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래량 등 주요 지표 호전, 규제 완화 효과도 기대…금리 변동성, 전세가격, 공급 변수 등이 발목
KB국민은행이 집계한 전국 주택가격 하락폭은 2월 마이너스(-) 0.79%에서 3월 -0.83%로 깊어지다 4월 -0.78%로 얕아졌다. 유동성이 좋은 아파트의 반등 조짐이 뚜렷하다. KB선도아파트50지수의 4월 하락폭은 -0.04%에 불과하다. 최근 1년 새 가장 낮은 수준이다. 전세도 수도권에서 가격 하락폭이 4월에는 1%포인트 미만(-0.7%)으로 줄었다. 전세가가 살아나야 매매가도 안정된다. 한국부동산원이 조사한 3월 전국 아파트 실거래가는 전달 대비 1.16% 높아졌다. 지난해 5월 이후 9개월 연속 하락하다가 2월(1.04%) 반등 이후 두 달 연속 올랐다. 수도권도 1.67% 올라 역시 전달(1.64%)에 이어 상승폭이 커졌다.
주목할 부분은 거래량이다. 가격 반전의 충분조건이다. 전국 주택 거래량은 1월 5만 228호로 바닥을 찍은 이후 2월과 3월 모두 7만 7000호 수준을 유지했다. 2022년 7월 64%까지 떨어졌던 아파트 거래비중이 2월 82.5%, 3월 77.4%로 높아진 덕분이다. 분양은 줄었지만 청약경쟁률이 4월 전국 평균 7 대 1까지 올랐다. 서울은 38.9 대 1에 달한다. 미분양도 1년 만에 감소세로 돌아섰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금리가 가파르게 오르며 주택 거래량이 급감하고 가격 하락폭도 커졌다. 가계대출 금리는 지난해 12월을 정점으로 올 들어 내림세로 돌아섰다. 줄어들던 은행권 주택담보대출 잔액은 3월 증가세를 보였다. 최근에는 연 3%대 이자율의 주담대도 등장했다. 한국은행의 추가 긴축 가능성도 낮아져 시장금리가 기준금리를 밑돌고 있다.
고금리에 막혔던 자금의 물꼬가 트이면서 정부의 부동산 규제 완화 효과를 기대할 수 있게 됐다. 서울 강남3구와 용산구를 제외한 전국이 조정지역에서 풀려 세금, 대출, 청약 등의 제한이 크게 완화됐다. 특례보금자리론, 생애최초 주택구입자금 LTV(주택담보대출비율) 80% 허용 등의 지원도 약발을 받게 됐다. 이 밖에 시장 불안 요인이던 부동산프로젝트파이낸싱(PF) 우려도 상당부분 진정됐다.
하지만 최근 집값 하락세를 진정시킨 요인들이 시장을 상승시킬 정도의 힘을 발휘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4월 KB부동산 매매가격전망지수는 85.0다. 지난해 12월 저점(58.3) 이후 반등하고 있지만 상승 반전 기준선인 100에는 못 미친다.
우선 금리가 다시 오름세로 돌아설 가능성이 적지 않다. 최근 민간자금의 채권 투자가 확대되며 채권가격 상승(금리하락)으로 이어졌다. 실제 은행예금 이자보다 은행채 수익률(Yield)이 더 높다. 변수는 국채다. 올해 1분기 정부 국세수입은 지난해보다 24조 원 감소했다. 기업이익 감소와 부동산가격 하락으로 세수 부족은 올해 계속 늘어날 확률이 높다. 정부는 씀씀이를 아껴 버텨보겠다는 방침이지만 시장에서는 결국엔 국채를 더 발행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국채 발행이 늘면 채권 가격은 하락(금리상승)하게 된다.
물가상승과 기업실적 악화로 실질소득이 줄어든 가계가 2021년 이상 수준의 집값을 감당하기도 쉽지 않아졌다. KB부동산이 발표한 2022년 서울의 가구소득 대비 주택가격 비율(PIR)은 14.2로 홍콩 다음으로 전 세계에서 가장 높다. 중위소득을 가진 가구가 소득을 한 푼도 쓰지 않고 14.2년을 꼬박 다 모아야 서울에서 집을 살 수 있다는 뜻이다. 런던(8.7)이나 뉴욕(7.1)을 압도하는 비율이다.
전세 시장의 불안 요인도 여전하다. 부동산 임대차3법 시행, 다주택자 규제 강화 등이 겹쳐 전세가가 급등했던 2021년 하반기 계약체결 물량의 갱신시점이 무더기로 도래한다. 2021년 6월부터 10개월간 서울 아파트 신규 전세 계약은 5만 건 이상이다. 전세가 하락으로 인한 보증금 반환 부담을 집 주인이 감당하지 못하면 해당 주택이 급매나 경매로 나올 수 있다.
