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방직이 아난티에 신천동 땅 싼값에 판 정황, 차명 주식 논란 관련 여부 주목…대한방직 “이미 끝난 사안”
#'삼성에 비싸게 팔 수 있었는데…'석연찮은 거래
현재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부장검사 이정섭)는 아난티와 삼성생명의 서울 송파구 신천동 부지 부정거래 의혹을 수사하고 있다. 아난티가 2009년 4월 500억 원에 매입하고 불과 1년 6개월 만에 삼성생명에 970억 원으로 되팔아 470억 원의 차익을 거둔 땅이다. 검찰은 삼성생명 임직원들이 땅을 시세보다 비싸게 사들여 회사에 손해를 끼쳤고, 아난티는 그 일부를 횡령해 삼성생명 관계자들에 뒷돈을 건넸다고 의심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검찰 수사가 대한방직까지 확대될 수도 있는 정황을 새롭게 포착했다. 해당 부지의 원래 주인이었던 고 설원식 대한방직 회장의 거래 과정도 석연치 않다는 주장이 제기된 것. 일찍이 삼성 측이 600억 원대로 더 비싼 값에 매입할 의사를 적극 타진했으나, 아난티에 훨씬 싸게 팔았다는 게 의혹의 핵심이다.
검찰은 2009년 당시 삼성과 아난티 및 대한방직 등에서 임원을 역임한 인사들을 대상으로 전방위 소환조사를 벌이다 이런 내용을 확인했다. 이를 뒷받침할 자료들도 일부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부지 매각에 관여한 대한방직 관계자들이 당시 건네받은 삼성 측 부동산 담당 임원들의 명함과 일정표 및 메모장 등이다. 이에 따르면 2008년 삼성화재 임원들이 대한방직에 접촉했으며, 양측은 그해 8월에만 최소 서너 차례에 걸쳐 만남과 전화 통화 등을 나눴다. 신천동 땅 문제가 아니라면 그 시기 삼성과 대한방직이 만날 이유는 없다는 게 업계 안팎의 공통된 시각이다.
삼성 측이 고액을 제시했음에도 아난티로 소유권이 이전된 배경에는 브로커 황 아무개 씨 역할이 컸다고 알려졌다. 그는 삼성생명 출신이지만 대한방직과 아난티 임원들과도 학연 등 사적 인연으로 친분이 두터웠다. 이에 '대한방직-아난티-삼성생명'을 잇는 연결고리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검찰 수사가 2009년 당시 설 전 회장과 아난티의 신천동 부지 거래 과정까지 살펴 거래대금 500억 원과는 별도의 웃돈이 설 전 회장 측에 흘러갔는지 등으로 수사를 확대할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그 이전 거래까지 살펴보는 것이 수사 범위를 너무 넓히는 것일 수 있지만 사실 이번 수사와도 관련성이 있다. 만약 당시 아난티가 웃돈을 건넸다는 의혹이 사실이라면 삼성생명과의 거래에서 얻은 470억 원의 차익도 달라지게 된다. 470억 원에서 문제의 웃돈을 빼야 실제로 거둔 차익이 드러나게 되기 때문이다.
의혹의 핵심은 설 전 회장과 아난티 사이에서 '다운계약서'가 작성됐을 가능성이다. 현재로서는 설 전 회장의 조세 포탈 목적을 의심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설 전 회장은 이 땅을 넘긴 2009년부터 양도소득세를 포함한 5건의 세금 총 156억 200만 원을 내지 않아 국세청이 공개하는 고액·상습 체납자 명단에 올랐다. 그는 2015년 사망 때까지도 이를 납부하지 않았다. 유족들은 상속 포기로 세금을 털었다.
설 전 회장 입장에서는 아난티에 매각해 거둔 500억 원 가운데 336억 원은 어차피 예금보험공사(예보)에 줘야 할 몫이었다. 예보는 대한방직 자회사인 한스종합금융의 파산관재인으로, 설 전 회장이 한스종합금융에서 부당 대출을 받아 수백억 원 손실을 일으킨 사건에 대해 2002∼2008년 손해배상소송을 진행했다. 여기서 예보가 승소하며 손해배상채권 전액을 회수했다.
