반죽하여 진달래나 개나리, 국화 따위의 꽃잎이나 대추를 붙여서 기름에 지진 떡이다.
방랑시인 김삿갓(김병연)과 꽃전에 얽힌 사연을 보자. 김삿갓이 어느 날 산에 올라갔다가 꽃전을 부쳐 먹는 사람들을 보게 되었다. 김삿갓은 그냥 지나치지 않고 기어코 꽃전 한 개를 얻어먹었는데 대신 시 한 수를 지어주었다고 한다.
솥뚜껑을 시내 가에 돌로 버티어 놓고
흰가루 기름으로 두견을 지져서
쌍 젓가락으로 먹으니
향내가 입에 가득하여
일년춘색을 배 속에 전하더라.
▲ 진달래화전 |
▲ 홍화화전 |
(상략)먼저 그 유래를 말하면 고려시대 어떤 정승의 부인이 일찍 과부가 된 뒤에 무남독녀 외딸 하나를 시집을 보낼 때 집안이 워낙 구차한 까닭으로 혼인할 준비는 없고 달리 변통할 수도 없게 되어 한걱정으로 지내다가 혼인날이 닥쳐오자 생각다 못해 그 집에 옛날부터 뒷동산에 무성하게 두견화(진달래꽃)가 자라서 꽃이 만발하던 때라 두견화 꽃을 꺾어서 꽃 송아리째 소금에 약간 절여 상하지 아니하도록 곱게 기름에 띠어 신랑상에 놓아 대접하였더랍니다. 그 후부터는 혼인에는 반드시 꽃전을 만들어 쓰는 것인데(하략)
꽃전에는 진달래 외에 계절에 따라 다양한 꽃이 사용됐다. 봄에는 이화전(梨花煎), 여름에는 장미화전(薔薇花煎), 가을에는 황국화와 감국잎으로 국화전(菊花煎)과 맨드라미꽃전을 부쳐 먹었다. 꽃이 없을 때에는 다른 재료를 썼다. 미나리잎, 쑥잎, 석이버섯, 대추를 재료로 꽃모양을 만들었다.
화전은 고려시대부터 삼월 삼짇날 들놀이를 할 때 만들어 먹었다고 한다. 하지만 당시의 기록은 남아 있지 않고, 홍길동전의 작가 허균이 1611년(광해군 3년)에 전국 8도의 식품과 명산지에 관하여 적은 책 <도문대작>에 처음 기록이 나타난다. 조선시대에는 삼짇날 중전을 모시고 비원에 나아가 화전을 부쳐 먹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1939년 동아일보 칼럼의 필자 홍선표 씨는 꽃전이 사라지는 것을 탄식했다. 우리 음식 중에 아주 오랜 역사를 지녔고 맛으로나 모습을 보더라도 남에게 내어 놓을 만한데도 점점 사라지고 있다고 했다. 몇 년 전까지 눈에 띄었는데, 이제는 영영 보기 어렵게 되었다는 긴 한숨이 느껴진다. 우리 문화의 맛과 향기와 정신이 듬뿍 배어있는 꽃전이 계절 꽃처럼 매년 피어나기를 바라는 게 허황된 꿈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