공급 측면의 잠재부담요인도 있다. 올해 하반기 서울 입주 예정 아파트 물량은 1만 가구가 넘는다. 부동산 빅데이터 업체 아실 자료를 보면 강남구 입주 물량만 4646가구로 지난해(768가구) 6배 수준이다. 서초구도 지난해 1188가구 대비 3배 가까운 3470가구가 입주한다. 분양시장이 회복되면 건설사들이 연기했던 물량을 내놓을 가능성도 있다. 부동산R114 자료를 보면 올해 4월까지 10대 건설사의 민영아파트 분양실적은 지난해 말 계획 물량보다 71%가 적다. 당장이라도 풀 수 있는 물량이 상당하다는 뜻이다.
‘호재가 없다’ 반등세에 제동 걸린 증시
집값은 하락세가 멎을 조짐이지만 증시는 반등세에 제동이 걸리는 모습이다. 위험요인은 즐비한데 호재는 찾기 어렵다. 경기를 선반영하는 증시는 부동산에 선행하는 흐름을 보인다. 증시가 부진한데 부동산 시장이 뜨거워질 수는 없다.
가장 기본인 실적이 '엉망진창'이다. 한국거래소와 한국상장회사협의회가 집계한 코스피 12월 결산 622개 상장사의 1분기 연결 기준 순이익은 18조 8424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7.68%(25조 6779억 원) 감소했다. 매출액이 5.69% 증가한 것은 환율 상승에 따른 원화환산 액수가 커진 효과다. 이익률은 심각하게 악화됐다.
그나마 금융업종 42개사 연결기준 순이익은 11조 6987억 원으로 10.94% 늘었다. 채권시장 안정으로 증권사 이익이 42% 늘고, 회계기준 변경 효과를 누린 보험사 이익도 19.2% 증가한 덕분이다. 코스닥도 마찬가지다. 상장사 1115곳의 연결기준 1분기 매출액은 67조 6036억 원으로 작년 동기보다 7.5% 증가했지만 순이익은 2조 4950억 원으로 26.3% 감소했다.
실적 악화의 가장 큰 원인은 반도체다. 감산에도 가격 하락이 멈추지 않고 있다. 상장사 순이익 1~2위를 유지하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올해 적자 전환 가능성까지 제기된다. 하반기 가격 반등 전망이 나오지만 근거가 약하다. 잔뜩 쌓인 재고를 소화해 낼 수요처가 보이지 않는다. 스마트폰 시장은 침체돼 있고 데이터센터 구축 수요도 잠잠하다. ‘싸지면 살 것’이란 기대가 낙관적인 전망의 유일한 근거다.
반도체를 제외한 다른 수출 산업들의 전망도 밝지 않다. 하반기 글로벌 경제 상황이 녹록지 않다. 미국은 6월 연방정부 부채한도 초과로 인한 채무불이행 위험이 다가오고 있다. 만에 하나 연방정부 지출이 멈추면 미국뿐 아니라 글로벌 경제가 재앙적인 충격을 받을 수 있다. 설령 채무불이행을 피하더라도 고금리 여파로 하반기 경기침체 가능성이 높다. 중국은 최근 발표된 경제지표에서 소비, 생산, 투자, 수출 부문 모두에서 시장 예상치를 밑돌았다. 지난해 방역 봉쇄의 기저효과 때문에 절대 수치는 높았지만 경기부양이 필요할 정도도 활력이 떨어졌다는 전문가들의 진단이 나올 정도다.
글로벌 경기에 민감한 우리 경제에 대한 불안은 외환시장에서 뚜렷이 확인된다. 경제 불안이 커지면 외환시장에서 통화가치는 하락한다. 지난 연말 1264원이던 달러·원 환율은 최근 1387원까지 5.7%(17일 기준)나 가치가 떨어졌다. 같은 기간 유로(1.5%), 파운드(3.27%)는 물론 중앙은행이 긴축을 하지 않은 일본 엔화(4.1%)보다도 절하 폭이 크다.
증권사들은 대체로 하반기에 코스피가 2200~2600 범위에서 움직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현재 지수 기준으로 4% 수익이 나거나 12%까지 손실이 날 수 있다는 뜻이다. 올해 코스피는 약 11.6% 올랐다. 자칫 그나마 얻은 수익도 모두 반납할 수 있는 셈이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