대한방직 사정을 잘 아는 관계자에 따르면 해당 부지 매각을 추진하던 당시 임원들 사이에서도 이 문제로 몇 차례 고성이 오갔다고 전해졌다. 회의에서 설 전 회장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고위 임원이 "삼성이 액면상으로는 비싸게 사겠다지만, 아난티에 파는 쪽이 회장님께 도움이 된다"고 하자 다른 인사가 "무슨 말이냐. 싸게 파는 게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입증하면 하버드 경제학 박사를 주겠다"고 맞받아친 일까지 있었다고 한다. '삼성에 비싸게 팔자'고 주장한 인사는 결국 아난티에 매각하기 3개월 전인 2019년 1월 해임됐다.
#대한방직 '수상한 자금' 미스터리 풀릴까
이번 검찰 수사는 재계에서도 커다란 관심사다. 현재 대한방직은 소액주주 연합이 168만 8401주(지분율 31.86%)를 갖고 있다. 표면상으로는 설 전 회장 장남인 설범 회장과 특수관계자의 137만 5234주(지분율 25.95%)보다 많다. 그럼에도 설 회장은 간신히 경영권을 방어하고 있다. 그가 우호 지분 약 50만 주를 더 가졌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설 회장의 모친으로 경영에 참여한 적 없는 93세 임 아무개 씨 지분(1만 2230주) 등이 포함돼 있다. 소액주주들은 주주총회 등에서 우호 지분 보유자들의 경력과 신분 등에 비춰 자금 동원력에 의문을 제기해 왔다.
업계에선 설씨 오너 일가의 차명 주식으로 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 실제로 대한방직 오너 일가의 차명 주식 문제는 자주 지적돼 왔다. 설 회장은 경영권 방어 목적으로 보유한 차명 주식의 공시의무를 위반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2019년 대법원에서 유죄 확정 판결을 받기도 했다.
그 이듬해에는 설 회장의 측근 임원이 2017년 아내 명의로 1% 이상의 지분을 거래하고도 미신고한 일이 뒤늦게 발각돼 주주들 사이에서 또 대립이 불거졌다. 이는 설 회장 재판 과정에서 증인으로 출석한 임원의 진술로 확인됐는데, 그는 '경영권 방어 목적'이라고 시인하면서도 자금 출처에 대해서는 입을 열지 않았다.
안형열 대한방직 감사도 이번 수사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 그는 1985년부터 2001년까지 고 설원식 대한방직 회장의 최측근 비서로서 재산 관리도 맡아 왔다. 자신이 직접 설 전 회장의 차명 주식을 만들고 관리했다는 사실을 2021년 폭로하고 감사로 선임돼 관심을 모은 인물이다.
안 감사는 "신천동 부지의 아난티 매각 과정에서 각종 잡음이 있었던 사실은 익히 들었지만 이제라도 실체적 진실이 밝혀질지 관심 있게 보고 있다"며 "여러 정황상 차명 주식이 더 존재한다는 합리적 의심도 여전한 만큼 검찰이 철저히 수사해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반면 대한방직 관계자는 "신천동 부지 매각이 워낙 오래된 일인 데다 오너 개인의 땅이라 알고 있는 사람이 현재로선 없다"며 "차명 주식 문제의 경우 2019년 대법원 확정 판결 후 사법적으로 문제가 된 적이 없고 이미 정리가 끝난 사안"이라고 밝혔다.
한편 검찰은 신천동 부지 부정거래 의혹 수사의 망을 계속 넓혀가고 있다. 거래 당시 삼성생명의 투자심의위원회 위원 9명 가운데 6명을 불러 조사했으며, 대표이사를 포함한 나머지 위원 3명도 소환해 조사할 계획이다. 아난티와 대한방직의 당시 사장들도 한 차례 소환해 조사를 마쳤으나 다시 부르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알려졌다.
주현웅 기자 chescol2@ilyo.co.kr